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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Mar 16. 2021

바라나시에서 라씨를 마시며 시체를 보고 디아를 띄우다

인도에서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



"바라나시에 아주 유명한 라씨 가게가 있어. 첫날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라씨집을 찾아가서 그 라씨를 마시는데, 날씨는 더워 죽겠는데 라씨는 얼마나 맛있던지! 근데 갑자기 내 옆에 시체가 지나가는 거야! 라씨를 마시다가 다 떨어트렸어. 진짜 처음이었거든. 근데 더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를 보며 내가 라씨를 먹고 있더라고"





오래전 대학 시절 친구가 말했던 라씨와 시체를 보며 놀랐다던 그 바라나시에 정말로 나도 와있었다. 어젯밤 잔잔했던 카주라호의 시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도다운 복잡함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힌두교의 성지이자 전 세계의 여행지라는 것을 드러내듯 슬럼독 밀리어네어 인트로처럼 사람 물결, 릭샤 파도에 휩쓸려 어느새 나 역시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길에 들어와 있었다.


뱅글, 발찌, 귀걸이. 반짝이는 불빛 아래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눈부신 장신구가 줄줄이 늘어선 골목. 그렇게 힌두교의 성지로  알려진 바라나시의 깊숙한 골목 한가운데에 황금사원이라는 ‘이슬람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 방향,  명이 지나가기도 벅찬 골목에 경찰들의 삼엄한 경비까지, 무빙워크 위를 걷고 있는  마냥 성지를 방문한 힌두교, 이슬람교인과  세계에서 찾아온 여행객 인파에 밀려다니다 보니 어느새 한적한 골목에 서있었다.





지붕 위 틈새로 비추는 햇빛 아래, 골목 곳곳에 쌓여 있는 알 수 없는 짐 더미와 어디로 통하는지 모르는 대문 몇 개를 지나치다 보니 그 유명하다는 라씨집 앞이었다. 새하얀 라씨, 현지인과 관광객은 물론 골목을 지나치는 개들 조차 모두가 좋아하는 라씨. 말로만 듣던 종이컵, 유리컵이 아닌 도자기에 담아 떠마시는 플레인라씨가 눈 앞에 쌓여 있다. 아기자기한 토기 그릇이 귀여워 한국으로 한 개 들고 오고 싶단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눈 앞에서 다른 이들이 깨지 않은 그릇을 핥아먹고 있는 골목 개들을 보니 그릇을 깨야 다음 사람들이 강아지와 함께 컵을 쓰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괜스레 들었다.

 

그렇게 홀짝홀짝, 플레인 라씨를 오물오물 음미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 라씨 냄새를 앞질러 나의 코를 자극하는 향냄새가 강하게 풍겨 났고, 라씨만큼 뿌연 향냄새가 시야를 잠시 하얗게 흐렸고, 그 사이 누런 천에 덮인 시체가 스치듯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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