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전공은 ‘도시문화학’입니다
“무슨 일해?(Was machst du?)”
“학생이야(Ich bin Studentin)”
“전공이 뭐야?(was studierst du?)”
“도시문화학이라는 걸 공부해.(Ich studiere Kultur der Metropole.)”
“도시… 문화학…? (Kultur der… Metropole?)”
어딜 가든 첫 만남에서 주고받는 질문. 처음 한국 회사를 퇴사하고 홀몸으로 왔을 때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게 어렵다 못해 나중엔 스트레스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학생이 되고 나서는 나를 소개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그런데 나를 소개하는 게 쉬워지고 나니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바로 내가 공부하는 전공에 대한 설명이다. 내 전공을 이야기하면 백이면 백 전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학과기 때문이다. 한국인, 독일인, 미국인 가릴 것 없이 다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도 그랬을 거다. 내가 가끔 도시문화, 도시문화 말은 하는데 대체 저게 뭔가 싶었을 게다.
맞다. 내가 전공하는 과는 일반적인 과는 아니다. 내가 첫 대학에서 졸업한 일어일문과나 경영학과 같은 대중적인 학과는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과는 생긴 지 십이삼 년 정도 된 신생 학과이다.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특이한 전공이다. 내 전공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과에서 배우는 내용은 정말 범위가 넓고 다양해서 뭐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매번 주절주절 빙빙 둘러 설명하면서 진땀을 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인 친구들도 설명하기가 모호해서 대충 건축학이나 도시 계획이라고 둘러댄다고 했다. 어차피 모든 사람에게 우리 과를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이다.
처음에는 내 전공을 설명하기 힘든 이유가 위의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학과라는 점과 그리고 복합 학문에 가까워서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그런데 사실 학과명이 우리가 배우는 모든 걸 설명한다. 도시 문화. 도시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 도시라는 말의 뜻도 알고, 문화라는 말의 뜻도 알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머릿속이 뿌옇게 되면서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을 뿐이다.
문화라는 정의는 사실 실제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다른 정의를 내릴 만큼 그 범위가 넓고 모호한 개념이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모든 것, 인간의 생활양식, 규범, 관습, 예술, 상징적인 특성, 사회적인 특성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문화를 정의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그저 내가 도시문화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내가 흥미로웠던 과목 중심으로), 그리고 이 전공이 추천할 만한지 공유하려고 한다.
전체적인 수업들은 ‘이론 수업’, ‘실습수업’이 적절하게 섞여있는데, 이론은 이론대로 재미있었고, 실습은 또 실습대로 즐거웠다. 가장 처음 배운 것은 문화 이론이었다. 미셸 푸코, 앙리 르페브르 등 유명한 철학자, 사회학자들이 남긴 이론을 이 시간 동안 공부한다. 이 수업은 학기가 지날수록 ‘응용 문화 이론’, ‘공간 이론’ 등으로 발전하면서 배움의 영역을 넓혀 간다. ‘문화 이론’에서는 말 그대로 이론을 배우고, ‘응용 문화 이론’에서는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서 실제 사례를 찾아 배운 이론을 접목시켜 보는 시간을 가진다.
문화에 무지했던 나는 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독일어로 문화 이론을 배운다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은데(전문 용어가 많고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개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이해했을 때 배움의 즐거움이 가장 컸던 영역이다. 문화 이론에서 공간 이론까지 배우면서 내가 사는 도시, 내가 사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 문화 이론 수업에 대한 과제를 작성했을 때 내 에세이의 주제는 ‘멀티컬처러(Multiculturer)’였다. 도시 문화에서 ‘이민’이나 ‘다인종’, ‘다양성’은 자주 언급되는 주제다. 이민자들의 삶은 두 가지 가면을 쓰고 사는 것과 비슷하다. 독일인에게는 ‘독일어 잘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한국인에게는 ‘한국어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상실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이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부모는 내 아이가 독일에서 한국과 다른 교육을 받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겪을지 모를 인종 차별을 걱정해야 한다.
나는 이민을 온 건 아니지만, 어쨌든 타지로 나와있는 입장에서 인종차별을 겪거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을 때면 풀이 죽을 때도 있었다. 멀쩡한 내 나라 놔두고 괜히 남의 나라에 얹혀사는 것 같아 셋방살이하는 식구 마냥 눈치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문화 이론 수업에서 만난 영국의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이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스튜어트 홀은 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다. 세계화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이런 시대에 이방인들은 도시의 액세서리 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다양성을 공존하고 존중받는 도시가 ‘힙한 도시’가 되고, 그런 도시에 ‘양질의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거나 한국의 음식을 공유하는 나라는 존재가 함부르크라는 도시의 ‘다양성’을 더 빛나게 하는 액세서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니 꽉 막힌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이제 전혀 주눅 들지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많은 문화학에서 조명하는 ‘이민자’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다. 완전히 이주해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도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의 정체성도 바뀌어 갔다. 교포들이 ‘한국어 잘하네’라는 말을 농담처럼 들으며 상실감을 느끼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제 독일 사람 다 됐네’, ‘유럽인이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한국을 떠나며 그 어느 때보다 더 한국의 음식이나 문화를 더 아끼게 됐지만, 동시에 한국에서는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좋은 점들을 여기에서도 듬뿍 배우고 있다. 가능하면 독일과 한국의 장점을 흡수해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런 나도 이제 한국인도 아니고 독일인도 아닌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나 같은 사람들이 아마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멀티컬처러’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외노자’라는 말은 너무 구슬프고, 그저 유학생, 해외취업 같은 말로는 이런 많은 사람들을 다 담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내용으로 에세이를 썼고 나도 교수님도 매우 흡족한(?) 윈윈의 결과물이 나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를 새로 만날 때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는 질문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질문이 교포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또 출신 국가로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이 질문은 의미가 없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학교 친구 중 하나는 집안이 아주 국제적이다. 엄마도 혼혈, 아빠도 혼혈, 할아버지도 혼혈 이런 식으로 아주 다양한 국가가 그녀의 피에는 섞여 있고, 다양한 문화가 그 집안에 녹아들어 문화적으로도 아주 독특한 경험을 한 친구다. 이런 친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고 물어본들 의미가 있을까. 그 사람의 출신 국가 배경 같은 건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가 먼저 이야기하게 되어있다. 그러면 그때 조금 더 물어도 전혀 늦지 않다.
이토록 문화이론이라는 수업 하나만으로도 나의 가치관, 일상생활에서의 습관 같은 게 크게 바뀌었다. 이런 과목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면? 정말 흥미롭다. 도시문화학이 사회문화학과 다른 점은 말 그대로 ‘도시’에 집중한 문화학이라는 점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된 내용을 배우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정말 즐겁게 공부했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졸업하는 게 아쉬울 지경. 물론 이것도 개인의 성향과 맞아야 한다. 나는 뼛속까지 인문계열인 사람이고 (이공계는 젬병) 그래서 이 모든 내용이 이렇게 재밌는 지도 모르겠다. 쓰면서도 나는 즐거웠다. 읽는 분들은 어떠셨을지 궁금하다. 다음 주에도 또 이어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