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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Aug 12. 2024

9회말 2아웃에 정말 안타를 쳐버리면

그 기억으로 또 희망을 품고


2007년 방송된 드라마 '9회말 2아웃' 포스터. 내용이 궁금하다. 유니폼이 LG트윈스와 흡사하다. (사진 출처: MBC 홈페이지)


야구를 모르던 시절에도 '9회말 2아웃'이란 말은 들어봤다. 이 간단한 여섯 글자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어딘가 극적이고 간절한 순간을 의미한다는 건 뉘앙스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TV드라마 제목이기도 했다. 


야구를 알게 된 지금, 9회말 2아웃 상황은 희망보단 체념에 가깝단 걸 안다. 구체적으로 연상되는 장면은 이렇다. 일단 우리가 홈 팀이니 9회 말에 공격을 하는데, 지고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점수를 내야 하지만 별 소득 없이 이미 아웃카운트만 두 개 올라간 그런 힘 빠지는 순간. 끝을 알면서도 이내 져버릴 기대를 한 줌 안고 경기를 끝까지 보고 있는 그런 오들오들한 감정 같은 것이다. 


9회말 2아웃은 야구에서 자주 찾아오지만, 극적인 드라마가 쓰이는 건 아주 소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쓰이긴 한다는 것이다. 


11일 어제, LG트윈스가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박동원의 끝내기 역전타로 NC다이노스를 이겼다. 직전 9회 초엔 LG 내야수의 결정적 실책으로 동점 균형이 깨지며 1-3이 됐다. 이럴 때면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한다. '오늘은 졌다, 진 거다, 괜한 기대하지 말자'.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크게 속상한데 아예 기대를 내려놓으면 덜 속상하니 럭키비키,까지는 아니고 덜 슬프다고 생각하며 뇌를 세뇌한다. 문제는 세뇌는 하면서 두 손은 서로 맞잡고 누구보다 간절한 사람처럼 응원하고 있다는 거다. 


열세로 시작한 9회 말 LG 공격, 선두타자가 땅볼에 그치며 더욱더 집중적으로 세뇌하기 시작했다. '지는 경기도 있지, 상대가 잘 한 거지, 연승했잖아.' 하지만 오스틴의 솔로 홈런에 이어 차은우, 아니 문보경 선수의 2루타까지 터졌다. 다음 타선은 삼진과 볼넷. 이제 9회말 2아웃 상황이 됐고 박동원 선수가 기어코 2타점 끝내기안타를 쳤다.


(화면 출처: LGTWINSTV)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다분히 진부한 이 말이 가끔 현실이 된다. 초연한 척, 체념한 척 애써 태연하게 경기를 보던 팬들을 기어코 방방 뛰게 만드는 순간이 이따금씩 찾아온다. 승리의 기쁨은 두 배 세 배가 되고, 9회말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 한국시리즈도 아닌데, 거의 매일 열리는 경기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이 기억으로, 앞으로 또 다가올 숱하게 많은 9회말에 팬들은 희망을 건다. 그럼 또 대부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쉬워하겠지만, 언젠가 어떤 순간엔 다시 환호하고 감동하며 기억을 하나 적립하게 될 테다. 그럼 또 그 기억으로 여러 날들을 희망으로 채우는 식이다. 하여튼 적당히 좋아할 수 없는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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