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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중년 마크 Oct 22. 2022

나의 등산 연대기

산에 오르는 이유는...


10세  


그 시절 소풍은 코흘리개 아이들에게는 일 년 중 손을 꼽을 만큼 큰 이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 설레는 행사의 행선지는 주로 동네 뒷산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소풍 소식이 전해지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보나 마나 뻔한 그 행선지가 못마땅해서 소풍 자체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습니다.

반면 우리 학교 옆에 있는 사립학교는 버스를 타고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곤 했습니다.

사립학교가 뭔지 개념도 없었지만 그들이 알록달록한 교복을 입고 버스에 단체로 올라 어디론가 소풍을 떠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부러운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뭔가?'

떼를 지어 줄을 서서 교문을 나서서 골목을 지나 뒷산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의 행렬이라니! 

뒷산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어린아이들이 꼭대기까지 오르기엔 숨이 턱에까지 차는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꼭대기에 올라서 반별로 조금 널찍한 장소에 둘러앉아서 도시락을 까먹고 돌아온 것이 전부였던 어릴 적 소풍의 기억은 동네 뒷산을 포함하여 산에 대한 감성을 부정적으로 조성한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17세 


그때 즈음 아버지께서는 부쩍 산에 자주 다니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마도 중학생 때부터인가.. 온 가족이 가는 한여름철 피서가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어디를 가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친구들과 노느라 바빴고

부모님은 부쩍 커버린 아들에게 어디 어디를 가자고 조르지 않으셨죠. 

어느 날 아버지가 등산을 제의했고 아버지와 단둘이 가기가 심심하다고 여긴 저는 친한 친구 한 명을 불러 같이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산은 강화도의 마니산이었고, 

어느 추운 겨울의 일요일이었습니다. 

세다가 포기한 그 무수한 돌계단을 오르면서 나와 친구는 아마도 들리지 않게 꽤나 투덜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괜히 왔다는 후회의 불평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 아버지가 찍어준 우리 둘의 사진 속에서 나와 친구는 활짝 웃고 있었고 그 사진은 지금도 사진첩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진에서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활짝 웃었던 아버지는 제 곁을 떠나신지 오래되었네요.


25세  


그녀와 사귄 지 백일쯤 되던 때의 겨울,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시기였습니다.

설악산을 둘러 동해바다를 보러 갔던 여행의 중간에서 산을 올랐습니다. 

설악산은 이미 그전에 몇 차례 왔던 곳이었지만 

여자와 단 둘이 산을 오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익숙하게 흔들바위까지 도착한 후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1킬로미터만 더 가면 울산바위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내친김에 거기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아마 그때 산에서의 표지판에 적힌 거리 단위는

실생활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등산화도 없이 그저 산책 삼아 올랐던 설악산에서

마침내 울산바위에 올라서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합니다. 

산을 올라서 뿌듯했다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에 대하여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만족감이 더했지 않나 싶습니다. 

그때까지도 산은 나에겐 막연한 공간이었습니다.


44세


우연찮게 동문회 기수 회장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동문산악회에서 매달 가는 산행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섞여있는 동문회라는 곳.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보는 사람도 바로 형님 아우님이 되는 곳.

산악회라는 것이 그저 나이 많은 양반들이 모여서 버스에서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노는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처음에는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맡은 책임 때문에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나는 '기왕 가야 하는 거면 유명하고 좋은 산을 갔다 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자'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다녔던 산들이 여럿 있습니다.

칠갑산, 소백산, 내장산, 연인산, 팔봉산, 오대산, 치악산, 천태산, 백암산, 계방산, 사량도 등등..


어느 산이나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등산 코스마다 각각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쉬운 길은 쉬운 길대로 험한 길은 험한 길대로 의 이야기가 있고

올라가는 길에 느끼는 두 다리 앞쪽 근육의 고통과

내려오는 길에 겪는 다리 뒤쪽 근육의 역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마주하는 푸릇한 경치와

시원하고 달달한 바람과

같이 오른 이들이 배낭에서 꺼내놓는

탁주 한 사발의 즐거움도 있습니다.

이때 

아마 나도 산을 계속 오르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49세


그동안 세상에서 돌아가던 여러 형태의 사람들 모임이 멈춘 지 2년째가 되었습니다. 

물론 동문 산악회도 산행을 중단한 지 2년째가 되었고

나는 2년 동안 어떤 산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끔 친구들이 가까운 산에라도 가자는 말이 있었지만

왜 그런지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혼자 등산을 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홀로 산을 오르며 또는 산에서 살면서

자연의 모습에 겸손되이 자신을 바라보며 사색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의 잔잔한 내레이션을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인지

왠지 산에 가면 그런 마음가짐을 챙겨서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이내 귀차니즘이 발동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그해 초여름에

나는 홀로 다소 긴 여행길에 나섰고

그 여정 속에서 태백산과 지리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것은 여행 속에서 내가 설정한 이벤트에 불과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맛보았던 산의 정취와

아니, 실로 처음으로 생명체로써의 내 모습을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고요했던 아침의 공기, 가끔 나뭇잎을 퍼덕이며 지나가던 새들, 

나를 보고도 못 본 듯이 서있던 그 나무들, 나무들, 돌들, 바람들

그리고 달콤한 예의 그 맛있는 공기들까지

걸음을 옮기며 살아있다고 부르짖는 한 피조물의 외침과

수천 년 동안 너 같은 녀석을 수없이 보았다며

가소롭다는 듯 입을 다물고 바라보는 그 모든 자연물들은

그것이 곧 삶이며 죽음이자 유이며 무인

우주 그대로의 모습일 것입니다. 


산을 왜 오르는가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고 

어떤 등산가가 말했다지만

나에게 산에 왜 오르냐고 묻는다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짓궂은 질문자는 그게 뭐냐고 재차 묻겠지만

그때엔 그저 살짝 웃어주고 말아야겠죠. 잘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문득 가을이 왔습니다.

올가을엔 

다시금 산을 올라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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