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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ug 26. 2022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

국제결혼 3년차, 신혼일기장을 덮다

신혼부부가 되니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


결혼이 분명 인생의 손꼽히는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알지만, 기념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과 나는 갑작스레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버벅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대충 어느 정도 되었는지 떠올리게 하는 단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비자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들은 한국이든 다른 나라 어디든 결혼을 해서 한 가족이 되었기에 배우자의 나라에 거점을 두고 머물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나의 경우엔  한국인이라면 유럽에 머물 수 있는 90일 동안 결혼 준비를 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시청에서 결혼 증명서를 받자마자 독일에 머물 거주권을 신청했다.


처음 받는 비자에는 보통 3년이 주어지고, 이후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시기에 일정 수준의 독일어 자격증을 제출하면 특별한 연장 없이 독일에 머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아직 비자 연장을 하지 않았다면 3년 미만의 신혼부부였고, 연장을 한 번 했다면 최소 3년 이상의 커플인 것이었다.


나는 왜 결혼한 신혼 커플들에게 비자는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닌 3년을 주는 것인지 궁금했다. 갓 결혼한 커플들에게 3년의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싶었는데, 어느새 그 시간 동안 헤어지지 않고 나서 돌아보니 왜 이 정도의 시간을 준 것인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원래 예부터 3이라는 숫자는 여러모로 균형과 완벽을 이루는 숫자로도 인식되었는데, 신혼초반 티격태격하던 것들도 3년이지나고 나니 뭔가 조금은 유들해진 느낌이다. 정말 간혹 같은 이유로 부딪치는 일이 1년에 한 번만 생긴다고 하더라도 첫해는 남편 뜻대로, 둘째해는 아내뜻대로 하다보면 세번째해는 뭔가 조금씩 조율된 뜻으로 해보는 것 같았고, 여전히 풀리지 못한 것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조금씩 맞춰갈 것 같았다.


그런 결혼생활과는 별개로 국제커플인 우리, 그 중에서도 외국인인 나에게 결혼한 지 3년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 있었다. 바로 내가 비자를 연장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슬프게도 나는 아직도 언어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


하루하루 지나갈 때는 몰랐는데 그 3년을 뭉텅이로 놓고 보니 그동안 내가 뭘 했지 새삼 부끄러워졌다. 거의 모태솔로인 상태에서 제대로 된 첫 연애와 결혼을 국제커플로 시작했으니, 신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는거라고 토닥토닥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냥 다른 걸 하지 않고 독일어만 했어도 그 3년이 제법 뿌듯했을 텐데 생각하니 후회스럽기도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나와 남편은 그렇게 비자 연장을 하러 갔다. 영어로는 도통 일을 봐주지 않는 비자청이고, 또 문서를 워낙 중시하는 독일이다 보니 대충 알아듣는 것 가지고는 괜히 없던 문제를 만들까 싶어 남편을 옆에 꼭 앉혀뒀다.


내 독일어는 아직 기초반이며 그래서 완벽히 독일어를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왜인지 공무원들은 남편을 굳이 문 밖으로 나가게 했고 그래서 우리는 문 사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두고 공무원을 직관했다.


아주 느긋하게 관련 법규를 사전으로도 찾고 인터넷으로도 뒤지고 선배에게도 물어 하나하나 서류들을 채워가는 공무원을 보면서 속으로는 계속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 삼 년 동안 공부를 더 빡세게 해 놓을걸. 어떤 말들을 명확하게 들리면서도 또 어떤 말들은 마치 처음 들어본 언어처럼 낯설게 들리는 독일어.


그렇게 우리는 다시 3년의 결혼비자를 받아서 사무실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남편은 신이 났는지 룰루랄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손뼉을 치고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독일어와 지나간 시간들 때문에 기분이 조금 내려갔는데, 남편은 속없이 왜 이렇게 행복해하지 싶던 순간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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