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26. 2024

유튜버도 아닌데 영상을 찍는 이유



요즘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세상을 떠날 때라도 온 걸까, 흠칫.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인가, 또 흠칫. 20대 중반에 알던 지인 중에 만나기만 하면 자신이 잘 나가던 시절 이야기만 하던 지인이 있었는데 나는 절대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 적이 있었더랬다. 당시 그 지인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대였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삶에서 얻는 경험도 추억도 늘어난다는 뜻이고, 그게 많아질수록 돌아볼 게 많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사실 평소에는 과거를 돌아볼 시간도 잘 없다. 낮에는 눈앞에 주어진 일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밤이 되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며 현실을 잊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이것이 과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고, 이번 달 초부터 집에 인터넷을 끊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남아돌던 스마트폰의 데이터도 2주 만에 바닥이 났다. 그렇게 집에서 인터넷이 전혀 안되다 보니 이것저것 집안 구석에 숨어있던 물건들에 손이 간다. 그렇게 집어 들게 된 것이 오래된 외장하드였다. 



지금처럼 구글 포토 같은 서비스가 없던 시절에 저장해 둔 것이다. 평소 사진이나 영상을 잘 정리해 두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큰  마음먹고 가지고 있던 자료를 하나의 외장하드에 넣어두었다. 정말 많은 추억이 거기 있었다. 다시 보니 그때의 기억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것부터, 이렇게 저장해 두지 않았다면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추억까지. 그 범위도 다양했다.



비록 정리가 다 안되서 좀 엉망진창이긴 해도 이렇게 많은 사진과 영상을 남겨 준 과거의 내게 감사하기까지 했다. 사실 사진보다 영상의 수가 훨씬 적어서 좀 아쉬웠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느껴졌던,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순간들이 수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그게 얼마나 특별한 순간이었는지,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순간이었는지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더 많은 영상을 남겨둘 걸 조금은 아쉽다. 힘들었다고만 생각했던 한국에서의 나의 직장 생활에 직장 상사 및 동료들과 웃음이 넘쳤던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그때 그 사람들을 다시 모은다고 해도 그때 그 사람들과 지금의 그 사람들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가 입고 있던 옷도, 각자의 헤어스타일도, 말투도, 우리가 즐겨 먹던 음식까지도 지금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즐겨가던 가게도 언젠가 없어지기도 하고, 주방장이 바뀌며 음식의 맛도 바뀐다. 가게의 인테리어, 벽지의 색깔, 조명, 우리가 자주 가던 동네의 풍경, 지하철, 버스 같은 대중교통의 모습까지. 하나하나 뜯어보면 더 많다. 사진도 좋지만, 특히나 그때의 분위기, 소리까지 모든 게 고스란히 담긴 그때의 영상은 그때를 다시 떠올리기 가장 좋은 추억의 소장품이 된다. 꼭 특수 효과가 들어간 멋진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찍은 소소한 풍경을 담은 영상들도 얼마든지 그 의미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저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서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만들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작게는 내 인생을 기록하는 의미에서 크게는 내가 소소하게 찍은 풍경이 미래에는 소중한 자료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함부르크 대학교 카페의 모습 (c) 2024 noi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금 공부하는 도시문화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메모, 텍스트 기록, 사진, 영상 등 도시를 관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나는 이 모든 방법을 좋아하지만 아직 가장 어려운 게 영상이다. 지금까지 개인 인스타,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 수많은 영상을 찍었고, 종종 편집도 했지만 도시를 관찰하고 만드는 영상은 무언가 달랐다. 그러던 중 이번 학기에 ‘도시 연구의 영상 기록’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각자 우리가 사는 도시 내에서 관심 있는 것을 정해서 짧은 영상을 찍는 것이 목표인 수업이다. 일종의 다큐 영상이라고 생각하면 쉬을 것 같다. 우리는 영상 관련 학과는 아니므로 촬영이나 편집에 필요한 화려한 기술을 배우지는 않는다. 대신 영상의 편집 능력보다 그 안에 담는 주제와 내용이 훨씬 중요한데, 이게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려웠다.



처음에는 유튜브에 올리던 대로 영상 하나 만들면 되겠지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래서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이 준비해 온 도시를 연구한 내용을 담은 영상도 보고 인문학적인 영상 제작에 관한 텍스트도 여럿 읽었다. 지금까지 영상은 그저 예쁘고 멋지고 아름다우면 전부인 줄 알았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시간들이었다. 영상에 들어가는 배경 음악, 내레이션의 여부, 내레이션의 톤, 편집 방식, 촬영 각도 등 하나하나가 모두 계산된 것이고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열심히 카메라로 영상에 담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분위기, 이 바람, 이 냄새, 이 느낌을 온전히 영상에 담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때도 많다. 또는 내 삶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갈수록 별 거 아니지만 담아두고 싶은 내 일상의 장면장면이 늘어간다. 눈앞에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 풍경 뒤로 내 뒤를 지나가는 관광버스의 엔진 소리, 지나가는 현지인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수다, 누군가 흘리고 간 향수 냄새. 때로는 일요일 오전 느긋하게 밀린 드라마를 보던 중 부엌에서 들려오는 전기밥솥의 증기 배출 소리가 나서 부엌을 돌아보는 순간 같은 것들. 맨날 봐서 익숙한 부엌이지만 우주에서 이렇게 생긴 부엌은 아마 내 부엌 하나일 테니까. 그 부엌을 기억하는 것도 나 하나 일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순간 (c) 2024 noi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도 좋지만, 영상만이 담아낼 수 있는 매력들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요즘은 멋진 음악이 없어도, 멋진 내레이션이 없어도 일단은 최대한 많이 내 삶의 조각들을 모으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도 말이다. 다정한 노부부의 뒷모습이나 촌스러운 옷을 입고 노는 축제에 가겠다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의 귀여운 모습부터, 열심히 길을 건너는 달팽이까지도. 

이전 10화 배려는 배려를 낳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