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소의 곁 21화

작은 인간이 아프면

큰 인간은 고장이 난다.

by FONDOF

2025년 10월, 서울의 한 소아과








열려있는 유리 자동문을 통해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짤따란 소파가 있고

왼쪽으로는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재고 네뷸라이저를 하는 공간,

어른 걸음으로 세 걸음 정도 성큼 걸으면 바로 정면에 접수대가 있다.

8평 남짓되려나, 작은 공간.


접수대 바로 앞에까지 가야만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간호사님이 앉아 계신다.

머리카락을 정수리에서부터 하나로 땋아서 한쪽 어깨로 아무렇게나 묶으셨다.

카랑카랑 목소리, 좁은 공간을 내내 뛰어다니고 매 순간 텐션이 높다.

누운 S자로 찌푸려진 눈썹으로 모니터 업무에 집중하시다가

앙다문 입이 열리며 이로아! 김주하! 박유나!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귀 속을 찌른다.

본인보다 얼굴 하나 더 있는 부모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아이들 이름과 얼굴을 체크하시고

키와 몸무게를 확인하고

걱정하는 엄마의 등을 쓸어주신다.




진료실 밖에서부터 들리는 울음소리,

허벅지에 주사를 맞아 바지를 훌렁 까고 울며 나오는 신생아와

그런 아이가 애처로워 죽겠다는 듯 잔뜩 울상인 젊은 엄마.


아빠 품에 안겨서 엄마에게 팔을 뻗으며 안아 안아 울부짖는 두 살 정도 남자아이,

아빠는 자신의 어깨를 거의 타고 넘어갈 듯한 아이를 붙잡느라 땀이 나고

엄마는 수납줄에 서서 상반신만 아이에게 돌린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바퀴가 커다란 유모차를 끌고 들어와 주춤주춤 하는 신생아 엄마 뒤로

목발을 두 개나 짚은 아빠가 바닥마루를 삐그덕 대며 들어와 서성이는 바람에

소파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다리를 한껏 오므리고

좁은 병원 안이 더욱 복잡해졌다.




마스크 낀 한 여자가 채 다 마르지 않은 머리를 풀썩이며 등장,
신생아 접종을 접수한다.

여자: 많이 기다려야 하나요?
간호사: 잠시만 일단 계셔보세요! 일단 이거부터 작성해 주세요. 아이는?
여자: 아이 밖에 있어요, 차에.
간호사: 아이 와야 하는데? 아이 오라 하세요?

간호사님은 총총 자리를 뜨고
여자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여자: 주예 데리고 들어와, 아기라서 중간에 잠깐 해줄 수 있대. 어어, 겉싸개 싸서 데려와.

중간에 잠깐 해준다는 말에 대기 소파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순간 고개를 들거나 못마땅한 눈짓을 주고받는다.


곧이어 아이를 신줏단지처럼 꽁꽁 싸맨 아이 아빠가 들어오려는데
여자: 들어오지 마! ��
비장하게 팔을 뻗어 남편을 저지한다.


마치
바이러스 폭격 맞는 건 나 하나로 족해,
너는 아이와 청정구역에서 대기해!
라는 듯.



헐렁한 회색운동복에 모자 뒤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기름져 보이는 남자가
6개월 정도 된 여아를 안고 서 있다.
캡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검정 레깅스에 슬리퍼를 신은 여자가
연신 아이를 들여다보며 남편에게 말한다.

여자: 수족구는 손 하고 발에만 올라와!
남자: 아니 아니 그러다가 이제... 여기저기 올라올 수 있다고..

아이가 수족구 진단을 받은 모양이다.
'저 작은 아이가 수족구라니 속상하겠네..'

여자: 근데 애가 밥이랑 분유를 거부해야 하는데 거부 안 했잖아!
남자: 이제, 이제 1일 차니까..

차분해 보이는 남편에 비해
여자는 감정적으로 힘겨워 보인다.
'남편을 탓하는 건가? 남편과 싸우려는 건가?'

여자: 갑자기 발진이 올라오는 게 말이 된다고?
남자: 뭐 갑자기라기보다... 이렇게 시작될 수 있지.

맞는 말만 하는 남편의 논리에 밀려 분해보이는 여자,
손가락으로 요일을 세더니

여자: 화.. 수.. 오늘 토요일인데 뭔 일주일이야, 오일밖에 안됐구만!
남자: 응..

적당히 응수하며 도발하지 않는 남편이다.
'내공이 대단한데?'



여자: 아 짜증나 진짜.. 어디 데려간 적도 없는데..! 아 왜 걸린 거냐고!



"애기 그렇게 안지 마! 세워서 안지 마, 내가 안을게! 나 줘!"

못마땅한 속사포에 고개를 들어보니
60대 후반쯤 된 아기 할머니께서
딸로 보이는 아기 엄마에게서 신생아를 뺏듯이 건네받고 있다.


외할머니: 애를 그렇게 안으면 어떡해 인줘!
엄마: 아니 애 더울까 봐..
외할머니: 덥긴 뭘 더워! 오구 우리 애기 오구 이뻐 오구 착해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딸과 손주를 대할 때의 목소리는 거의 1인 2역을 보는 기분이었다.
딸은 그런 엄마가 익숙한 듯 무력하게 다시 시도한다.

엄마: (두 팔을 어색하게 뻗으며) 내가 안을게. 어? 내가 안겠다고.
외할머니: 아, 냅둬어!

스읍! 하는 입소리와 함께 사나운 역정을 내는 친정 엄마,
곁에서 사위가 멋적게 코를 슬쩍 만지며 괜히 한번 앉았다 일어났다.
그때

간호사: 왜 이렇게 꽁꽁 쌌어요? 바로 펼쳐야 하는데!
외할머니: (무안한 듯) 그래요..?

겉싸개 속에 파묻힌 아기를 보며 간호사님이
아기를 발굴하듯 겉싸개를 겹겹이 펼쳐서 아이의 맨 팔을 꺼낸다.
바로 진료실 들어가서 주사 맞아야 하니 이렇게 하고 있을게요! 하더니
또 어디론가 총총 뛰며 퇴장.
간호사님의 짧은 면박으로 아기 엄마는 묘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친정 엄마의 지적질,

외할머니: 쪽쪽이는 뭐하러 해줘?
엄마: 애가 이러면 진정되니까..
외할머니: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거야!
엄마: 나도 처음 물린 거야.
외할머니: 근데 왜 물려?
엄마: 병원이니까 물려야지.


간호사님의 "들어가실게요, 빨리빨리!" 성화에
쪽쪽이 실갱이는 일단락되었다.
수 분 후, 왼 팔에 BCG바늘 자국이 찍힌 아기를 안고 나온다.
아기는 여전히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있다.

외할머니: 오구 착해 우리 애기.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아주 잘했어요!
아빠: 아니 어떻게 울지도 않네?
외할머니: 얘가 순하다니까! 이런 애를 뭘 쪽쪽이를 물린다고 너는..

엄마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그저 아기만 뚫어져라 살피고 있다.
소파에 엉덩이를 반쯤 걸터앉아 당장이라도 일어나 달려 나갈 모양새로.


간호사: 아이고! 주사 맞은 부분을 이렇게 싸고 계시면 안 되죠!
외할머니: 아니.. 잠깐 이래 싸놓은 건데..
간호사: (손선풍기를 파닥이며) 이렇게! 이렇게 말려주세요. 여기가 약이 묻으면 안 되니까 이렇게 열고! 이렇게 말려주시라고, 약 스며들게...


아기 엄마는 그제야 역할을 찾은 듯 의욕적으로 열심히 손 부채질을 하며
아기의 여린 팔에 아직 묻어있는 약을 하염없이 말려준다.



접수대에서는 다음 접종 예약이 이뤄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아까 남편에게 들어오지 말라하던 그 여자다.

간호사: 보자 보자.. 8일?
여자: 11일은 안 돼요? 주말은요?
간호사: 아 평일 밖에 안 돼요.
여자: 아..
간호사: 8일로?
여자: (핸드폰에서 눈을 고정한 채로) 네네... 아 혹시..
간호사: (참다 참다) 아이고.. 내가 이것만 붙들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여자: 아 8일로 할게요 8일 8일.. 오전 될까요?
간호사: 다 오전이에요!
여자: 아 그럼 9시로...
간호사: 여기 9시 반부터예요!
여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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