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
"바라나시에 아주 유명한 라씨 가게가 있어. 첫날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라씨집을 찾아가서 그 라씨를 마시는데, 날씨는 더워 죽겠는데 라씨는 얼마나 맛있던지! 근데 갑자기 내 옆에 시체가 지나가는 거야! 라씨를 마시다가 다 떨어트렸어. 진짜 처음이었거든. 근데 더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를 보며 내가 라씨를 먹고 있더라고"
오래전 대학 시절 친구가 말했던 라씨와 시체를 보며 놀랐다던 그 바라나시에 정말로 나도 와있었다. 어젯밤 잔잔했던 카주라호의 시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도다운 복잡함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힌두교의 성지이자 전 세계의 여행지라는 것을 드러내듯 슬럼독 밀리어네어 인트로처럼 사람 물결, 릭샤 파도에 휩쓸려 어느새 나 역시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길에 들어와 있었다.
뱅글, 발찌, 귀걸이. 반짝이는 불빛 아래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눈부신 장신구가 줄줄이 늘어선 골목. 그렇게 힌두교의 성지로 잘 알려진 바라나시의 깊숙한 골목 한가운데에 황금사원이라는 ‘이슬람’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 방향, 두 명이 지나가기도 벅찬 골목에 경찰들의 삼엄한 경비까지, 무빙워크 위를 걷고 있는 것 마냥 성지를 방문한 힌두교, 이슬람교인과 전 세계에서 찾아온 여행객 인파에 밀려다니다 보니 어느새 한적한 골목에 서있었다.
지붕 위 틈새로 비추는 햇빛 아래, 골목 곳곳에 쌓여 있는 알 수 없는 짐 더미와 어디로 통하는지 모르는 대문 몇 개를 지나치다 보니 그 유명하다는 라씨집 앞이었다. 새하얀 라씨, 현지인과 관광객은 물론 골목을 지나치는 개들 조차 모두가 좋아하는 라씨. 말로만 듣던 종이컵, 유리컵이 아닌 도자기에 담아 떠마시는 플레인라씨가 눈 앞에 쌓여 있다. 아기자기한 토기 그릇이 귀여워 한국으로 한 개 들고 오고 싶단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눈 앞에서 다른 이들이 깨지 않은 그릇을 핥아먹고 있는 골목 개들을 보니 그릇을 깨야 다음 사람들이 강아지와 함께 컵을 쓰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괜스레 들었다.
그렇게 홀짝홀짝, 플레인 라씨를 오물오물 음미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 라씨 냄새를 앞질러 나의 코를 자극하는 향냄새가 강하게 풍겨 났고, 라씨만큼 뿌연 향냄새가 시야를 잠시 하얗게 흐렸고, 그 사이 누런 천에 덮인 시체가 스치듯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