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산타페로 출장 가게 되었어.”
자동차 이름인 줄로만 알았던 산타페(Santa Fe)가 미국 도시명이라는 사실은 2년 전 남편이 출장을 떠나며 처음 알게 되었다. “진짜? 산타페가 도시였어?” 익숙하던 단어가 순식간에 낯설게 변했다. 산타페는 뉴멕시코 주도(State Capital)로 우리가 사는 팔로알토에서 차로 17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만 관통하면 뉴멕시코에 닿을 수 있으니 미국 전체 면적에 비하면 멀다고도 할 수 없지만, 주 하나 면적이 한국의 두세 배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가깝다고도 하기 어려웠다. 새삼 내가 아는 미국이 얼마나 좁은 면적에 국한되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산타페가 도시라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특별히 기대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저 수많은 도시 중 하나를 방문하는 것이라며 남편은 무덤덤하게 출장을 떠났고 그런 남편을 나도 대수롭지 않게 배웅했다.
상황은 남편이 출장을 다녀온 후로 크게 달라졌다. 유명 관광지에서도 사진을 잘 찍지 않는 남편이 핸드폰 가득 사진을 찍어온 것은 물론 밤새도록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2박 3일의 짧은 기간 동안 남편은 산타페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은 게 분명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조지아 오키프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래. 시내에 오키프 미술관이 있어. 몰랐는데 산타페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예술 도시더라고. 갤러리만 백개가 넘게 모여있는 길도 있어. 제일 특이한 건 건축물인데 흙으로 만든 것 같아. 옛날 원주민 건축 양식이 이어져 온 거래. 아! 그리고 뉴멕시코 음식은 멕시코 음식이랑 달라서 엄청 맵더라. 엘리엇(남편의 미국인 동료)이 먹으면서 울 뻔했다니까…….”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이어가던 남편은 결심했다는 듯 단호하게 끝을 맺었다.
“너를 꼭 데려가고 싶어.”
남편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산타페에 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미국은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거나 그랜드캐니언, 요세미티와 같은 유명한 국립공원이었다. 주변 많은 사람이 이미 다녀왔고, 어디선가 보고 들은 이야기로 가기 전부터 이미지가 그려지는 그런 곳들이었다. 산타페는 달랐다. 흙으로 만든 부뚜막처럼 생긴 건물에 터키석 색으로 장식된 문들, 미로 같은 실내 공간을 가득 채운 미술품과 장식품은 이곳이 진짜 미국인지 되묻게 했다. 산타페의 이국적인 풍경은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한편 전설 속에 존재하는 도시처럼 닿지 못할 거리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혔던 산타페가 다시 얘기된 때는 새해가 지난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열리는 그림책 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여름부터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7개월간의 워크숍 일정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계속된 밤샘 작업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무렵,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온 남편이 물었다.
“여름에 산타페 근처 연구소에서 인턴 해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산타페에 한번 살아 볼래?”
한 달째 집 밖은커녕 방 한 칸도 못 벗어나던 시기였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던 차에 산타페라니!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던 그날 밤의 설렘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사진으로 본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떠날 듯한 기세로 대답했다.
“응! 갈래!”
여행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도시를 만나면 한번쯤은 ‘여기서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가 않다. 여러모로 더 나은 여건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었던 남편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나를 꼭 데려가고 싶어’했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임을 안다. 서른 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그림책을 만들어보겠다고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내에게 뉴멕시코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림과 조각으로 넘쳐나는 예술의 도시 산타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무심한 듯 던진 한마디 말 뒤에 많은 고민이 숨어있었음을 알기에 이 말은 특별히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산타페에 한번 살아 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