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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시 바그다드

by 황경진

퍼시 애들론(Percy Adlon) 감독의 1987년 작 영화,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를 좋아했다. 여행 중 남편과 싸우고 낯선 사막에 홀로 남겨진 야스민이 우연히 낡은 식당 겸 모텔, 바그다드 카페에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가게 주인인 브랜다는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야스민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고,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감에 따라 황량했던 카페도 사람이 북적이는 오아시스 같은 장소로 변해간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다.


이 영화가 기억 속에 특별하게 각인된 이유는 카메라가 비추는 사막의 풍경 때문이었다. 시간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강렬한 색감과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는 모래바람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렇게 황량한 사막에 사람 간의 따뜻함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석양을 매일 본다면 아무리 메마른 사람이라도 다정해질 수밖에 없겠지 싶었다. 사막은 사람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드는 동시에 아름답게도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닌 것 같았다.


영화의 제목 때문에 배경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인 줄 착각했던 적도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서 촬영했다. 그래서 여행 둘째 날, 애리조나주로 가기 위해 모하비 사막을 건너야 했을 때, 나는 난생처음 사막을, 그것도 좋아했던 영화의 배경이 된 사막을 볼 생각에 몹시 들떠 있었다.


오전 11시, 숙소를 나왔더니 바깥 기온이 40도를 넘었다. 한밤중에 도착해서 몰랐을 뿐, 우리는 이미 사막 안에 들어와 있었다. 모하비 사막은 남한 면적보다도 넓어서 시속 100km로 쉬지 않고 달려도 관통하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출발하기 전 간단히 점심을 먹고 근처 마트에서 물을 잔뜩 산 후 (사막에서 차가 고장 날 경우를 대비했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놓고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후 2시, 기온은 45도에 육박했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숨을 틀어막았다. 다시 차 안으로 기어들어 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서 날것의 땅을 밟았다.


처음 본 사막은 거칠고 뜨겁고 조용했다. 모래바람을 뒤집어쓴 관목은 초록을 잃은 지 오래였고 굵은 자갈이 굴러다니는 땅도 잿빛에 가까웠다. 빛바랜 땅과 대비되어 하늘의 푸른색은 더욱 선명하게 들어왔다. 사막은 넓은 땅과 더 넓은 하늘이 누구의 방해도 없이 조우하는 공간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토록 맹렬히 끓어오르는 땅과 태양에 반해 주변이 너무 고요했다는 점이다. 그 먹먹함에 압도되어 한참을 가만히 서서 사막을 바라보았다.


고속도로를 따라 지나친 사막은 인적 없이 텅 비어 보였지만, 1880년대에는 철길을 따라 작은 역이 촘촘하게 들어섰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증기기관차에 물과 석탄을 공급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중 한 역에는 바그다드(Bagdad)란 이름이 붙었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Baghdad)를 따서 지었는데 실수였는지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식 스펠에서 h가 빠졌다.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된 그 바그다드다.


역이 세워진 후 바그다드는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주변에 우체국과 호텔이 들어서면서 작은 마을로 발전했다가 20세기 초 큰 화제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후 루트 66이 만들어지면서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트럭 스탑이 들어섰다가 I-40 도로가 개통된 후 다시 쇠퇴의 길을 걷는다. 기차역은 디젤 엔진이 나오면서 기능을 잃고 허물어졌고 결국 바그다드는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유령 도시가 되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만들어질 당시에도 이미 도시는 사라진 후였다. 영화는 이름만 차용했을 뿐, 실제로는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50마일 떨어진 뉴베리 스프링스(Newberry Springs)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실제 존재했던 카페는 영화가 인기를 얻자 이름을 "바그다드 카페"로 바꾸고 현재까지도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바그다드의 어원은 페르시아어로 ‘신의 정원’이라고 한다. 모하비 사막에 바그다드란 지명이 있다는 게 처음에는 생뚱맞아 보였는데 사막을 직접 보고 나니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바그다드는 20년 동안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을 정도로 유난히 건조하고 모래바람이 거세기로 악명 높았다고 한다. 신은 애초에 이곳에 사람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잠시 존재했던 인적이 모두 사라진 이 땅은 신만이 머물다 가는 신의 정원으로 되돌아갔다.


참고로 바그다드 서쪽 옆에 세워진 역의 이름은 시베리아였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어원은 ‘잠자는 땅’. 바그다드와 함께 모래만 흩날리는 잠자는 땅이 되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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