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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n 09. 2024

정말 독일은 대학 등록금이 없나요?

하펜시티대학교 도시문화학에 대한 7문 7답

2005년, 한국에서 신입생이었을 때 ‘문학과 성’이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의 교수님이 독일 유학파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독일 대학 등록금이 지금은 무료인데 앞으로는 바뀔 수도 있으니 늦기 전에 관심 있으면 빨리 독일로 유학을 가라고 우리에게 추천했었다. 이제 막 새로운 학교에 들어온 신입생이었던 나와 내 친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이 들릴 뿐이었다. 게다가 당시 내 전공은 일어일문이었다. 지금 일본어 배우기도 바빠 죽겠는데 독일 유학이라니. 독일에 딱히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내가 2024년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을 준비하고 있다.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그 교수님이 간간이 들려주셨던 독일 유학 이야기가 지금도 가끔씩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가끔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 우연히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어쩌면 언젠가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이 나중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문답 형식으로 하펜시티 대학교 도시문화학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려고 한다. 독일은 학교마다 지원 방식이나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그래도 하펜시티대학에 관심이 있거나 독일의 전반적인 일반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학교 소개가 담긴 소책자 (c) 2024 noi




학과 과정은 몇 년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하펜시티대학 도시문화학은 총 3년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2년제 아니면 4년제로 나누어진 한국 대학 시스템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도 4년제라고 해서 4년 만에 끝내지는 않듯이 여기도 3년 과정이라고 해서 모든 학생이 다 3년 만에 끝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은 3년 만에 바로 졸업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천천히 하기도 한다. 개인의 사정이나 계획에 따라서 달라지는 편이다. 다만, 너무 오래 다니면 장학금 신청할 때 결격 사유가 되기도 하고, 또 유학생으로서 주의해야 할 점은 학생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게 최대 10년이라는 점이다.




입학 과정은 어땠나요? 학생 수는 어느 정도인가요?


독일 대학과 한국 대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대부분의 독일 대학은 겨울 학기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다. 그래서 학교 지원은 보통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진행되는데 우리 학교의 경우 6월 1일에서 7월 15일까지 한 달 반 정도의 기간을 두고 지원이 진행된다. 독일 학생들은 아비투어라는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은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대학에 지원한다. 내 경우는 한국에서 이미 대학교를 한 번 졸업했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독일 대학에 지원했다. 한국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독일 대학에 지원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규정 같은 게 있다. 물론 지원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해서 합격한다는 건 아니다. 뭐든지 성적이 높으면 입학할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만, 어디든 도전해 볼 만하다는 얘기다.


외국인으로서 중요한 건 독일어 성적이다. 어쨌든 이미 졸업한 학교 성적을 어떻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당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영역은 독일어 시험 점수뿐이었다. 외국인 유학생으로서 합격의 당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단연 독일어 점수였다. 독일 대학의 석사나 박사 과정은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곳도 많지만, 학사는 대부분의 경우 독일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일반적인 독일 대학 학사는 독일어 성적의 기준이 높고, 실제로도 수업이 모두 독일어로 진행되는 만큼 독일어 능력이 확실히 중요하다. 독일어 기준은 학교마다 다른데 대부분은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에서 C1 이상의 성적을 요구한다. C2가 제일 높고 C1이 그다음이라 꽤 높은 점수를 요구하는 편이다(예술 대학은 예외). 우리 학교의 경우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중에서 세 영역 이상 C1, 한 영역은 B2가 기준이었다. 나는 다행히 딱 B2하나와 나머지 세 영역에 C1을 받아서 지원 기준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런 점수 외에도 가산점이 주어지는 케이스들이 다양하게 있어서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교의 안내를 꼼꼼히 읽어보면 좋다. 기억에 남는 건 함부르크 대학의 경우 여러 가지 사회 봉사 활동을 한 이력이 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런 이력도 가산점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과 정원은 다른 과에 비하면 수가 적은 편이다. 내가 입학했을 때 정원은 약 60명 정도였다. 나는 학생 수가 많은 것보다 이게 더 좋았다. 그룹에 속하기도 더 쉬웠고, 꼭 친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학생들의 얼굴을 알고 지내다 보니 좀 더 친밀한 느낌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비디오그라피 수업 중 찰칵 (c) 2024 noi



등록금은 정말 없나요?


예전 ‘문학과 성’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등록금에는 확실히 변화가 있어왔다. 지금도 조금씩 변화는 생기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한국에 비교하면 등록금이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이번 학기에 330유로를 냈다. 한화로는 약 4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이다(처음 입학했을 때보다 지금 유로 환율이 많이 올랐다). 학기당 몇백만 원씩 등록금을 내던 한국에서의 학사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 게다가 이 학기 등록금에는 함부르크뿐 아니라 근교까지 다닐 수 있는 대중교통 자유이용권 같은 게 포함되어 있다. 만약에 본인이 학교에 걸어 다닐 만큼 정말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있다면 이 대중교통 티켓조차 환불받을 수 있다. 만약 독일 대학에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와 비슷한 등록금을 내야 했다면 나는 두 번째 학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못했을 것이다). 최근에는 물가 상승 및 여러 가지 재정난으로 등록금이나 학생 식당 요금 등이 오르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올라도 감사히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등록금은 지역에 따라 또는 같은 지역이라도 학교에 따라 또 외국인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곳은 현지인에게는 등록금을 받지 않지만 외국인에게는 받는 다는 곳도 있다고 한다. 등록금 제도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관심이 있다면 더 비싸지기 전에 지원해보는 것도 고려할만한 사항일 것이다.



등록금 외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장점인 등록금 외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내게는 학과 분위기가 가장 큰 장점이었다. 아무래도 학과의 주제 자체가 인종 차별, 젠트리피케이션, 이민, 도시의 녹지 공간, 디지털 시티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슈들을 공부하는 학과이다 보니 교수님을 비롯해서 학생들까지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람에 가장 지치고 힘든 내게 있어서 이런 환경은 힘들었던 유학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경직되거나 엄숙하지 않고 유연하고 서로 친절하다. 타과면 몰라도 우리 과 학생이나 강사진과 나 사이에 큰 불쾌함을 겪었던 적은 없다. 아, 딱 학생이 딱 한 명 있긴 했는데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교수님들과도 무조건 존대를 쓰지도 않고 서로 친밀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엄숙한 학과와 자유로운 예술계통 학과의 중간 정도인 것 같다. 너무 경직되 있지는 않으면서도 너무 자유분방하지는 않은, 적당히 자유로운 느낌. 그래서 나와도 잘 맞았던 것 같다.


또 하나의 장점은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역사, 문화 이론, 공간 이론, 도시 연구 실습, 건축법, 도시 경제, 도시 커뮤니케이션, 도시 시각화 등 도시에 관한 인문 계통의 과목은 거의 다 접해볼 수 있도록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가지만 꾸준히 파기보다 다양한 영역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멀티포텐셜라이트 성향인 내게는 찰떡같은 학과였고, 진심으로 공부를 즐기고 있다(물론 독일어라는 벽에 자주 무너졌지만 말이다).


유학 생활 중 예쁜 노을은 덤 (c) 2024 noi


단점은 무엇인가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마지막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몇몇 학생들이 다양하게 배우는 건 좋지만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아서 고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디로 취직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학생들도 왕왕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의대생은 의사가 되고, 컴공과는 프로그래머가 되는데, 우리는 뭐가 되어야 하나? 이런 고민이다. 그래서 이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학과 공부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진로를 충분히 고민하고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졸업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졸업은 약 30페이지 정도의 논문을 쓰면서 마무리된다. 물론 졸업을 위한 최소 학점도 충족시켜야 한다. 어떤 학과들은 졸업장에 쓰이는 점수가 아주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리 과는 그런 계열은 아니라고 한다. 학기 중 하나의 시험을 3번 낙제하거나, 졸업 논문을 두 번 낙제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 이 두 개만 유의하면, 졸업이 아주 많이 힘든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팽팽 놀아도 졸업하는 그런 건 아니다. 기본적인 노력만 하면, 아주 힘들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릴랙스 하고 이지고잉인 편이었던 학기 중 과제와는 달리 졸업 논문에 있어서는 교수님들도 모두 엄격해지시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려고 한다. 그 편이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이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건 졸업에 당락을 끼치는 건 공부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재정 상황도 큰 영향을 미친다. 등록금이 거의 없다고는 하나 월세나 생활비 등의 돈은 당연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부모님께 지원을 받고 공부에 집중해서 너무 늦지 않게 졸업하는 것이 가장 좋고, 만약 본인이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면 외국인으로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생활이 힘들 수 있다. 물리적으로도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고 피로가 쌓이면 시간이 나도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내 경우도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논문을 쓸 때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조금씩 테스트해보면서 조정해 나갈 예정이다.



졸업 후 취업은 어디로 하나요?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들은 경험으로 생각나는 분야들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저널리스트(음악, 음식, 도시 등 다양한 분야 가능), 작가, 예술 계통, 라디오, 방송국 등 미디어, 유튜브 영상 편집, NGO, 도시계획 부서, 스마트시티 등 도시 연구 관련 연구소(lab) 취직 & 석박사 계속 공부, 관심 있는 일반 회사 취직 등이 있다. 정말 다양하지 않은가? 나는 이 점을 사랑하고 어떤 학생들은 이 점 때문에 고민하지만, 나는 살면서 꼭 필요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건강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단, 어떤 영역은 석사가 필수로 여겨지는 영역이 있고, 또 아닌 영역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석사를 미리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좋다. 나는 이 공부가 재밌어서 석사를 하고 싶은데 내가 일하고자 하는 영역은 꼭 석사가 필수는 아니기 때문에 아직 고민 중이다. 예술 계통에 대해 첨언하자면 우리 과를 졸업하고 함부르크예술대학인 Hfbk 석사로 지원도 가능하다고 들었다. 실제로 석사 전향한 졸업생도 만나봤고, 내 친구들 중에서도 함부르크예대에서 석사를 준비 중인 친구들이 제법 있다.




대체 내가 여기서 무엇을 배우는지 알쏭달쏭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사실 우리 학교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알려진 학교는 아니다. 우리 과도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이 학교에서 이 학과를 다니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고, 속세에서 말하는 ‘화려한 성공’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안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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