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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May 10. 2024

무사 만루에서 강판된 투수의 눈물, "미안해"

오래 기억될 장면

2024년 5월 9일 어제, LG트윈스는 SSG를 상대로 역전승하며 위닝시리즈를 거뒀다. 5위에서 공동 4위로 올라섰다. 퇴근하며 봤을 땐 분명 지고 있었는데 운동하고 나와 보니 이기고 있다. 이럴 땐 정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그 반대 상황은 두 배로 슬프다. 어쩌다 이렇게 야구에 진심이 됐는지 여전히 신기할 따름이다. 어젠 임찬규, 김광현 두 토종 투수의 승부도 멋졌다.


우리 팀 경기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

그런데 더 기억에 남는 경기는 따로 있다. 한화와 롯데의 승부였다. 야구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아직은 우리 팀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야구 입력값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다른 팀 경기는 마음 졸이지 않고 볼 수 있단 걸 느낀 후 종종 찾아본다.


LG 경기가 끝나고 한화 경기로 채널을 돌렸을 땐 이미 8회 말, 10대 5 큰 점수차였다. 한화의 투수는 2000년생 6년 차 장지수. 상황은 점점 안 좋게 흘러갔다. 롯데가 4연속 적시타를 터뜨렸고 순식간에 14대 5가 됐다. 무사, 주자는 만루였다. 결국 장지수 선수는 강판됐다. 공 43개를 던지고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첩첩산중으로 마운드를 넘겨받은 김규연 선수가 홈런을 맞았다. 18대 5가 됐고, 그렇게 경기는 끝났다.


화면 출처_SPOTV, TVING, KBO 유튜브 채널


분명 다른 팀 경기는 마음 편하게 즐길 줄 알았는데. 어제는 아니었다. 무사 만루를 뒤로 하고 마운드를 내려간 장지수 선수가 김규연 선수에게 "미안해"라고 말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해설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본인이 알았어요. 이 경기를 내가 마무리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걸 하지 못하고 내려오니까."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을 거란 의미다.


끝이 아니었다. 더그아웃에서 장지수 선수가 허벅지를 때리며 자책하고,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감싸는 모습도 중계됐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마음이 꽤 오래 먹먹했다. 경기가 끝났는데도 계속 생각났다.


오래 기억될 표정

이 장면을 두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움과 속상함을 표했다. 경기 운영에 관한 불만도 쏟아졌고 오늘까지 관련 기사도 이어졌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계속 회자됐다. 분명한 건 응원하는 팀에 상관없이 정말 많은 야구팬들이 한 마음으로 이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한 경기에,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진한 여운을 줬다.

한화 장지수 선수에 관한 기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마운드를 내려올 때 그 누구보다 속상하고 어쩌면 화도 났겠지만 장지수 선수는 경기장에선 기분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경기를 책임지게 된 후배에게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뒤에서 혼자 괴로워했다. 많은 팬들이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건 간절함이다. 큰 점수차로 패해도 박수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이 선수의 표정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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