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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May 01. 2024

엘지 팬이야? 이거 가져가

팬이란 이유만으로

직장인에게 평일 직관은 쉽지 않다. 요즘은 저녁 7시 전후에 퇴근하지만, 3월만 해도 기본이 저녁 8시, 늦으면 8시 30분이었다. 마포에 있는 회사에서 잠실야구장까지는 빨간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1시간 넘게 걸린다. 택시로 가도 시간은 비슷하다.  


올해 첫 직관은 3월 마지막주 평일에 다녀왔다. 드물게도 저녁 6시에 외부에서 일이 끝나는 날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즉흥적으로 표를 예매했다. 사진은 흐리게 나왔는데 완벽하게 선선했다. 닭강정에 맥주 사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사실 종합운동장역 도착하는 순간부터 신났다. 출발할 때만 해도 몸이 좀 지쳤나 싶었는데 금세 괜찮아졌다.


절반은 지는 스포츠

경기는 이겼다. 올해 첫 직관이 승리라니 마치 올해의 운세 결과가 좋게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야구는 대체로 절반은 진다. 5월 1일 오늘 기준 LG트윈스의 승률이 0.516이다. 16번 이기고 15번 졌다. 무서운 기세로 1위를 지키고 있는 기아의 승률도 0.677이다. 10번 중 3번 이상은 진다는 거다.


그만큼 스윕이 쉽지 않다. 야구는 한 팀과 보통 3번 연속 경기를 치르는데 3연전 모두 승리하는 걸 스윕(sweep), 말 그대로 '싹 쓸어버렸다'라고 말한다. 두 경기를 연달아 진 팀 팬들은 스윕만은 절대 안 된다고 외친다. 겪어보니 그 심정을 알겠다.


엘지 팬이야? 이거 가져가

경기를 보고 나와선 남편과 스토어에 갔다. 그동안 고민만 하다 사지 않은 유광점퍼를 드디어 샀다. 왜 고민했지. 너무 예뻐서 여름에도 입고 싶은 심정이다. 둘이 신나서 사자마자 입고 걸어가는데 같은 점퍼를 입은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엘지 팬이야? 이거 가져가" 하고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작년 우승 날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다른 손엔 같은 사진을 여러 장 들고 계셨다. 더 얘기를 나눌 새도 없이 쿨하게 떠나셨다. 여러모로 신기한 순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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