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돌과 나무에 새겨서
고이 세워두고 소원을 빈다.
누구를 만나도
이름을 먼저 묻고 산다.
예전의 내가
누군가의 앞에 선다는 것은
이름표를 이마에 붙이고 마주 선 일이었고
모두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지만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수록
점점 듣기 힘들어지는 것
내 이름이다.
가끔, 아니 자주 내 이름이 낯설때가 있습니다.
어렸을적엔 누구나 나를 보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부모님, 누나, 이모,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가 그러했지요.
일가친척을 통틀어 제일 막내였기에 집안에서나 친척네에서나 그 흔한 오빠소리 한번 못들어보고 자라났었고
학창시절 후배들이 생겨도 늘 형이란 호칭앞에는 이름을 붙여서 불렀습니다.
하긴 그 많은 형들을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이름은 붙여야 했었죠.
나도 길수형, 창현이형, 민수형 등 수많은 형들의 이름을 불렀듯이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이름을 배제한 온전한 다른 호칭을 듣게 된 것은 조카가 생긴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세 살배기 외조카가 아장거리며 “삼춘~” 하며 나를 부를 때
신기하고 기특하다며 마냥 껄껄댔지만
이제보니 우리 조카는 나를 이름없이 불러준 첫 번째 호명자였나 봅니다.
뒤를 이어 다른 조카들이 생겼고
그 아이들이 부르는 삼촌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카의 엄마인 나의 누나도
아이들에게 말할땐 나를 삼촌이라 칭했고
가끔은 나를 직접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1인칭인 나를 중심으로 나를 부르는 이름이 아닌
다른이를 중심으로 그 상대방인 나를 부르는 호칭의 탄생이라고나 할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니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아무개씨라고 불리는 것은 말단직원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사장님, 전무님, 상무님, 과장님, 대리님
이름을 붙이지 않은 타이틀이 정확하게 어떤 이를 지칭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김대리가 두명이건 여섯명이건 상관없이
누군가가 김대리를 부르면 그가 부른 김대리가 대답을 하는 세상이었죠.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젊었을때의 나는 그곳에서 이름을 불리는 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홍길동씨보다는
홍과장님, 홍부장님이 항상 더욱 높은 곳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살던 어느날, 삼촌을 능가하는 강력한 호칭을 얻게 되었으니
바로 ‘아빠’라는 말입니다.
처음에 딸이 입을 열어 아빠 라고 부르는 모습, 그 소리, 그 표정, 그 공기와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고 신비로왔습니다.
오직 한사람에게만 허락된 호칭이다 보니 더욱 그러하였을까요.
어쨌건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구성은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들, 손윗 친척들, 친구들, 선배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내 이름을 듣는 횟수보다는
내가 다른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의 수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딸, 조카, 후배, 옆집 아이, 친척들의 자녀들... 등등
그만큼 나이가 많아졌다는 증거라는 걸 알겠습니다.
여기서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노인이 될 거고
그때는 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겠지요.
반면에 내가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겠지요.
언젠가 모를 어느날에는
마지막으로 내 이름 석자를 적고
모두가 그 이름을 바라볼 이삼일의 날도 또한 올것임을 압니다.
그때까지 나 스스로라도
내 이름을 좋아해주고 자주 불러줘야겠어요.
나에겐 늘 소중한 내 이름이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