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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31. 2024

석사냐 취업이냐


쇼츠 일기 - 2024년 13째주


- 봄이 온 척 하다가 다시 추워지고, 또 봄이 온 척 하다가 다시 춥기를 시도때도 없이 반복하는 함부르크의 날씨 요정 때문에 3월 내내 겨울 패딩을 완전히 놓지를 못하고 있다.

- 재외투표를 하러 영사관에 다녀왔다. 재외투표를 하려면 약 한 달 전쯤 있는 재외투표 등록 기간에 미리 신청을 해야지만 투표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를 놓쳐서 투표를 못한 분들이 있었다. 물론 이렇게 하는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게 따로 등록하지 않아도 투표 기간에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바뀌는게 투표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독일에 10년을 훨씬 넘게 산 재외국민도 매번 미리 등록을 해야만 투표를 할 수 있는 건 비효율적인 것 같다.

- 지금 독일은 부활절 연휴이다. 온 거리에 달걀이나 토끼가 넘친다. 커다란 토끼 초콜렛 탑도 보았다. 우리나라도 부활절이 공휴일이면 좋을텐데! 부활절도 나라마다 축하하는 풍습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에콰도르에서는 부활절 기간 동안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생선만 허락된다고 한다. 그래서 부활절에 먹는 생선 요리가 있다고.

- 요즘 진짜 사람들이 말하는 ‘0개 국어’가 되는 기분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내게는 좀 늦게 온 것일까, 그 전까지는 이 말을 이해를 못했는데, 요즘은 정말로 아주 쉬운 영어 단어, 한국어 단어가 기억이 안나는 때가 부쩍 늘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다시 언어 공부를 해야하는 걸까. 0개 국어 구간 극복법도 연구를 좀 해봐야겠다.



쇼핑몰에 있던 거대한 토끼 초콜렛 탑



롱 일기 -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앞에서 떨리는 건 외국어 때문일까 자신감 때문일까


이번 학기의 마지막 피날레, Perspectivtag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직역하면 ‘관점의 날’이지만 이건 일부러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이고, 의역하자면 ‘진로의 날’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각자 인턴십을 하거나 또는 일한 경력이 있는 학생들이 자신이 다녔던 회사와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졸업 후 이미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졸업생들도 참석했다. 약 3시간 동안 약 18개의 다양한 회사와 업무에 대해서 발표하고 질문을 주고 받았다.


지난 일기에도 썼지만, 많은 독일의 대학들이 인턴십이나 교환학생이 의무 수업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들었다. 우리 학교도 그렇다. 1학기를 전부 인턴십이나 교환학생을 하도록 한다. 30학점이 걸렸으니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A학점, F학점 처럼 평가는 하지 않아서 부담은 좀 덜 했다. 일을 했다는 것 자체의 가치를 높게 보는 것 같다. 물론, 인턴십이나 일을 한 회사의 서명을 받은 인증서 같은 것이 필요한데, 나는 예전에 혹시나 하여 받아둔 영문 경력증명서를 사용했다. 이번에 느끼는 거지만, 어디든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그만둘 때 꼭 재직증명서 같은 걸 국문/영문 모두 받아놓는 게 나중을 위해 좋다. 한국에서야 4대보험 지급한 내역으로 증명할 수도 있지만, 해외에서는 어떨지 모르니까 말이다. 나도 내가 해외에서 이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말이다. 어떤 회사는 아직도 건재하여 경력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어떤 회사는 지사였어서 이미 문을 닫은 곳도 있다. 그 곳이 독일 회사의 지사였기에 재직증명서를 못받은 게 다른 회사보다 좀 더 아쉬웠다. 그래도 요즘 한국으로 가는 외국인들도 많으니까 한국 회사의 정보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정성들여 준비했다.


발표 형식은 학과 학생들하고만 하는 소규모의 대화형 발표이고, 어려운 내용은 없는 캐쥬얼한 발표였다. 하지만 긴장이 됐다. 아무래도 외국어로 해야하니까 평소보다 더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침 우리 그룹 진행을 맡은 교수님이 억양이 센 남부 독일어인지 스위스 독일어인지를 쓰시는 분이라 더 긴장이 됐다. ‘질문을 못알아들으면 어떡하나, 답이 생각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또 걱정 모드가 켜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진행하시는 교수님의 질문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행 방식도 질문을 하면 한명씩 거기에 답하는 방식이라 긴장감이 덜 했다. 교수님은 독일어로 질문하고, 다른 패널들은 독일어로 대답하고, 나는 영어로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엔 좀 긴장했지만 점점 긴장이 풀려서 원래 주어진 시간을 넘어서서 열띤 발표가 이어졌다.


같이 발표한 패널 중에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 S가 있었다. 발표가 끝나고 서로 발표가 어땠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발표 때문에 긴장이 되어서 지난 밤에 잠을 3시간도 못잤다는 것이다. 너무 긴장이 되서 심리적 지원군으로 여동생도 데리고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처음 인사할 때 여동생을 소개해줘서 난 그저 여동생도 취업 때문에 정보를 모을 겸 데려온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발표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배경에 대해선 전혀 듣지 못했고, 내가 봤던 이 친구는 긴장은 커녕 말을 술술 잘도 했었다. 그런데 평가도 받지 않는 이 발표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잠을 설치고 여동생까지 데리고 왔다니, 평소 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의 친구였기 때문에 너무나 의외였다.


그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옛날 생각이 났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도 유난히 발표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라고 발표가 쉬운 사람은 아니었고, 사람들 앞에서 긴장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발표를 안할 수는 없으니 K-장녀의 마인드로 늘 그룹 과제에서 발표는 나의 몫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많지는 않았지만, 몇 번인가 PT 발표를 했던 일도 생각났다. 난 그저 이 곳에서의 이번 발표가 외국어라 긴장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예전에 ‘발표’라는 것을 여러번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덜’ 긴장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두번째 학사는 체력적으로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동안 해온 경험들이 쌓여서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석사냐 취업이냐


졸업 후 진로, 석사냐 취업이냐에 관해 많은 이야기기 오갔다. 여긴 확실히 석사를 고려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인 흥미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지만 이 나이에, 내 상황에 욕심이라고만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동급생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친구는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나이를 그렇게 따지지도 않고, 나이가 많으면 그저 ‘경험이 많겠구나’ 생각한다 했다. 또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같은 일을 하더라도 석사가 있으면 기본 연봉 테이블이 바뀌기 때문에 석사 2년 생활비를 아끼는 것보다 좀 더 투자해서 취직했을 때 연봉 기준을 올리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우리의 MZ 내 친구 J는 마스터 없이 업무 경력을 10년 정도 쌓고 그걸로 연봉 협상 딜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학력만으로 연봉 테이블이 결정되는 게 별로인건 나도 동의는 하지만, 난 연봉을 떠나 개인적으로 석사 공부가 재밌을 것 같긴 하다. 그래서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 싶다.


참 논문 패스는 총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표절하는 것만 아니면 진중하게 쓰기만 하면 떨어질 염려는 크게 안해도 된다고. 근데 예전에 과제를 하면서 실수로 표절한(?) 적이 있어서 (출처 표기를 빠트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써야한다는 긴장감에는 변함이 없다.


동급생들과 졸업생들의 경험 공유가 이번에 꽤나 도움이 되었다. 어떤 졸업생은 솔직하게 연봉도 깠다. 누가 봐도 연봉이 높아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자율성과 일에 대한 만족감이 높은 곳이었다. 여기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정말로 돈은 좀 덜 받아도 되니까 일주일에 30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는 자율성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도 자주 보인다.


내가 석사냐 취업이냐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 어쩌면 또 반복되는 현실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방황인 것도 같다. 이번 두번째 학사 공부가 재밌었기 때문에, 석사로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도 싶은데, 그러자니 영주권 받는 시기도 더 늦어지고, 허리띠 졸라매는 생활을 몇 년은 더 해야할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걱정도 마음에 걸린다. 아무리 독일에서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도, 한국에 사는 부모님의 마음에 그것이 온전히 와닿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이해는 한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는 K-장녀를 걱정하지 않는 한국 부모는 드물지 않을까. 그래도 이 곳에 와서 요즘 정말 행복하다는 내 말에, 아빠는 좀 마음이 놓인다 했다. 그래도 석사는 왠만하면 하지 말고 취업을 바라시는 눈치다. 20대 때는 오히려 부모님 눈치를 안 봤는데, 30대를 넘어 40대를 바라보는 시기가 되니 오히려 눈치가 보인다. 독일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국식 문화와 사고 방식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나는 독일과 한국 문화 사이의 그 중간 어드매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30대 후반, 두 번째 학사의 끝을 달리면서 석사냐 취업이냐의 고민이 끝이 나지를 않는다. 독일에서의 나이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종종 본 적이 있다. 업계에 따라 다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내 경우는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고민이 된다. 1년 뒤 졸업 후,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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