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도 꼭 아침을 먹고 가야 하는 딸은 자신의 등교 시간임에도 느긋한 반면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늘 나의 몫이다. 그렇게 끝까지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느긋함(?) 덕분에 등굣길은 경보 수준으로 둘이서 걸어야 했다. 바삐 걷는 길이 이제 뜨거운 햇빛에도 몸에 닿는 공기는 선선했다. “와, 가을이네~” 빠른 걸음에 조금은 헉헉거리며 순식간에 바뀐 계절을 감탄한다.
걸으면서 나를 올려다보던 딸이 햇빛에 눈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그늘진 엄마의 얼굴이 부럽다 “ 순간 멈칫했다. 어젯밤 잠을 설친 나의 낯빛을 들킨 건 아닐 테고, ‘모자를 써서 눈이 안 부신 엄마가 부럽다’는 이야기인데 아이의 말이 뭔가 어색하지만 신선한 느낌이었다. 보통 우리는 ‘그늘진 얼굴’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니까. 마음에 걱정이 가득해서 어두워진 얼굴 표정을 말하는 ‘그늘진 얼굴’이 새삼 참 시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용적 의미로 사용되는 ‘그늘진 얼굴’은 누군가에게 부럽다는 말을 들을 일이 없지만 오늘 나의 ‘그늘진 얼굴’은 부러운 얼굴이 되었다. 아직까지 관용어들에 대한 경험이 적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표현이 신선하고 부럽다. 세상의 많은 관념들이 만들어 낸 표현의 한계뿐만 아니라 삶의 한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아이의 말 한마디가 다시금 나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