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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 함부로 창업하지 마라 3.까페Talk(1화)

1. 까페를 오픈한다는 것

by 박주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까페를 차리고 싶어했다. 까페를 오픈하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찾 아와 해 준 이야기들이였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이 유는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하고 나만의 예쁜 공간속에서 고상하게 커피를 팔며 자 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는 것이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그런데 왜 까페가 자유의 상징이 되었을까? 깊은 이야기를 하기보단 우선 직관적으로 드는 생각중에 하나는 커피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매체를 통해 그런식으로 묘사되어져 온 것이 제일 큰 것 같 다. 남녀간의 세대간의 차이는 약간 있다. 가령, 내가 운영한 까페의 주된 고객층은 3,4,50 대의 어머니들이였는데, 어느정도 아이를 키워놓고 집에서 살림만 해 오시다가 정말 무언가 를 해보고 싶은데, 집에서 해 온 살림의 노하우와 약간의 배움만 있다면 까페일 정도는 무 난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니까 주부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경우 다. 반면, 남자들의 경우는 크게 생계형과 전문형으로 구분되어진다. 생계형은 말그대로 돈을 벌기위한 목적이 큰데 은퇴한 직장인들이 가장 무난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직종이라 여 기는 것이다. 음식점을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고, 아무래도 까페는 바리스타 자격증 하 나쯤 따거나 프렌차이즈를 하면 본사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을거라는 계산이다. 그리고, 전문형은 말그대로 커피나 혹은 아이템에 대한 전문적인 배움을 통해 까 페보다는 전문성을 겸비한 커피하우스(coffee house)를 운영코자 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자본력에 따라 진정한 까페로서 확장되는 형태가 되기도 하고, 다소 영세하지만 커피전문점 으로서 자기철학이 녹아 든 커피를 서비스하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 물론, 이 구조가 반드 시 딱 들어맞는 경우는 없다. 공통분모도 있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 만 분명한 건, 이 역시 오랫동안 꿈꿔온 회사나 조직으로부터의 자유다. 이탈이다. 까페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자유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었다. 나 역시 앞서 말한대로 어느 한 까페에서 영감을 얻었을 때, 모티브는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니 말이 다. 그런데, 나에겐 한가지 욕심이 더 있었다. 한국의 리틀 스타벅스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것 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스타벅스보단 스텀프타운이나 인텔리젼시아같은 커피하우 스를 롤모델로 삼았으면 더 좋았을 뻔 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 물론, 결론적으론 흡사한 부분들도 많았지만 - 나는 스타벅스의 로버트 슐츠와 같은 커피분야의 전문경영인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스타벅스가 좋았던 건 모든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였다. 그리 고, 그 안의 스토리가 좋았고, 슐츠의 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그가 수 백번의 투자유치에 실패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나아가는 모습에서는 웬지 모를 흥 분마저 느껴졌다. 나를 몽상가라 해도 좋다. 하지만 난 나름대로의 플랜을 세우고 하나씩 둘씩 실행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테스트 베드라는 말이 있다. 어떤 제품이나 사업모델의 성공여부를 점치는 장 즉, 일종의 실험무대 같은 것이다. 맞다. 나는 창업한 이 커피하우스를 테스트 베드로 삼기로 한 것이 다. 직원을 성장시키고,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실험 적용해보고, 고객 관계관리를 통해 수익 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켜 하나의 롤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델을 바 탕으로 소위 말하는 목좋은 곳에 플래그쉽 스토어를 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지금도 진행되 고 있는 1차 목표인 것이다. 비록, 매장은 작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해보고자 했던 모든 도구는 마련되어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과 더불어 거칠 것 없는 항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자유가 때론 여유있는 그 무엇으로 오해되기 쉽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자유는 내 가 해보고 싶은 그 어떤 것을 위해 몰입하고 추진하는 것이라 여겨졌다. 그 때가 가장 나답 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오픈 후 1년여 동안은 거의 매일 새벽이나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영업이 끝나는 10시 이후 로스팅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이 들 무렵, 영업이 잘 되어 커피콩을 많 이 볶아야 할 날은 되려 더 즐겁다. 그만큼 우리 까페를 좋아해주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있 다는 뜻일테니까. 내 까페를 운영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종일토록 수고하고 힘이 들어도 마음만은 전혀 힘들지 않은 것. 내가 준비한 서비스들에 손님들이 만족하고 기뻐할 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 커피와 까페를 사랑해 줄 때가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것이다. 까페도 일종의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다. 그 공간 역시 주인과 직원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면 바로 생명력을 잃고 매력이 떨어져 간다. 그래서 까페를 차 리는 과정도 힘들지만, 사실 운영하고 발전시키는 게 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내 스스로에게 테스트 베드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장기적 으로 멋진 체인사업을 만들기 위해선 당연한 얘기지만 창업자 본인의 수고와 땀이 섞인 경 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접 직원들과 일을 하면서, 손님을 응대하면서 겪 게 되는 경험정보들이야 말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체험이요 사업의 큰 재료가 된다고 믿었다. 직장생활만 14년여를 해 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업이나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때 두 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만큼 내 안에 쌓여진 직장인의 근육을 하루빨리 장사 근육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거기엔 정신적 육체적인 모든 요소가 포함되는데 모든 환경이 낯설고 익숙치 않았기에 내 나름의 원칙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나는 그래서 무엇보다 직원들을 통해 많이 배우려 했다. 소위 바리스타라 불리우는 직원들 은 이미 나보다도 수년간의 필드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 12시간에 달하는 고된 근무환경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해 온 선수들이였다. 난 그들을 사랑하려 했 고 그들의 노하우를 배우고자 노력했다. 확실히 손님을 응대하는 측면이나 음료를 만드는 과정이 남달랐다. 정리해보면 나에게 있어 까페의 오픈은 “직원들과 함께 한 진정한 자유를 향한 도전”이였다 고 할 수 있다. 비록, 시작은 자그마한 개인까페에 불과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을 대표하 는 최고의 까페모델을 만들기 위한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만큼 내 커피와 까페 그리고 직원들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으로 넘쳐났다고 할 수 있다. 커피와 관련된 것이 라면 어디든 달려가거나 내가 못가면 직원들이라도 보내려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직원들에 대한 교육비 지원이였다. 바리스타들의 월급은 사실 노동시간과 강도에 비해 많이 낮다. 대 신 난 그들의 동기부여를 제고하기 위해 때론 월급에 준하는 교육비를 지원해 주었다. 까페 쇼에서 벌어지는 10만원 상당의 세미나 비용지원, 전문적인 커핑교육을 위한 교육비 지원, 기타 크고 작은 커피교육 지원등에 아끼지 않으려 했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업무시간을 내 가 메꾸어 주면서까지 보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밖에도 분기에 한번꼴로 까페문을 닫고 전직원과 함께 하루종일 까페투어를 다니며 트랜디한 커피시장을 공부하고, 반기에 한번꼴 로는 제주도나 강릉쪽의 커피타운등을 방문하며 일종의 힐링 커피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하였 다. 따로 책정한 금액은 없지만 명절때마다 5만원에서 10만원 상당의 명절선물도 늘 잊지 않고 챙겼다. 정성 가득담긴 편지글과 함께 말이다. 남이 보면 이게 10평짜리 까페가 지원 하는 내용인지 의심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 까 싶지만 사실이다. 직원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요, 까페의 성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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