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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힘들어

by 황경진

산타페행을 결정할 당시만 해도 준비 과정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조금 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착각했다가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야 이 일이 이사에 준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집이었다. 집 구하기가 어렵기로 악명 높은 실리콘밸리에서 아파트를 구해봤던 터라 산타페를 만만하게 본 게 잘못이었다. 산타페에 집 구하는 일이 실리콘밸리만큼 어려울 리는 만무하지만 우리가 찾는 집은 "3개월"만 사용할 "가구가 갖춰진 집"이라는 데 큰 제약이 있었다. 일 년 내내 관광객으로 붐비는 산타페는 단기 임대 수요가 높았다. 특히 각종 축제와 행사가 여름에 몰려 있어 6월부터 8월까지는 집값이 오르는 것은 물론 괜찮은 집들은 일찌감치 마감이 되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90군데가 넘는 아파트와 콘도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남은 집들은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중심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집을 구하지 못하고 이대로 못 가는 건 아닌지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을 무렵,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적당한 크기의 집 한 채가 올라왔다. 초반에 예상했던 금액을 한참 벗어나 있었지만, 더 나은 조건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우리는 즉시 예약 메일을 보냈고 몇 시간 후 주인으로부터 승인 메일을 받았다. 남편은 환호성을 질렀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작 우리가 걱정했던 기숙사 스튜디오를 전대(sublease)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학생 게시판에 글을 올리자마자 몇 군데서 문의가 들어왔고, 우리 대신 스튜디오에서 지낼 조건이 딱 맞는 미국인 커플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인턴십 채용 절차를 마무리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등 할 일이 많았지만, 집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다른 일들은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적어도 짐을 싸기 전까지는 말이다.


드디어 출발하기로 한 날짜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인 커플을 위해 방을 비워줘야 했고, 그러려면 더는 짐 정리를 미룰 수 없었다. 스튜디오는 커플용으로 설계가 되었지만 두 명이 생활하기에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짐만으로도 방이 가득 찼기 때문에 짐을 빼지 않고서는 여유 공간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짐을 다시 정리해서 꼭 필요한 물건은 가져가고 나머지는 친구네 집 창고에 맡겨두기로 했다.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짐 정리가 시작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일이 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닌 남편은 짐 정리의 달인이었다. 남편의 진두지휘 아래 모든 수납공간을 순서대로 뒤집어엎었고, 버릴 물건과 가져갈 것, 두고 갈 것을 구분하고 상자와 가방에 차곡차곡 나누어 담았다. 이 코딱지만 한 방안에 어떻게 이 많은 물건이 들어 있는지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우리는 사흘 밤낮으로 짐을 분류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상자를 구해오고, 짐 싸는 일을 반복했다.


짐 정리는 떠나는 날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두고 갈 짐은 침대 아래쪽에 최대한 밀어 넣고, 그래도 남는 짐은 친구네 집 창고로 옮겼다. 가져갈 짐들은 자동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청소까지 마친 스튜디오는 처음 이사 올 때처럼 텅 빈 상태로 새로운 커플을 맞을 준비가 되었고 우리는 떠날 준비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방 열쇠와 함께 환영 인사가 적인 편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그렇게 예상 출발 시각을 한참 넘긴 6월 13일 오후 2시 44분, 드디어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사흘 밤잠을 설친 탓에 둘 다 좀비가 되어있었지만, 막 시작된 여행은 피곤함 따위는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 모양이었다. 스타벅스 커피와 스콘으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 김동률의 '출발'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끝없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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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언

이번 이사에 비용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서 가져갈 짐은 "꼭 필요한 물건"에 한해 "차에 실을 수 있을 만큼"만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별안간 남편이 전자 드럼을 가져가겠다는 포부를 밝혀왔다. 3년 전쯤 친구 결혼 축하 공연을 위해 산 드럼은 스튜디오로 이사 오면서 2년째 침대 밑에 처박혀 있었다. 사정이 딱하기는 했지만 앰프까지 포함하면 부피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드럼이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안돼!"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말했다. “그래, 봐서 공간이 남으면 가져가자." 공간이 부족하면 드럼을 가장 먼저 제외한다는 조건도 추가했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No"에 대한 우회적 표현이었지 "Yes"에 대해 여지를 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은 짐 싸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한 공간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물건도 어떻게든 다 넣고 마는 신기한 재능이었다. 차에 짐을 실을 때에도 그 능력은 어김없이 빛을 발해 모든 물건을 마치 3D 테트리스를 하듯 빈틈없이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남편이 제일 먼저 실은 것은 드럼이었다. 부품을 적당한 크기로 분리해 이렇게도 넣어보고 저렇게도 넣어보고 요리조리 방향을 돌려가며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결국 준중형차의 작은 트렁크에 커다란 이민 가방 하나와 전자 드럼과 앰프, 내 전자 기타와 그 외 자질구레한 물건이 모두 들어갔다. 남편은 마침내 트렁크 문을 닫고 손바닥을 탁탁 털며 말했다. "거봐, 다 들어간다니까." 나는 정말 손뼉이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실려온 드럼은 숙소 거실에 설치되어 나름 즐거운 여가생활에 이바지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이번에 드러난 남편의 짐 싸는 재능은 드럼을 가져오고 싶었던 열망에서 증폭된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드럼은 남편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을지도. 그때 "안돼!"라고 소리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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