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회식 자리가 잡혔다. 작년부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회식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우리 회사는 회식을 한다. 참석여부는 나의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회사를 다닐 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으니까.
아버지는 항상 말하셨다. '회식은 회사 생활의 연장선이라고'.
아버지에게 회식 간다고 말할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회식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셨다. 맞는 말인 줄 알면서도 그 말을 듣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뉴를 듣는 순간 썩 유쾌하지 않던 나의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한국 직장인들의 회식에 메뉴 선택은 아주 중요하다. 여러 가지 메뉴가 있지만, 그 중에서 '소고기'면 회식도 유쾌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회식 자리에 앉아있다.
윗분들의 자리 선정이 끝나고 난 뒤, 나는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렇게 나는 자리를 고쳐 앉아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고기를 뒤집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를 자른다. 그렇게 고기를 자르고 고기를 먹기 위해 젓가락을 집는다. 고기를 한 점 먹으려 고기를 집는 순간 옆 테이블에서 나를 부른다.
"에디슨! 사회 봐야지?"
'나 분명 무대공포증 있었는데?'
왜 내가 여기 중앙에서 소주잔을 들고 서있는 거야... 순간 현타가 온다. 소주를 입에 털어 넣지 않고서는 현재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없음을 깨닫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보다. 태어날 때부터 피할 수 없으면 피했지, 그걸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 전만 하더라도 회식하는 날이면 걸어 다니면서 건배사를 되뇌었다. 그러고 회식 스테이지에서는 대사를 절었고, 쇼미더머니 2차 무대처럼 Fail을 받고 소주의 불구덩이에 들어가던 나였다. 그런 내가 지금 사회를 보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모두가 내 눈을 피한다. 모두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극강의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렇게 나의 눈을 피하던 이의 이름을 호명하면, 그는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회가 끝나고, 나는 자리에 앉아 허겁지겁 고기를 먹는다. 안주도 제대로 먹지 않고 5번이 넘는 건배사가 이어질 때 동안 나는 소주 한 병을 몸에 털어 넣었다. 그래서일까. 배는 고픈데 술이 취하는 기막힌 경험을 하게 된다. 몸에 있는 수분들이 모두 알코올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고기는 얼마 먹지 않았는데,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시키기 시작한다.
"나 아직 고기 다 안 먹었는데?"
회식 때 사회자에게 음식 섭취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나는 회식을 마치고 집 앞 CU를 홀린듯이 들어간다. 오늘 같은 날에는 봉지라면보다 컵라면이 당긴다. 컵라면 중에서 제일은 육개장 사발면. 그것도 작은 사이즈. 육개장 사발면은 그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의 맛이 있다. 도대체 뭐로 만든 건가 싶다.
육개장 사발면을 반만 뜯고, 끓인 물을 넣는다. 그리고 라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육개장 사발면 위에 노란색으로 '한국인의 맛'이라고 적혀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 한국인의 스트레스, 한국인의 맛으로 날려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