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아침 아이의 등굣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 비 오는 아침에 미술준비물이 있는 날이 너무 싫었어”
”왜? 준비물이 너무 많았어? “
요즘 학교에서 웬만한 준비물은 다 준비해 주는지라 딱히 준비물이랄 게 없는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거다.
내가 초등학생이 아닌 국민학생일 때는 거의 매일 아침 준비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준비해 가야 하는 것이 8절 도화지였는데 그날 비라도 오면 도화지가 젖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등교하던 것이 생각났다.
”아니, 그것보다도 도화지를 가져가야 하는데 종이가 비에 젖을까 봐. 엄마는 젖어도 종이는 안 젖게 조심하면서 들고 가야 했거든 “
아이가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쳐다본다.
”엄마, 엄마를 안 젖게 했어야지! 종이는 젖으면 말리면 되고. 종이가 엄마보다 중요해? “ 라며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아이의 말에 감동받아서 ‘오~ 이 녀석’ 싶었지만
”종이는 한번 젖으면 잘 말려도 쭈글쭈글해지고 엄마는 젖어도 안 쭈글쭈글해지니까 “라며 웃으며 말했다.
아이도 따라서 깔깔 웃었다.
아이를 학교 앞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살면서 ‘ 비 오던 날 하얀 도화지’ 만큼 나를 소중히 대해주며 살고 있을까?
글쎄….
세월이 흘러도 도화지는 물에 젖어야 쭈글쭈글해지지만 지금의 나는 물에 안 젖어도 쭈글쭈글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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