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면 호텔 레스토랑에서 모이는데, 항상 한부사장님께서 먼저 내려오셔서 여유로운 아침을 시작하셨습니다. 어제 일정은 어땠는지 각자의 컨디션은 어떤지 살피며, 하루 일정의 완급을 생각하며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우선 체크 아웃을 하고 호텔에 짐을 맡기고, 로테르담에서 멀지 않은 덴하그와 델프트를 둘러보고, 다시 호텔에 와서 짐을 찾아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짐을 가지고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도 없었고, 아침에 이별하지 않고 오후에 로테르담과 이별할 수 있는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덴하그, 첫인상
네덜란드의 정식 수도는 암스테르담이나 실질적인 수도는 헤이그이며 정치의 중심지입니다. 헤이그는 영어식이고 덴하그는 네덜란드식 지명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 헤이그 특사(1907년)로 기억하는 도시로, 실제로 이준 열사 기념관이 있는 도시로 시국상 첨언을 했습니다. 반나절 빠듯한 일정으로 주요 건축만 보고 짧게 머물렀지만, 헤이그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네덜란드 정치의 중심지답게 중앙역에서 내리자마자 압도적인 스케일의 법원, 청사 등 관공서 건축을 볼 수 있었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작품을 보러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The old Ministry of Justice를 지나 구시가지 중심인 Plein 광장이 이르는 풍경은 1940년대 이후 재건된 로테르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옛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청사건물로 공공보행로에서 아뜨리움을 볼 수 있습니다. 기존 정부청사를 리노베이션 하면서 청사 업무시설의 면적을 줄이게 되었고, 설계를 맡은 OMA는 기능적으로 업무 공간과 일반 상업시설을 유연하게 배치하여, 정부청사 건물의 모범을 보여주는 새로운 청사이자, 동시에 친환경적으로 설계했다고 합니다. 기존 건물의 끝 단 (현재 입면 모양이 다른 부분)20%를 해체하여 리노베이션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자재 99.7%를 재활용했고, LED와 단열재를 활용해 에너지 제로 건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투명한 커튼월 건물인 정부청사를 지나면 갑자기 분위기가 사뭇 다른 벽돌로 지은 고층의 법무부 건물이 등장합니다. 역동성과 투명함을 표현하는 재료로 커튼월을 쓴다면, 중립적이고 보안을 철저히 해야하는 건물에는 견고한 재료를 쓰는 것이 어울립니다. 1946년생인 Hans Kollhoff의 건축물은 고전적인 건물 스타일과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가공된 석재 및 벽돌과 같은 견고하고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고, 이런 이유로 그는 때때로 전통적인 형식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구식 "레트로 아키텍처"라는 비난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층 법원 건물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의 Apartment Building in the KNSM-Eiland Residential Building까지 보고 나니 사진으로는 올드해 보였던 것이 현장에서 보면 기품이 있었고, 디테일은 섬세했으며 창문의 비례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존재감을 뽐내며 사랑받는 뉴트로 건축?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어서 ⓒ CHI
실내에 모형 사진이 있었네요 ⓒ JIN
정문과 저층부의 매스 ⓒ CHI
담장과 일체화된 노숙자 방지용?벤치 ⓒ JIN
이곳에는 우리나라 과천 정부청사처럼 정부부처가 모여 있는 곳이고, 정부의 움직임에 민감한 회사들이 모여있다고 합니다. 이 중심 거리는 관료들이? 관료 출신이었을 기업가들과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곳이라고 하네요. 이 거리를 따라 간간이 신축공사 현장들이 보였고, 드디어 청사 건축의 바이블! 덴하그 시청사가 저 멀리서도 하얀 자태를 뽐내며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대학생 때부터 잡지와 논문에서 수도 없이 보았고, 공공건축 청사 사례로 매번 회자되던 리차드 마이어가 설계한 덴하그 시청사 건물을 보는 순간! 관공서 건물을 보고 가슴이 뛴 게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내부도 외부도 온통 흰 색으로, 흰 덩어리 속을 파내 큰 홀을 품은 청사를 만든 것 같았고, 게다가 지어진지 20년이 넘었는데 외장과 내부 마감 디테일이 낡았거나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곳까지 걸어오면서 도시에 오픈스페이스를 못 보았는데 청사의 홀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와 쉴 수 있는 광장 같은 곳이었습니다.
주출입구, 둥근 매스가 도서관 ⓒ CHI
브릿지와 사무실로 위요된 아트리움과 천창 ⓒ CHI
압도적 스케일의 중앙홀은 썰렁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가장자리 공간에 카페, 민원창구, 전시관, 기념품 판매점 등이 자리 잡았고, 관공서 특유의 권위적이고 사무적인 모습을 덜어낸 분위기였습니다. 하얀 배경 위에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듯한 청사의 모습은 세련되었지만 자세를 낮춘 모습으로 모든 이들을 반기는 공간이었습니다.
시청사를 나와 방향을 틀면서 점 점 보이는 구 시가지로 들어섰습니다. 프랑스 북부 도시와 벨기에에서 보던 비슷한 양식의 건축물과 유럽 특유의 흐린 날씨가 만드는 익숙한 도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벨기에는 역사적으로 네덜란드 남부지역이기도 했고, 북불지역은 벨기에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서로 닮아 있는 도시의 풍경은 릴(LILLE)에서 어학 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The old Ministry of Justice ⓒ JIN
구시가지 중심 Plein 광장에 면한 카페들 ⓒ CHI
Plein 광장 저 멀리 신시가지의 풍경이 중첩되어 있는 역동적인 도시 ⓒ JIN
Mauritshuis 미술관 (Renovation by Hans van Heeswijk Architects 2014)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마우리츠의 집’이라는 뜻) 왕립미술관은 종종 ‘세계의 작은 미술관들 중 가장 위대한 미술관’이라 불립니다. 창 밖으로는 호수가 보이고 아담한 개인주택의 매력을 보여주는 미술관입니다. 16,17세기 플랑드르 미술과 18세기 작품으로 네덜란드가 미술의 중심지였던 황금기에 활동하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대표적인 네덜란드 화가 램브란트의 작품과 그의 초상화와, 덴하그 출신 화가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입니다.
ⓒ Hans van Heeswijk Architects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 ⓒ CHI
중축을 하면서 지하로 연결된 공간을 보여주는 개념도 ⓒ CHI
왼쪽 집이 17 세기 Johan Maurits van Nassau-Siegen의 집으로 1822년 이래로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2012~2014년에 복원을 하면서 연결통로를 만들고 오른쪽의 집에 Royal Dutch Shell Wing을 만들어 전시 공간, 바, 박물관 상점, 교육 실험실, 도서관 및 라운지로 확장하였습니다. 반 고흐 뮤지엄 입구를 리노베이션한 설계사무소 Hans van Heeswijk Architects에서 디자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