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독일 대학교의 여름 학기가 시작되는 시즌이다. 한국 대학교로 비교하자면 각 학년의 2학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봄도 성큼 다가왔다. 이제는 확실히 패딩을 넣어두어도 되는 날씨가 찾아왔다. 이번 주는 특히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윗집 이웃에게 초록초록한 화분 두 개를 선물 받았고, 독일에서 반려견에 대한 세금은 내지만 반려묘에 대한 세금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독일 동물병원이 정찰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번 학기부터는 학생용 교통카드가 드디어 디지털화가 되어, 학생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애플 월렛에 넣어서 애플 워치만으로도 교통 카드 검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매번 외출할 때마다 학생증을 깜빡하고 가면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는데 너무 편하다. 새로 시작하는 수업들은 모두 쿨한 강사님들과 재미있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두근거리고 이 수업에 대해서도 쓰고 싶은 게 많다. 요 근래 브런치북을 제대로 쓰기 시작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이번 주는 일이 많아서였는지 기록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고민이 될 정도이다.
그래도 그중에 가장 기록할만한 일은 바로 ‘독일 전역 대마초 부분 합법화’ 소식인 것 같다. 정확히는 ‘오락용 대마초’의 합법화라고 해야겠다. 오락용 대마초라는 건, 의사에게 처방받은 의료용 대마초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필요하다는 소견이 없이 순수하게 개인의 기호품으로써 소비하는 대마초를 의미한다.
대마초 부분 합법화는 오랜 기간 동안 독일에서 팽팽하게 논의되어 오던 안건인데 결국 2024년 4월 1일 법이 시행되었다. ‘부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여전히 많은 제약을 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법적으로 금지해 왔던 것을 부분으로나마 공식화했다는 것은 상당한 큰 파급 효과가 예상되는 일이다. 독일 사람들은 2024년 4월 1일부터 성인 한 명당 최대 25g의 대마초를 소비하거나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마약 합법 국가라고 오해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허용량 5g의 5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사실 네덜란드는 우리가 (혹은 내가) 오해해 온 것만큼 대마초의 소비 및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며, 오히려 이번에 이 법을 시행함으로써 독일이 유럽 국가 최초로 대마의 자율화 스타트를 끊은 셈이 되었다.
이 새로운 법이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위법자가 나왔다. 이 대마초법을 최초로 어긴 사람은 17살의 한 학생. 이 학생은 스포츠 시설 주위에서 조인트(담배처럼 말아서 피는 형태의 대마초를 일컫는 말)를 피다가 경찰에 잡혔다. 심지어 이 학생은 법을 두 개나 위반했다고 했다. 미성년자라서 위법인 건 알겠는데, 도대체 뭐가 또 불법인거지 싶었는데, 문제는 장소였다. 당연하게도 미성년자의 대마초 소비는 불법이다. 독일법에서는 18세부터 성인으로 보기 때문에, 아직 17세인 이 학생은 명백히 법을 위반한 셈이다. 그리고 성인이라고 해도, 스포츠 시설 구역에서는 대마초 소비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이 학생은 관련 지역 행정 부서에서 발급될 벌금 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보호자에게도 알려지게 된다.
바빠진 건 교통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교통경찰은 의심스러운 운전이 신고되거나 발견되면, 음주 단속을 하거나 THC 신속 검사라고 불리는 대마초 신속 검사로 단속을 한다. 독일 남부의 한 도시. 대마초 부분 합법화가 시행된 1일부터 4일까지 총 25건의 의심스러운 운전이 경찰에 신고되었다. 그중 19건이 THC 신속 검사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신속 검사 양성이 나오게 되면, 혈액 검사를 하게 된다. 혈액 검사에서 법으로 정한 THC 한도를 초과하게 될 경우 500유로(한화 약 73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고, 한 달간 운전이 금지되며, 벌점 2점이 주어진다고 한다. 이는 한 지역의 예시로, 도시마다 벌금이나 벌점 등의 내용이 조금씩은 다를 수 있다. 또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더 강화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된다. 만약 대마초 중독 등 상태가 심한 경우, 운전면허가 정지되거나 취득이 금지될 수도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마초 운전으로 적발된 운전자들의 수가 2023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봤을 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 4월에는 대마초의 소지 및 소비가 불법이었지만, 그때도 같은 지역, 같은 기간 동안 28건의 의심스러운 운전이 신고되었고, 그중 16건이 대마초 신속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한다. 두 해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너무 데이터가 적긴 하지만, 그만큼 합법화되었다 해서 갑자기 대마초를 과하게 소비하고 운전하다 걸린 사람이 크게 늘어난 건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이다.
그렇다, 사실 그동안 독일 사회에서 대마초의 소비는 많이 있어왔다. 이곳에 살면서 종종 전해 들은 독일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개인이 소량을 소지하는 것은 경찰도 그냥 넘겨주는 분위기라고 했었다. 대신 이렇게 불법으로 대마초를 ‘판매’하는 불법 조직에 대한 검거에 더 집중한다고 했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사실상 개인의 소지 및 소비는 비범죄화되어 왔던 셈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당당하게 소비했던 것은 아니다. 주로 누군가의 집이나 공원의 나무 뒤 공간 같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숨어서 피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도 퍼져가는 냄새를 막을 수는 없으니 공원 산책로를 걷는 내게까지 냄새가 퍼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고 있었는지 알기 어려우니, 통계 자료를 하나 찾아봤다.
독일 정부에서 대마초법(Canabisgesetz)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 최근 12개월 동안 한 번이라도 대마초를 소비한 사람의 수는 450만 명이었다고 한다. 어림잡아 독일 인구의 약 5% 정도이고, 남성의 10.7%, 여성의 6.8%가 한 번이라도 대마초를 소비했다는 의미가 된다. 대마초를 가장 자주 소비하는 나이대는 18세-24세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소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수치도 대마초가 불법이던 상황에서 조사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더 많은 사람이 소비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2021년 기준 독일의 흡연자수가 약 1,200만 명이라고 하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기도 하다. 게다가 독일 정부가 “최근 몇 년 동안 대마초 소비자의 수치가 증가했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더 많은 사람들이 대마초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특히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젊은 사람들의 소비가 많은 상황에서 독일 정부는 기존의 대마초 관리 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대마초법을 발표하면서 독일 정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포인트는 바로 대마초 소비자들의 ‘건강’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마초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졌고, 문제는 불법으로 거래되는 대마초안에 얼마만큼의 THC(담배의 니코틴처럼, 대마초 작용의 주가 되는 성분)가 들어있는지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으니 알 수 없다는 것. 이런 상황이 소비자의 건강을 오히려 해칠 수도 있는 원인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차라리 공식적으로 허가를 하고 정부든 어느 단체에서든 그 품질을 관리하고, 위험한 소비를 단속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변화는 ‘개인 대마초 재배의 허용’이다. 이제 독일 사람은 1가구당 최대 3그루의 대마를 재배할 수 있다. 소량이지만 개인이 자가 재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불법 거래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고, 개인도 좀 더 건강한 대마초 소비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도인 것 같다. 상업적인 판매는 아직 개시 전이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BBC News 코리아에서 보도한 기사 “독일 대마초 부분 합법화 논란“에 의하면, 결국은 법안이 통과되어 시행되기까지 이르렀지만, 이에 반대하는 전문가나 국민들도 아직 많은 상황이라고 한다. 아무리 집에서 직접 재배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식물 재배라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실패할 확률도 있는 법. 자가 재배가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고, 합법화는 되었으니 더 소비하고 싶은 마음에 암시장만 더 키우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추후 정치 상황에 따라 이 법안이 나중에 다시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아마 가장 걱정할 사람들은 유학생을 타국에 보낸 부모님들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자식이 혹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대마초 같은 걸 피우면 어떡하나 하고 말이다. 아니면 앞으로 유학을 앞두고 있을 유학생 본인도 걱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을 위해 그동안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내 개인적인 견해를 조금 더 보태보려 한다.
한국은 대마초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도 단연 안좋은 국가에 속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마초에 대해 안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도 거리를 둔다. 그런데 사실은 대마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하나 없이 그저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도 사실이다. 환상 또는 환타지와 유사한 이미지다. 나는 이런 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여기에 어울릴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면서 거리만 두는 것보다는 제대로 알고 싸워야 한다. 그저 사회가, 어른들이 나쁜 것이라고만 해서 나쁜 것인 줄 알았다가 호기심에 한 번 해봤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했다고 하자. ‘아니 이거 사실 좋은 거 아닐까?‘ 그 순간 머릿 속에 가지고 있던 대마초에 대한 이미지가 뒤바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대마초가 어디까지가 좋고 나쁘며, 장점이 무엇이고 단점이 무엇인지 평소에 알고 있다면 일단 첫째로 어떤 환타지 같은 이미지가 사라진다. 이는 충동적인 호기심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행여나 실수로 혹은 그래도 호기심에 대마초를 접하는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순간의 경험만을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미리 공부해둔 지식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를 판단하고 컨트롤 하기가 더 쉽다.
대마초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대마초가 중독적인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약과는 다르며,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들 말한다. 물론 당장 대마초를 한 번 피워봤다고 해서 바로 다음 날부터 대마초가 없이는 안될만큼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위험하다고 분류되는 마약은 ‘질병’이라고 부를 정도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각한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대마초는 실제로 스스로 적정선을 조절하면서 적당히 소비하는 사람들도 많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일 저녁 대마초를 핀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도 내가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학업이나 일 등 자기 생활을 잘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속은 모르는 것이지만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그래서 무조건 ‘대마초 나빠’, ‘중독될거야!’라는 부정적이기만 한 이미지는 조금 벗겨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마초에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중독까지는 모르더라도, ‘물질에 대한 의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긴장도가 높은 사회 속에서 이를 해소하고 이완할 건강한 방법을 습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는 스스로, 누군가는 사람을 통해, 또 누군가는 물질에 의존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하며 현대 사회에서 생존해 간다. 그 중 제일 건강하지 않은 방법이 ‘물질에 대한 의존’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게는 스트레스 받을 때 폭식하는 습관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중독적인 물질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 음식, 단 음식을 찾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그 중 하나지만,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한 방법으로 대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런 내게 대마초라는 것은 애초에 하나의 옵션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내 생각이 너무 개인적인 게 아닐까 싶어 조금 더 알아보니 독일 연방 건강 교육 센터 (BZgA)에서 이런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코카인이나 엑스터시와 마찬가지로, 대마초는 특히 심리적으로 의존적일 수 있다. 이것은 신체가 물질에 의존하지 않지만, 약물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욕망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Ähnlich wie Kokain oder Ecstasy kann Cannabis vor allem psychisch abhängig machen. Das bedeutet, der Körper ist zwar nicht auf die Substanz angewiesen, dennoch gibt es ein starkes Verlangen nach der Droge. Das Verlangen ist aber nicht plötzlich da, sondern entwickelt sich meist schleichend.) „
- BZgA -
한 마디로 오래 하다보면 결국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세상 살면서 무모할 정도로 강해질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나는 나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인생의 여정 위 에서 나는 이런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실은 이런 나의 가치관, 다짐이 있다면 독일에서 유학을 하든, 미국에서 유학을 하든, 영향 받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듯이 말이다.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다 보면, 일하며 이런 저런 사람 만나다 보면 대마초를 소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권유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누구도 내게 강요할 수 없다. 내 결정에 실망하는 건 상대가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누군가 권유하더라도 거절하면 되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독일에서도 이상한 사람이다. 결국은 ‘나의 선택’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되, 차라리 한 번쯤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미리 가져보고 이에 대한 자기만의 가치관을 세워두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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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 Unsplash @Ringo Hoffmann https://unsplash.com/ko/@zekro
달팽이 사진 출처
- @Yang
참고 자료 출처
- Bundesministerium für Gesundheit „Fragen und Antworten zum Canabisgesetz“
- Süddeutsche Zeitung „Nach Cannabis-Legalisierung: Polizei erwischt erste Gesetzesbrecher“
- BBC News 코리아 “독일 대마초 부분 합법화 논란”
- 나무위키: “대마초/국가별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