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Discord 04화

#4. 피자 나누기: 평등한 척하는 불공정

피자 몇 조각 먹을 수 있나요?

by 인사부조화




식탁에 8조각의 피자 한판과 4명의 사람이 있다.
어떻게 피자를 나누는 것이 공정할까?



요즘 요행하는 말로 소위 'even' 하게 나눈다면 1명당 2조각씩 나누면 공정하고 공평할 것이다.




그런데 그 4명이 2명의 성인 운동선수와 2명의 어린아이인 경우라면 어떨까? 혹은 어떤 1명이 치즈 알레르기가 있어 피자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두 경우 모두 앞서 피자 조각을 'even'하게 나누어 주는 시도를 놓고 공정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상황을 하나 더 추가해 보자. 그 피자를 나누어 주고 먹는 장소가 '피자 빨리 먹기 대회' 라면? 운동선수와 어린아이에게 모두 동일하게 2조각씩 나누어 주는 것이 공정한가? 똑같이 나누어 줘 봐야 뻔하고, 흥미로운 게임이 되지 않을 테니 운동선수에게 3조각, 어린아이에게 1조각을 주었다 치자. 운동선수가 2조각 반을 먹는 동안 어린아이가 1조각의 몫을 다 먹어 치웠다. 이러면 누가 더 잘한 것인가? 누구에게 더 높은 상을 줘야 하는가?

이런 피자 나누기와 같은 일들을 많은 회사에서 쉽게 목격할수 있다. 업무 분장(R&R)이다. 연말연시 또는 조직개편 시즌이면 업무분장에 소란스럽다. 누구는 피자 1조각 먹을 수 있는 소화력으로 2조각을 원한다. 어떤 누구는 혼자서 4조각도 너끈히 먹을 수 있음에도 1조각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구는 자기는 핫소스 없으면 절대 안 먹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피자를 누군가 떠먹여 주길 은근히 바라는 사람도있다.

이런 대환장파티 속에서 'even'하게라는 말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피자를 나눠줘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리더가 이 피자가 도대체 뭘로 만들어졌는지, 이 사람들은 각각 어떤 맛의 취향이 있고, 얼마큼 먹고 소화해 낼 수 있는지를 평상시에 면밀하게 관찰해놓지 않는다면 그 조직엔 배고파 쫄쫄 굶는 사람들, 그리고 그 옆에 누가 먹다 배불러 남긴 피자들이 굴러다니게 된다. 다 식어빠진 피자를 그제야 배고파하는 사람에게 허겁지겁 쥐여줘 본들 이미 늦었다. 말라비틀어진 피자를 누군들 맛있게 먹을 수 있겠는가?

사실 피자를 나누어 주는 것보다 더 복잡 미묘한 것이 있다. 누가 피자를 빨리 먹었는지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앞선 상황처럼 운동선수가 3조각 중에 2조각 반을 먹어 치우는 동안 어린아이가 1조각을 다 먹은 경우에 누가 더 잘했는지, 누구에게 상을 줘야할지 정하는 일은 단순하지는 않다.

때로 아이 치고는 빨리 잘 먹었다고, 그 아이보다 2배는 넘게먹은 운동선수보다 어린아이에게 더 많은 칭찬과 후한 포상을 내리는 경기를 볼 수도 있다. 또 어떤 때에는 애초에 운동선수와 어린아이의 대회 체급을 성인부와 아이부로 구분해서 아이가 아무리 잘 먹어도 성인의 상금을 뛰어넘을 수 없도록 처음부터 리그가 나뉘어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뛰어난 어린아이가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성인과 똑같이 2조각 반을 먹었음에도 같은 양을 먹은 성인보다 상금을 무조건 적게 받게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전자의 경우엔 아무도 더 많이 빨리 먹으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자기한테 주어진 적당한 양만 먹어 치워도 알아서 후한 상금을 챙겨주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더 많이 빨리 먹으려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비록 성인 선수보다 아무리 잘 먹은 들 그들만큼의 인정과 상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아이가 피자를 더 먹을 의욕과 잠재력을 꺾어버리고 그저 1조각만 먹고 쉬는 것이 우월 전략인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성장과 outperform의 기회를 박탈한다.

피자를, 즉 업무를 잘 나누어 주는 일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내 조직의 사람과 일에 대해 평소에 잘 보고 듣고 확인하고, 리더로서 응당 했어야 할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면 시행착오를 당연히 줄일 수 있다. 최대한 인정 많고 세심하게, 다각도의 렌즈를 통해 이리저리 따져보고 detail 하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당연한 일마저 귀찮아하고 있다가 피자가 배달 온 뒤 그제야 '자 이 피자 먹을 사람 손'을 외치거나, 심지어는 식탁에 무슨 피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뒤따라 오는 조직의 원성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반대로 평가를 하고 성과를 논하는 일은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자기 주관과 인정으로 누군가의사정과 편의를 봐주거나, 평가 대상을 나누고 복잡하게 해 놔서 처음부터 성과에 대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양이든 질이든 우리가 흔히들 '성과'라 부를 수 있는 것들로 simple하게 접근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피자만 잘 나누어줘도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



#회사원 #업무분장 #평가 #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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