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Discord 15화

#15.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어요

HR제도는 왜 매번 실패만 하는가?

by 인사부조화

올해는 OKR, 작년에는 상대평가 폐지, 내년에는 AI agent. 매년 최신 HR 트렌드를 찾아 회사에 도입합니다. 구글의 보상 체계를 벤치마킹하고, 넷플릭스의 조직 문화를 따라 해 보기도 하죠.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요? 의도와 달리 제도는 현장과 겉돌며, 구성원들은 냉소적이 되고 리더들은 "역시 우리 회사랑은 안 맞네"하며 애써 수습하기 급급합니다.


최신 유행하고, 다른 데서 성공도 했던 제도를 열심히 배워 도입했는데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건물의'설계도'(철학) 없이는, 아무리 멋지고 유행하는 '자재(HR제도)'만 사들여선 집을 제대로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탕이되는 밑그림이 없으니 자재들이 서로 맞물리지 않고 삐걱대는 것이 당연한 결과니까요. 그렇다면 HR에서의 '설계도'란 무엇일까요?



1. HR철학: 모든 일의 출발점


철학이라고 해서 뭔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단순한 것을 정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where) 가야 하는지를 정하고 아는 것이죠.


소위 HR 철학이라고 한다면, 저는 이 단 2가지 질문에만 답을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는 '어떤 회사'를 지향하는가?" (기업 문화, 정체성)

"이 조직에서 뛸 '적합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 " (인재상)


"평가를 어떻게 바꿀까?", "보상 수준은 적절한가?", "이 사람을 영입하는 게 맞나?"와 같은 세세한 각론 질문들에 앞서, 전체 HR 철학에 대한 총론이 없다면 제도들은 표류하기 시작합니다. A 제도는 이쪽으로, B 제도는 저쪽으로 이리저리 각자가 처해 있는 트렌드만 쫓아다니며 조직의 에너지를 갉아먹게 되는 거죠.



2. '차가운 프로팀' VS '따뜻한 가족'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HR철학을 정할 때 제일 중요한 '한 질문'이 뭐냐고 한다면 저는 이 질문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프로팀이야 가족이야, 이 중에서 조직 운영을 어떤 스타일로 하고 싶어?"


세상에 많은 회사가 있고 다양한 조직들이 있지만, 어느 회사이든 간에 이 둘 중 하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대비되는 특징이 선명하기 때문이죠.

A. 프로팀 (Professional): 승리(Winning), 성과(Performance)가 조직 운영의 기준이 됩니다.

- 조직은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며(오늘보단 내일이 더 나아야), 승리와 우승(업계 Top)이 지상 과제입니다. 따라서 우승에 필요한 최고의 인재를 영입해야 하며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을 제공합니다.
- 임직원들은 승리와 우승을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합니다. 더 나은 실력과 발전을 위해 매일 치열한 경쟁과 스트레스, 강도 높은 훈련(업무)도 감수해야 합니다. 실력이 떨어지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착하고 좋은 베테랑이라도 방출될 각오도 해야 합니다. 성과에 따라 냉정하게 평가받고 기여한 만큼 '차등적'으로 보상받습니다.

#능력주의 #상대평가 #성과차등 #외부 영입 #저성과자 퇴출 #경쟁압박 #핵심 인재 #속도
B. 가족 공동체 (One team): 유지(Retention), 안정(Stability)이 조직 운영의 기준이 됩니다.

- 조직은 임직원들을 '식구'로 생각하며, 이들의 '고용 안정'과 '예측 가능한 삶'을 최대한 보호합니다. 뛰어난 성과를 위해 Risk를 짊어지기보다는 성과가 줄더라도 Risk를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임직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융화, 조화'를 약속합니다.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동료'가 실수했다고 내치지 않고, 성과가 다소 부족하더라 감싸주고 끝까지 함께 갑니다. 긴장감과 갈등 유발하는 '모난 돌' 같은 천재보다, 조직에 충성하는 구성원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개개인의 성과보다는 조직 전체의 성과와 연공에 의해 보상받습니다.

#온정주의 #절대평가 #연공서열 #내부 육성 #고용 안정 #조화안정 #복리후생 #행복


회사의 HR 철학을 정하는 것은 결국, 위의 두 개의 큰 가치가서로 충돌할 때, 우리 회사는 A와 B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느 것에 더 가까워야 하는지, 그 선택에 대한결과(반대편의 포기)를 감수해도 괜찮은지를 답하는 것입니다.



3. 세상에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다


이때 누군가는 꼭 이렇게 말할 겁니다. "'프로팀'처럼 성과도 내고, '가족'과 같은 소속감과 안정감 모두를 갖춘 회사를 만들면 안 되나요? 그런 곳이 곧 좋은 회사 아닌가요?"


듣기엔 너무 좋은 말이죠. 실제 대부분의 리더들은 이 두 가치를 '적절히 섞으면(Balancing)' 완벽한 최고의 회사가 될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수많은

HR 제도를 구렁텅이로 몰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고 HR 철학의 선명함을 가로막은 장본인이자, '환상'같은 것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냉정함/성과주의'와 '온정/집단주의'는 본질적으로 상호 배타적(Mutually Exclusive)입니다. 제한된 자원 하에서 이 두 가치는 늘 충돌하기 마련이거든요.


사례 1 (평가와 보상) '프로팀(A)' 철학이라면, MVP(S등급) 선수에게 보너스의 50%를 몰아주고, 벤치만 달군(C등급) 선수는 보너스를 최소화/동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족(B)'같은 따뜻함이 작동하는 리더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걔가 티 안나도 얼마나 궂은일을 도맡았는데...", "이러면 전체 팀 사기가 떨어진다"며 결국 MVP의 보너스를 줄이고 C등급 선수를 좀 더 챙겨줍니다.

결과: MVP는 '그 고생을 한 내 성과가 고작 이 정도 대우인가'라며 환멸을 느끼고 FA 시장(이직)을 알아봅니다. C급 선수는 '어떻게든 그냥 버티고 벤치만 지켜도 밥은 먹여준다'라고 학습합니다. '프로팀'의 성과도, '가족'의 안정도 아닌 '하향 평준화'만 남습니다.
사례 2 (성과 관리/육성)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3년째 별 다른 성과를 못 내는 '사람은 좋은' 김 부장이 있습니다. '프로팀(A)' 철학은 그를 즉시 벤치로 보내고 다른 선수를 기용하는 것입니다. '가족(B)' 철학은 "그가 과거에 얼마나 잘했느냐", "동료를 내칠 순 없다"라며 '다른 괜찮은 자리가 날 때까지는 일단 유지...'라며 그를 감싸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결과: 회사가 'A'를 외치며 인사 시스템을 도입해 봤자, 'B'의 논리(온정)에 밀려 아무도 실행하지 못합니다. 김 부장은 계속 자리를 지키고(중요 보직 유지)하고, 팀의 성과는 개선되지 않습니다. 유능한 팀원들은 승진하거나 성장할 기회를 잃고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이직합니다.


따뜻한 아아 만들어 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거 없어요.


물론 성과도 Top이고, 조직 간의 협력과 단합도 뛰어난 '극소수의 예외' 같은 회사가 있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잘 나가는 일부 Top-tier 회사(NVIDIA 같은)가 대게 그러하지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러한 회사들은 그들은 A와 B를 적절히 'Mix'해서 '타협'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회사들의 진짜 본질은 "엄청나게 압도적인 성과주의(A)를 밑바탕으로 한, '조건부' 공동체(B)"입니다. 이 같은 회사에서의 동료애라 함은 "저렇게 뛰어나고 훌륭한 동료들과 같은 조직에서 함께 일한다"는 상호 존중과 인정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저 사람도 '최소한 나처럼 열심히 치열하게 일하고 기여할 것이다'는 믿음이 깔려 있지요. 그렇게 전우애를 쌓아나가는 거지, 그저 '우리는 같은 회사 동료니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하면서 무조건적인 배려와 자리를 퍼주는 운명 공동체가아니란 말입니다.


요컨데 이러한 극소수의 유니콘 같은 회사들은 일반적인 회사보다 훨씬 더 순도 높은 "압도적인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그 위에서만 존재 가능한 "새로운 공동체"를 다시 세운 조직인 것이죠.



4. 그래서 과감히 포기할 걸 정해야 한다


따라서, HR 철학 논의의 결론은 이러한 대표적인 두 가치가 충돌할 때, '무엇을 먼저 포기할지'를 알고 정하는 것입니다.기꺼이 그 나머지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A(프로팀)를 선택했다면, 빠른 성장과 경쟁력, 치열함을 얻는 대신 높은 스트레스와 높은 이직률, 직원들의 번아웃, 안정감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B(가족)을 선택했다면 안락함과 고용 안정감, 낮은 이직률을 얻는 대신 빠른 혁신과 고성과, 높은 수준의 인재 밀도는 '포기'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매번 새로운 트렌디한 제도를 도입하고, 제도를 바꾸면서도 실패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 포기를 할 줄 몰라서입니다.


'말로는' A(프로팀)를 원한다고 선언합니다. OKR, 성과급 차등, 'Agile' 같은 모든 제도를 A같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보이는 행동에서는 B(가족)의 온정주의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좋은데", "팀 분위기 때문에"라며 냉정한 평가와 관리를 유보합니다. 이 같은 모순과 혼란 속에서 S급 인재는 '이곳은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회사를 떠나고, 평범한 인재들은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학습합니다.


'말로는' B(가족) 같은 안정과 행복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한 팀이다", "당신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한다고"라고 약속합니다. 구성원들은 이 약속을 믿고, '프로팀' 수준의 보상이 아니더라도 묵묵히 충성하며 헌신합니다. 하지만 경영이 조금만 어려워지거나 CEO가 바뀌면, 갑자기 A(프로팀)의 논리를 꺼내 듭니다. 하루아침에 냉정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오랫동안 헌신한 직원을 '성과 미달'로 분류해 내보냅니다. 약속을 믿었던 구성원들은 '배신'을 당합니다. 이들은 S급 인재가 아니라, '안정'을 대가로 '충성'을 바쳤던 사람들입니다.이들은 갈 곳도 잃고, 신뢰도 잃으며 조직 전체가 극도의 공포와 냉소에 빠집니다.


결국 우리는 어떤 모순이든, A(프로팀)의 성과도 잃고, B(가족)의 장점이었던 끈끈함마저 잃게 됩니다. HR철학의 부재는 결국 '이 모든 것을 잃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게 둘 다 포기할 겁니까?


#HR철학 #기업문화 #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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