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24. 2024

독일 학생 식당 메뉴에
등장한 비빔밥

그리고 지속가능성

2024년 3월 20일 수요일


오늘은 정말로 봄이 완연한 날씨였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아침 7시 출근길이 어두컴컴했는데 이제는 환하게 이미 동이 트고 있다. 도시 곳곳의 나무에 핀 꽃들이 봄을 알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건 오로지 이 식물들의 몫이다. 어떤 인간은 아직 한겨울옷을 입고, 또 어떤 인간은 봄옷을 입고 있으니 인간의 옷만으로는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사람과 건축이라는 주제로 사진 공모전이 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좋은 카메라로 찍을 필요는 없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무엇을 찍어야 할지 막막했다. 건축은 대부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 또한 건축물이 없이는 안전하게 살아가기 어렵다. 내 몸을 지키기도 어렵고,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도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건축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잠을 자든, 일을 하든, 물건을 사고팔든, 사람들이 오고 가지 않는 건축물은 쉽게 그 의미가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사람과 건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가 아닐까. 그런데 이 생각들을 어떻게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을까? 집을 짓는 인부의 사진을 찍어야 하나?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찍어야 하나?  아니면 사람이 오지 않아 텅 비어버린 폐가를 찾아서 찍어야 하나?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서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다 해도, 의미 있는 사진을 찍는다는 건 참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이틀 남은 과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일단은 밥을 먹기로 한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 옆에는 채식만 제공하는 학생 식당이 있다. 일반 학생 식당에서 항상 베지테리안 메뉴나, 비건 메뉴가 함께 제공되는 것은 처음 학교에 다닐 때부터 있던 일이라 놀랍지 않았는데, 전메뉴가 최소 베지테리안인 식당을 만들었다는 것이 참 신선하다. 이곳도 원래는 일반 학생 식당이었는데 2년인가 3년 전인가 갑자기 채식 식당으로 변신했다. 



채식 학생 식당의 정문 모습 (사진: 노이)




‘어차피 학생 식당에 채식 메뉴가 없던 것도 아닌데 채식 식당까지 만들 필요가 있었나?’


라고 누군가는 되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채식 학생 식당의 인기는 뜨겁다. 점심시간이 한창일 때는 앉을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곳이 사람이 많은 함부르크 대학에 있는 식당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수제 피자를 파는 곳도 있고, 또 바로 옆에 고기 식단과 채식 식단을 함께 제공하는 일반 학생 식당도 있다. 그래도 이곳은 항상 북적거린다. 나와 함께 학교를 다니는 학교 친구들 중에도 채식주의자가 많다. 이만큼 수요가 많으니 공급이 생긴 거겠지. 나도 독일에 와서 채식 비율이 상당히 늘었다. 완전한 베지테리언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평소 먹는 식단을 고려하면 채식 식단의 비중이 80%는 넘는다. 그래서 여기서 점심을 먹을 때에도 대부분 이 채식 학생 식당을 가는 편이다.


나는 채식’지향’인이지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에 일반 학생 식당에서는 종종 유혹에 흔들리고는 한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식 메뉴와 채식 메뉴가 나란히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면 유혹이 더 강해진다. 그래서 이렇게 아예 채식 메뉴만 파는 학생 식당이 더 좋다. 식당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유혹이 덜 하다. 일단 들어왔으면, 눈앞에 펼쳐진 메뉴는 모두 채식이다. 지금부터는 내 입맛만 생각해서 고르면 된다. 아쉽게도 우리 학교에는 채식 전문 학생 식당은 없다. 아니, 사실 여기가 유일하다. 채식 전문 학생 식당을 더 짓지는 못하더라도, 일반 학생 식당들의 채식 메뉴의 비중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베지테리안 슈니첼(한국의 돈가스와 비슷한 음식)과 비빔밥볼(Bibimbap Bowl)이라는 메뉴였다. 


‘비빔밥? 비빔밥이 독일 학생 식당에서 나오다니!’


처음에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학생 식당 메뉴에서 봤을 때는 정말 놀랐다. 마치 LA라디오에서 처음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들었던 때와 기분이 비슷했다. 그때는 다소 흥분한 마음으로 식당으로 직진했었다. 하지만 곧 크게 실망했다. 비빔밥보다는 포케와 라이스 샐러드 그 어드메 사이의 무언가였다. 함부르크의 시립 대학교의 학생 식당은 모두 한 번에 관리되기 때문에 메뉴의 큰 틀은 비슷비슷하다. 우리 학교 학식에서 그렇게 나왔으니 여기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예전에 한 번 호기심에 먹어봤는데 맛 자체는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비빔밥의 맛은 전혀 아니었다. 고추장 비슷한 소스조차 아니라 달달한 소스다. 그저 밥 위에 야채랑 소스를 얹어먹는다는 것만으로 비빔밥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정말 몰라서 그런 건지, 이름만 갖다 쓰는 것인지, 고추장이 비싸서 그런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비빔밥보울(Bibimbap Bowl)이라고 써져 있긴 했다. Bowl 스타일로 만든 비빔밥이라는 것 같은데, 그래도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쓸만한 작품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내 동의가 그들에게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으로서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맛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오래 걸릴 것 같은 긴 줄이 저 가짜 비빔밥 앞에 서있었다. 몇 번이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 ‘저건 진짜 비빔밥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커피라고 부르지 않는 아아를 마시다 못해 사랑하고, 피자 위에 파인애플을 얹어먹으니 이런 수준은 봐줘야 하나?  잘 모르겠다. 비빔밥의 다큐멘터리라도 학생 식당에 상영해야 하는 걸까.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비빔밥 같지 않는 비빔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누가 봐도 동양인인 내가 저 긴 줄에 서지 않는 것. 줄을 서는 것만으로 이것이 비빔밥이라는 것에 0.000001%라도 동의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싫다. 결국 콩고기로 만든 슈니첼과 감자튀김을 먹었다. 역시 독일은 감자튀김이 진짜 진짜 맛있다. 그리고 비빔밥만 별로지, 그래도 함부르크 학식은 꽤 괜찮다.




2024년 3월 22일


불과 며칠 전까지 봄날씨가 완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다시 추워졌다. 비 같은 우박이 내리는 함부르크의 봄날씨가 시작됐다. 그렇지, 아직 추워야 함부르크지. 올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추워 이상 기후로 걱정이 많았는데 3월의 날씨는 아직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랄까. 오늘은 이번 학기 과목 중 하나인 ’유엔 지속가능목표 실습 (Die UN-Nachhaltigkeitsziele in der Praxis)’의 마지막 마무리 수업 및 발표가 있는 날이다. 오전 11시. 오랜만에 줌을 켰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된 수업이라 마지막도 온라인으로 모였다. 코로나가 끝난 이후 대부분의 수업은 다시 대면수업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몇몇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이 수업은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UN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하는 그런 수업이었다. 아주 새롭기만 한 주제는 아니기도 했고, 온라인 수업에, 학점도 낮은 수업이라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하고 학점이나 채워야겠다’ 생각이 드는 그런 수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 신청한 수업은 다른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이 어떤 사정으로 폐지되면서 대체 수업으로 이 수업을 제안받아 얼떨결에 들은 수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른 과제들을 하다가 지치고 지쳐 이 과제를 드롭할지 말지도 엄청 고민했다. 그래도 며칠 쉬고 나니 기력이 회복돼서 겨우 마감일 직전에 벼락치기로 수업을 듣고 과제도 했다. 생각했던 대로 난도는 높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의외로 생각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았던 ‘지속가능성’이라는 말 뒤에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있었다. 


‘지속가능성(독일어: Nachhaltigkeit)’이라는 말의 유래부터 그랬다. 일각에서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너무 여러 군데에서 쓰여서 정확히 누가 만든 단어인지 불명확하다는 정보가 있고 나도 대충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사실 중요도는 인식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공부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독일에서 가장 처음 쓰인 말이라 했다. 그 배경도 이해하기 쉽게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당시 유럽에서는 여기저기 전쟁이 많이 일어났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그렇다, 바로 무기다.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 즉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때 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쓴 자원이 바로 숯, 나무였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무기를 원했고, 그만큼 많은 나무들이 베어져 나가야 했다. 칼로뷔츠는 이를 지키기 위해 나무 하나를 벨 때마다 또 하나를 심어야 지속가능성이 유지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1713년이면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이다. 300년 전부터 이런 개념을 개발했는데도 왜 세계는 아직도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당시에는 나무라는 에너지원이 석탄으로 대체되면서 더 이상 나무가 예전처럼 베어져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고,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7년에 UN 환경개발위원회가 발표한 Brundtland 보고서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재정의되면서 세계로 퍼지게 된다. 이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영어로 줄여서 SDG라고 부른다.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의 약자이다. 이 목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육하기 위해 독일의 여러 대학교가 연합하여 SDG-Campus라는 온라인 교육 사이트를 만들었고, 내가 들은 수업이 그 일환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오픈 강의이지만, 이 강의를 수료하면 독일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학점(ECTS)도 준다는 콘셉트이다. 물론 학교 측과의 사전 협의는 필요하지만, 이런 수업이야말로 정말 학과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가치 있는 교양 과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속가능발전목표는 크게만 17가지이고, 그 아래 각 목표마다의 세부목표가 또 여러 개 있다. 또 나라마다, 지역마다 각자의 세부목표를 설정한다. 우리나라도 우리나라만의 지속가능개발목표를 수립했다. 그래서 사실 한 번에 모든 내용을 교육하거나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캠퍼스가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많은 강의들 중에 가장 기초 과정만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또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UN의 일이거나, 환경 단체, 또는 정부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구석구석 뜯어보니 내가 또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노력들이 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의 복지, 성평등 등 여러 가지 주제를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가 환경 보호를 위해 실천하는 건강한 습관들, 여자든 남자든 차별하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 사회의 혁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타트업 등 정말 많다. 


결국 지속가능개발목표란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분류화하고 세분화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목표는 UN이 하자고 해서 하는 그런 목표가 아니라 누구든지 주도할 수 있는 그런 세계 공통의 목표이다. 그렇다면 나라나 시에서 자신만의 목표로 구체화하듯이 나도 개인의 관점에서 이 목표들을 내 삶에 적용시켜 보고 객관적으로 달성 여부를 팔로우 업하고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처음에는 학점만 따고 끝날 것 같았던 수업이었는데 이제는 학점과 관계없이 더 듣고 싶어졌다. 한국 대학들과도 협업해서 한국어 버전도 나왔으면 좋겠다. 끝으로 이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공유하며 오늘의 기록을 마무리한다.


“독일의 생산성에 있어서 독일에 사는 23종의 지렁이는
적어도 도이치방크(독일은행)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왜냐면 지렁이는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토양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Die 23 Regenwurmarten in Deutschland sind mindestens so wichtig für Deutschlands Produktivität wie die Deutsche Bank, weil die Regenwürmer den Boden herstellen, von dem wir alle leben.”   
- Olaf Tschimpke (독일 환경 보호 단체 NaBu 전대표) -













*지속가능성(Nachhaltigkeit)라는 말은 독일의 회계사이자 임업 담당 정치인이었던 칼로뷔츠(Hans Carl von Carlowitz)가 1713년에 쓴 책 ’Silvicultura oeconomica’에서 처음 정의한 말이다. 

이전 01화 다소 야박한 도서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