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실체에 대하여
여행 프로그램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 번지 점프 여부부터 물어요. 절대로 안 할 거라고 못을 박아요. 어떤 사람은 번지 점프를 비싼 돈 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공짜로 시켜준다고 해도 마다하죠. 훨씬 덜 무서운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을 타봤더니 상당히 불쾌하더라고요. 서서히 올라가서는 잠깐 멈춤, 아래로 쑥! 인위적인 속도로 추락하는 순간 모욕감을 느껴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 기계가 인간을 가지고 놀더군요. 언젠가 번지 점프 줄이 목을 감아서 질식사한 영상을 본 게 충격이긴 했는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까마득한 높이에서 나를 던지는 순간의 외로움과 막막함이 싫어요. 그 순간을 감내하고 싶지 않아요. 한의학에선 깜짝 놀라는 게 간에 안 좋대요.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 간과 담(쓸개)을 소중히 다뤄주고 싶어요. 기절이라도 해서, 오줌이라도 질질 싸면 어쩌냔 말이죠. 겁이 많다는 이야기를 길게도 썼네요.
강연을 나가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일명 평균대 이론인데요. 평균대 아시죠? 여자 기계 체조 종목 중 하나잖아요. 평균 10cm 되는 평균대에서 텀블링까지 하죠. 그냥 평균대를 걸어갔다 와라. 이걸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백 번 하면, 백 번 다 안 떨어질 자신 있어요. 그런데 그 평균대를 십 미터 위에 걸쳐 놓으면, 얘기가 달라지죠. 아래를 보지 않으면 돼요.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맞잖아요. 내 발이 지지하고 있는 나무의 너비는 여전히 같아요. 하지만 시각적인 불안이 모든 걸 좌우하죠. 백 번을 안 떨어지면, 백 프로 안전한 거지만 그것도 의미 없어요. 공포는 실체를 잡아먹는 커다란 괴물이죠. 실체인 평균대만 보면서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힘, 그 힘만 있다면 세상 무서울 게 없죠. 그 이야기를 자주 해요. 반응이 그렇게나 좋더라고요.
저에게 상당히 큰 영감을 준 영상이 있어요. 빔호프라는 네덜란드 남자가 있어요. 얼음 속에서 무려 한 시간 40분 이상 있었던, 세계 기록 보유자예요. 이 남자가 아무 훈련도 받지 않은 젊은이들을 데리고, 한 겨울 흐르는 물에 입수해요. 스스로를 믿으라면서요. 불이 났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달아나야 함을 알죠. 그 본능이,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 줄 거라는 거예요. 목표 시간은 십 분. 사람들 몸이 떨릴 때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몸 색깔이 달라지는 거예요. 목 밑으로 온몸이 붉게 변하더라고요. 저러다 죽지. 아슬아슬 아무도 포기하지 않고, 십 분간의 입수를 마쳐요. 이런 게 기적 아니고 뭔가요? 저는 군대 신병 교육대에서 입수를 당당히 거부했던 용감한(?) 청년이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조교가 싫으면 빠져도 된다기에, 순진하게 안 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조교보다, 한겨울 강원도 얼음물이 더 무서웠으니까요. 나만 빼고, 다들 조교를 더 무서워하더군요. 원래대로면 저처럼 뺀질이는 보복대상이 돼요. 얼차려를 받아야 사필귀정인데, 그날 아무런 보복 없이 숙면을 취했어요. 저승사자 얼굴의 동기들은, 네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며 저를 부러워했죠. 몸이 찢어지는 것 같더래요.
https://www.youtube.com/watch?v=8cvhwquPqJ0&t=1535s
과연 나는 십 분간 얼음물을 버틸 수 있을까요? 누구는 한 시간 사십 분도 담그고 있는데, 십 분을 왜 못 할까요? 재밌는 건, 그 영상을 보면서도 절대로 할 수 없다. 불확신을 확신한 사람은 저였어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요. 내 안의 공포가 저를 말려요. 공포는 나를 지켜주는 걸까요? 내 안의 잠재력을 막는 걸까요? 남들 다 뛰어내리는 3미터 조금 넘는 곳에서도 못 뛰어내리던 저를 생각해요. 그런 태도가 저를 지킨 걸까요? 저의 자유를, 가능성을 막은 걸까요? 내 안의 공포, 그놈 자식이 오늘은 상당히 거슬려요. 이놈을 무시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내가 깨부수어야 할까요? 결국은 철학인가요? 내 관점이, 사고가 바뀌어야 해결될 일일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요즘에 감정이 들쭉날쭉인데, 치질약을 복용 중이거든요. 아무래도 약을 끊어야 할까 봐요. 건강해야, 튼튼한 사고로 일상을 누릴 수 있어요. 우리 모두 조금만 더 건강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