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이 동네는 변한 것도 없이 그대로네.”
토요일 저녁.
창밖으로 지나가는 낮은 건물들에 시선을 던지던 서정의 말투에서 반가움이 묻어 나왔다.
“누나 한국에 2년 만에 들어오는 건가?”
“3년이지. 권서호. 너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한테 관심 좀 가져라.”
조수석에 편한 자세로 기대앉아있던 서정이 뱁새눈을 하고 뒷자리의 서호를 향해 앙칼지게 대꾸했다. 무신경하게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던 서호는 서정의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엄마가 서정이 너 좋아하는 음식 한다고 이틀 전부터 난리야. 한국 있는 동안 살 찌워서 갈 각오돼있지?”
여유로운 손길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핸들을 꺾던 지상이 말했다.
“그럼요. 아빠 나 폰 메모장에 먹고 싶은 거 다 써놨어요. 두 달 동안 한 5킬로 찌워서 갈 거야.”
“엄마가 들으면 아주 기뻐하겠다.”
지상이 모는 고급 세단은 이윽고 서호의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교차로를 지나고 있었다.
순간,
끼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지상의 세단이 골목 어귀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추어 섰다.
“뭐예요? 사람 친 거예요?”
한 손은 안전벨트를 꼭 쥐고, 다른 손으로는 조수석 대시보드에 손을 뻗으며 서정은 난데없이 차 앞으로 튀어나온 자그마한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 아니, 부딪히지는 않았어. 잠깐만.”
쓰고 있던 은색 테의 안경을 위로 추켜 올리며 당황한 지상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서호도 어느샌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고개를 빼 무슨 상황인지 확인했다.
갑자기 지상의 차 앞으로 튀어나온 여학생은 몸을 주춤거리더니 지상의 차를 향해 몇 번이고 거듭해서 허리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인사를 했다.
기다란 검은 머리칼 사이로 잔뜩 불안에 휩싸인 여학생의 얼굴을 확인한 서호의 얼굴이 바짝 굳어졌다. 그는 곧바로 차 문을 열었다.
“아빠, 잠시만요. 우리 반 친구예요.”
차에서 내려 이진에게로 다가가는 그의 행동에선 일말의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사람이 아직 서호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이진은 당황하여 뒤를 돌아 자신이 뛰어온 방향으로 되돌아가려는 듯했다.
“윤이진.”
서호는 가녀린 이진의 팔뚝을 가볍게 잡고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낮은 음성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서호의 목소리를 들은 이진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없이 이진의 행색을 내려다보던 서호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눈가가 분노로 점점 떨려왔다.
채 흘러내리지 못한 눈물 자국들은 이진의 속눈썹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매달려있었고, 무언가에 맞았는지 아니면 부딪히기라도 한 건지 입술 한쪽은 찢어져 핏기가 보였다. 연분홍 반팔 티셔츠에 남색 반바지 차림은 강도라도 당한 건가 싶을 정도로 집에 있다가 바로 뛰쳐나온 행색이었다. 그녀가 신고 있던 뒤축이 다 닳아 낡아빠진 삼선 슬리퍼 속 이진의 맨발은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을 보여주듯 온갖 흙먼지로 뒤범벅된 상태였다. 메말라 쩍쩍 갈라지는 이진의 입술 사이로 가쁜 숨소리가 비집고 새어 나왔다.
서호의 시선은 그가 잡고 있던 이진의 팔뚝에 가닿았다.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빨간 생채기가 눈에 띄었다.
누구한테 맞은 건가…?
이진은 다른 손을 뻗어 서호가 잡고 있던 자신의 팔을 빼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필이면 이런 꼴을 다른 사람도 아닌 서호에게 들킨 것이 수치스러운 것 같았다.
“… 누구야. 누가 이렇게 했어?”
잔뜩 가라앉은 서호의 음성이 이진에게 흘렀다. 이진은 아무 말 없이 묵묵부답으로 바닥을 보고 있었다. 당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진의 자그마한 체구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이 날씨에 사시나무 떨 듯 떨리고 있었다.
“권서호. 나와봐.”
조수석에서 내린 서정이 서호의 앞을 막아서며 이진의 안색을 살폈다. 서정이 봐도 이진의 행색이며 상태가 불안정해 보였다.
“… 학생. 괜찮아요? 이제 안심해도 돼요. 혹시 지금 쫓기고 있어요? 경찰 불러 줄까요?”
서정은 땀에 젖은 이진의 머리칼을 가지런하게 옆으로 정돈해 주며 다정하게 물었다. 서정의 물음에 이진은 시선을 들어 간신히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후 덜덜 떨려오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뭐라고 중얼거렸다. 서호가 다시 듣기 위해 이진을 향해 반 걸음 다가서자, 서정이 고개를 홱 돌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
“…응? 뭐라고? 잘 안 들려서. 다시 한번 말해줄래요?”
이진은 떨리는 손끝을 들어 간신히 서정의 손목을 붙잡았다.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말소리는 여전히 서호에게까지 가닿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이진의 말을 귀 기울여 듣던 서정이 순간 휘청거리는 이진의 어깨를 붙잡고는 서호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권서호 뒷 문 열어. 우리 집으로 갈 거야.”
서정의 말에 서호는 바로 자신이 내렸던 뒷문을 활짝 열었다. 그 사이로 서정이 이진을 부축한 채 올라탔고, 서호는 뒤를 돌아 조수석으로 옮겨 탔다. 눈치 빠른 지상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운전석에 올라 액셀을 밟았다.
지상의 집으로 향하는 길. 서호는 백미러를 힐끔 올려다보며 이진을 살폈지만, 이진은 서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멍한 눈빛으로 창 밖으로 초점 없는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난데없이 현관으로 웬 여학생이 같이 들어오자 혜은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채 지상을 바라보았다.
“일단 내 방으로 가자.”
서정은 아직도 힘이 없는 이진을 부축하며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보다 빨리 움직인 서호는 서정의 방문을 먼저 열어 길을 터주었다. 이진과 함께 들어간 서정이 방문을 닫자, 혜은은 서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니? 저 친구는 또 누구고?”
“우리 반 친구예요. 아빠 차하고 부딪힐 뻔했어요. 다행히 사고는 아니었고요.”
“… 그래? 그럼 다행인데.”
잠시 후, 방문을 열고 서정 혼자 밖으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서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정을 향해 다가갔다.
“이진이는?”
“좀 진정됐어. 보호자한테도 연락했고. 지금 강원도 계시다네? 암튼 바로 오신다고 했어.”
“무슨 일인지 이진이가 말해줘?”
채근하듯 묻는 서호의 앞을 지나치며 서정은 부엌으로 가서 물컵에 물을 따랐다. 작게 두어 모금 마신 서정은 숨을 고르더니 굳게 닫혀있는 자신의 방문을 힐긋 보았다. 그리고는 거실에 서있는 서호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친구 엄마 무당이야?”
“….”
서호가 아무 말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서정은 컵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부엌에서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하게 식탁을 차리던 혜은의 손길이 순간 멈추었다. 혜은의 시선을 의식한 서호는 다시금 재차 서정에게 물었다.
“그거랑 관계있는 일이야?”
“… 집에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들이닥쳤대. 갑자기 문을 쾅쾅 두드리니까 이진이도 당황해서 문 열어 준거 같고. 보니까 집에 상담 왔었던 아줌마네 남편 같더래. 이진이 어머님이 갈라서라고 했었다고 했다던데. 지 와이프 찾아내라고 집안 살림을 부숴서 그 사이에 도망쳐 나왔대.”
“….”
서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서정은 가지런한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덧붙였다.
“경찰은 부르지 말라 그래서 내버려두었어. 그 아저씨가 술에 취해서 막 이것저것 집어던지는 바람에 타박상은 좀 있는데, 심한 건 아니고. 무엇보다 많이 놀랬을 거야. 멱살까지 잡힌 것 같던데.”
그 말에 서호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굳게 닫혀있는 서정의 방문을 바라보며 그 너머에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진을 떠올렸다.
식탁 위에 반찬가지를 옮기던 혜은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서호와 서정에게 조곤 하게 말을 건넸다.
“학생 몸이 너무 말랐던데, 밥은 먹고 다닌다니?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니까 밥 먹고 가라 구해. 아유. 많이 놀랬겠어 진짜.”
그때, 닫혀있던 서정의 방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이진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걸어 나왔다. 서호는 곧장 방향을 돌려 이진을 향해 다가갔다.
“… 좀 괜찮아? 더 쉬어도 돼.”
“아니야. 나. 이제 갈게.”
이진은 고개를 내 저으며 거실로 나오더니 부엌에 서있던 서정과 혜은을 향해 허리를 푹 숙여 인사했다.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학생 밥 먹고 가. 마침 우리 저녁 먹을 거라 다 차려놨어요.”
“응. 저녁도 못 먹었을 텐데. 우리 집에서 먹고 가. 권서호. 아빠는?”
“아빠는 잠깐 약국에 간다고 하셨어. 반창고랑 뭐 좀 사신다고.”
혜은이 이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아끌었고, 서호는 서정의 물음에 대답하며 이진의 눈치를 살폈다. 이진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가로저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녀의 말투에는 어느샌가 떨림보다 단호함이 묻어있었다.
“아니에요. 지금 뭘 먹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요. 부담도 되고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혜은은 종종거리며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이내 수납장에서 도시락통을 꺼낸 그녀는 일사불란하게 각종 반찬가지들을 통에 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이진이 다시 한번 거절의 의사를 표하려 입을 떼려 하자, 서정이 그 앞을 가로막고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랜만에 미국에서 한국 들어오는 거라, 오늘 엄마가 뭘 많이 준비했거든. 성의를 봐서라도 가져가. 나중에 좀 괜찮아지면 먹고. 가는 길은 서호가 데려다줄 거야.”
이진은 시선을 옮겨 서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불안한 눈빛을 받고 있는 서호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침 서호와 이진이 집을 나서기 전 들어온 지상이 이진에게 약봉투를 건넸다. 본인은 외과 전문의가 아니라 의학적 조언을 해줄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 타박상이면 이런 게 필요할 거라며 약국에서 밴드와 연고를 사 온 참이었다.
한 손에는 도시락통을, 한 손에는 약봉투를 쥐고 대문을 닫고 나온 서호의 시선에 집 담벼락을 타고 내려온 덩굴을 쳐다보고 있는 이진이 들어왔다. 가만히 손을 들어 덩굴 끝을 만지작거리던 이진에게 다가간 서호가 물었다.
“뭐 해?”
“… 여기가 너네 집이었구나. 아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여기였네.”
“우리 집을 알고 있었어?”
“… 이거, 능소화 덩굴이잖아. 이만큼 자라서 내려오려면 몇 년은 걸렸겠다.”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너도 능소화 알아?”
“….”
아직 꽃망울이 열리지 않은 능소화 덩굴을 내려다보던 이진은 고개를 들어 서호의 집을 올려다보며 읊조렸다.
“이사 오고 이 길 지나갈 때마다 여긴 누가 살까 궁금했었거든.”
“… 왜?”
“이 동네에서 제일 좋은 집이잖아. 거기다가….”
“….”
“여름 돼서 꽃 피면 이쁘겠다.”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이진은 연초록 덩굴을 손끝으로 톡 건드리고 나서 뒤를 돌아 걸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서호는 그녀의 걸음 반 발자국 뒤에서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둘은 이진의 집을 향해 걸었다. 삼선 슬리퍼를 바닥에 끌던 이진이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거의 10여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까 네 누나분 통해서 들은 거지?”
“…응.”
이제 좀 괜찮아졌는지 이진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서호를 돌아보았다.
“이제 너도 봤지? 나한테 따라다니는 불행.”
“….”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좀 당황하긴 했는데.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할게. 아까는 갑자기 뛰어들어서 미안해.”
“… 윤이진.”
“….”
“그럼 너도 봤잖아. 나한테 붙어있던 행운. 거기서 우리 만난 건 그 증거야.”
“….”
대꾸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진을 마주한 채 서호는 입꼬리를 주욱 올려 웃어 보이며 덧붙였다.
“네 불행이 아무리 끈질겨봐라.”
“….”
서호는 이진을 지나쳐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까만 서호의 뒤통수를 멍하니 보던 이진의 눈가에 희미하게 물기가 솟아올랐다.
어느덧 이진의 집 앞에 도착한 서호는 이진에게 약봉투와 도시락통을 건네주었다.
“우리 엄마 음식 솜씨가 그래도 꽤 괜찮아. 꼭 챙겨 먹고, 약도 바르고.”
“….”
가만히 서호가 내민 것을 건네받은 이진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서호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이진에게 건넸다.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던 이진이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번호 불러봐. 앞으로도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보니까 멀지도 않네. 뛰어오면 한 오분 걸리겠다.”
“… 괜찮아. 이제 그럴 일 없어.”
“오다 보니까 그 아저씨는 이제 없는 것 같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번호 불러봐.”
순순히 번호를 부르기 전까지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이진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불러주었다. 화면에 이진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 서호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수화음을 몇 번 듣고 난 후 끊었다.
“너도 내 번호 저장하고.”
이진은 집 안 어딘가에서 웅웅 울리고 있을 자신의 휴대폰을 떠올렸다. 이진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 후 서호를 향해 말했다.
“오늘 일을 정말 고마워. 보답할게.”
“보답은 무슨. 밥 먹고, 약 바르고. 푹 자. 간다.”
서호는 휴대폰을 쥔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고는 골목을 돌아 걸어갔다. 골목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 이진은 자신의 양손에 들려있는 도시락통과 약봉투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골목 담벼락에서 다시 고개를 내민 서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수화음이 들려오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서호는 예의 바른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옛날 이발소 있던 골목 쪽인데요. 술 취한 아저씨가 행패 부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어서요. 경찰관님 혹시 순찰 좀 돌아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예,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서호는 다시 한 번 닫혀있는 이진의 낡은 대문을 물끄러미 보았다. 땅거미가 지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서야 서호는 기지개를 펴고는 집을 향해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