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는 71개의 젠더가 있다
너와 만나는 나는 인류학도
국제연애를 시작하기 전, 그 아이는 우리가 다시 한번 만나고 나서 결정하기를 원했다. 반면 나는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고, 나의 일은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던 일이었기 때문에 어디에 살게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마침 나에게는 이 아이를 만나기 훨씬 전에 끊어둔 유럽행 비행기표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만나기로 했고, 우리의 관계는 그때 다시 정리하면 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배우고 있던 학업이 새로운 질문을 떠오르게 했다. 대학원 2학년 4학기, 중간고사를 지나며 자연스레 나의 머릿속에서는 졸업논문 주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류학은 인간의 모든 행동에 버금갈 정도로 광범위한 것이었다. 우리 과에는 다섯 분의 전공 교수님이 계셨지만 한 분, 한 분이 다른 교수님들의 분야를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달랐다. 한 분은 인류학이었지만 건축 분야였고, 한 분은 생물학이였고, 고고학이였고, 에스노 그라피였고, 수의학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학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국제개발과 연관된, 개발 인류학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전히 광범위했다. 나에게는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활동했던 현장이 있었고, 현장에서 현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배운 것이 있었다면 또 학교를 다니며 새롭게 배운 것도 생겼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이론들을 접목해서 현장을 다시 한번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다 보니 여성학, 젠더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게 되었다.
마침 필리핀 국립대학교에는 여성학과가 따로 있었고, 현장에서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 중 여성학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 청강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불어 매 학기마다 하나씩 들어야 했던 필수 전공과목 중 가장 마지막에 남은 수업이 생물인류학이었고, 수업 중에는 젠더에 관한 강의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 여성학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해외에 나가 살다 보면 이런저런 문화적 차이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젠더에 대한 이해였다. 내가 젠더라는 이슈를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은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나는 특별히 성평등에 대한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보통은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어떨 때는 환경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 교육에 대한 활동을 했는데 이번에는 빈곤퇴치와 사회적 경제, 그리고 젠더였다.
국제개발 분야에서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 17가지를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라는 이름으로 지정해 두었는데, 그중에 다섯 번째 목표에 ‘Gender Equality(양성평등)’라는 분야가 있었다. 내가 필리핀에 와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가 이 ‘양성평등’이라는 목표와 관련되었고, 그래서 자주 만나는 마을 주민분들은 아주머니들이셨다. 그래서 양성평등이라는 것이 보통 남성과 여성 사이의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차이를 극복하고 보완하는 방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늘어나면서 문득 ‘Gender Equality’와 이 단어의 한국어 번역인 ‘양성평등’이 꼭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대로 된 번역이라면 Gender Equality는 양성평등,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아니라 젠더, 모든 젠더에 대한 평등이어야 했다. 분명 이 단어에 대한 정의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번역을 했을 텐데, 왜 이런 오류를 만들었을까. 그분들이 젠더에 대한 뜻을 제대로 몰라서 다르게 이름을 붙이진 않았을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정서와 대중적 이해와 상황에 맞게 번역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처럼 다른 나라들도 그 나라의 상황에 맞는 젠더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젠더나 여성이라는 이슈는 나에겐 너무나 복잡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부부싸움은 개도 안 말린다’라는 말에 공감했다. 그 부부만의 사정과 이해관계가 있을 것이고 제3자가 끼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3자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시선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현지 가족들은 각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누구 못지않게 최선을 다했고, 그걸 옆에서 매일같이 지켜봐 온 나였기 때문에 감히 여성학이나 젠더학을 공부해서 전문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들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이 아닌 필리핀, 그것도 빈곤지역, 도시 외곽의 강제 이주 지역에서 현지 아주머니들과 함께 일을 하고 프로젝트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여성’, ‘젠더’라는 주제와 자꾸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엔 다른 주제들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업을 듣고 현지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질수록 내 논문 주제는 여성학, 젠더학을 빼곤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생물인류학 수업은 젠더에 대한 과학적인 배경과 흐름을 설명해주었고, 여성학과의 수업들은 필리핀 맥락에 맞는 사회문화적 사례들을 보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