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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Sep 07. 2023

가운뎃손가락

오늘은 아침에 빨리 준비한 덕분에 딸과 여유로운 등굣길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아이는 갑자기 가운뎃손가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친구가 별다른 생각 없이 가운뎃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는데 그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안 된다며 다른 친구들이 막 난리가 났다는 거다.

왜 어른들은 손가락을 그렇게 욕으로 사용해서 자기 손가락도 자기 맘대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든 거냐고 귀여운 푸념을 했다.

손가락 중에 가장 길고 가운데 있어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어른들이 그걸 욕으로 만들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자기가 가운뎃손가락이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핸드폰을 사용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화면 터치를 가운뎃손가락으로 할 때가 많은데 혼자 있을 때는 그냥 두지만 외출 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두 번째 손가락을 사용하게 된다.

매장에서 키오스크 화면을 터치할 때도 가운뎃손가락을 사용해서 하다가 내가 가운뎃손가락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다른 손가락으로 바꾼 적도 몇 번 있다.

물론 가운뎃손가락을 분노의 표출이라는 의도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왜 가운뎃손가락만을 사용하는데 불편한 마음 아니면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까?


가운뎃손가락은 아무 죄가 없다.

손가락들은 모양과 길이와 위치에 따라 사용하기 적합한 곳이 있을 테다.

엄지손가락은 짧고 굵어서 콧구멍과 귓구멍은 잘 후빌 수 없지만 물건을 잡을 때 다른 손가락들의 반대 방향에서 안정적으로 힘을 쓸 수 있게 한다.

새끼손가락은 얇고 상대적으로 짧은 길이에 힘이 강하지 않지만 손의 제일 가장자리에 있어서 그에 맞는 섬세한 위치나 상황에 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손가락들의 각자 쓰임새를 다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손가락 중에 제일 길고 중심에 있는 중지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부정적 약속(?)으로 인해 그 쓰임새를 제한당하고 있지 않나 싶다.


우리가 보통 당연하게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관습들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정하고 다수가 그렇게 하니까 ‘당연히’ 너도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혼란을 줄이고 상황을 쉽게 컨트롤하기 위함인데 그것이 최선이고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 의식적으로 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정말 당연한 게 맞아? ‘


아이들이 제기하는 순수한 의문들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의문 없이 많은 것들을 그냥 받아들였는지 알게 된다.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서 호기심과 의문이 피어나면 새로운 것들이 탄생한다.

가운뎃손가락만 세우면 욕이라는 ’ 당연한 ‘ 것에 대한 의문이 이렇게 오늘의 글감이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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