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상처, 가족의 화해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가족입니다.

by 박민우
내 새끼 많이 먹어라. 역류성 식도염에는 양배추가 최고다. 어머니, 잘 먹을게요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말이 막 나왔어요. 조심할게요. 죄송합니다.


심호흡을 하고요. 정중히 사과합니다. 아침에요. 마음이 한결 편하네요. 그리고 어제 썼던 일기를 다시 봐요. 와, 제가 정말 다 쓰는군요. 거의 다 쓰는군요. 이러다가 어디까지 쓸까요? 다들 저에게 솔직하다지만요. 저도 사람이라서요. 걸러요. 불가능하잖아요. 철저히 솔직하다는 거요. 공원 나무 아래에 침을 뱉고, 누군가의 이어폰을 길에서 줍고, 택배로 온 탈모 샴푸를 박스 째 들었다 놔요. 어제, 오늘 일이죠. 다 쓸 수 없죠. 골라요. 어느 건 빼고, 어느 건 넣어요. 그중 치욕스러운 것들을 우선 들었다 놨다 해요. 쓸까, 말까를 고민하죠. 괴롭지만, 쓰는 쪽으로 기울죠. 왜, 왜? 왜 쓰죠? 그걸 안 쓰면 찜찜해요. 헛헛해요. 정말 어쩌려고 그러나? 감당할 수 있겠어? 가끔 제가 무섭기도 해요. 어제의 일기는 후회지만, 또 후회가 아니기도 해요. 후련하기도 해요. 그 고백은 절대로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죠.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에 살짝 발을 내디뎠더니요. 은근 상쾌한 바람이 불더란 말입니다. 저만 이런 구질구질한 삶을 끼고 살까요? 그럴 리 없잖아요. 그러니까 나만 안 아프기를 바라지도 않아요.


-무슨 아침부터 그런 이야기를 또 하고 그러냐? 너나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예민하지 말고.


네, 어머니, 아버지는 밤새 제 걱정을 하셨어요. 자식은 부모 말씀에 섭섭해하고, 이리 재고, 저리 재도요. 부모는 한결 같이 자식 생각뿐이죠. 언제나 자식 편인 유일한 존재죠. 그래서 더 면목이 없어요. 이기적인 기생충이란 사실이 괴로워요. 발끈의 지점, 그 지점의 저를 생각해요.


-시간 낭비나 하고, 나이는 먹고.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냐?


이 지점에서 저는 발끈했어요. 시간 낭비라뇨?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쓰며 살아요.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아실 턱이 없죠. 알리고 싶지도 않아요. 철저히 나만의 영역인 걸요. 알리고 싶지도 않으면서, 모른다고 발끈해요. 저의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않는다고 말해요. 나는 필터일 뿐,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 나올 글이 나온 거라고요. 그렇게 아버지께 발끈하는 저를 보니까요. 헛말인가 봐요. 매일의 글이 인정받아 마땅한 성취로 여기나 봐요.


-그러니까, 이 집구석 나가면 되잖아요.


집을 나가는 게 협박이라뇨? 생활비 한 푼 안 보태고, 일흔의 어머니가 차려준 밥 따박따박 받아먹으면서요. 집을 나가는 게 협박일 수가 있나요? 자식이니까요. 이래도 저래도 자식이 최고니까요. 늙어가는 부모에게도 자식은 자식이니까요. 그냥 곁에만 있어도 든든한 존재니까요. 그걸 알아서요. 저는 큰 소리를 쳐요.


-괜찮니?


생각하는 동화였던가요? 어릴 때, TV에서 본 기억이 나요. 몇 컷의 그림으로 동화를 한 편씩 보여주는 KBS 프로그램이었죠. 사고뭉치 아들은 돈을 탕진하고요. 결국 어머니 심장까지 팔 생각을 해요. 어머니를 죽이죠. 어머니 심장을 들고뜁니다. 급하게 뛰다 넘어져요. 그때 심장이 말해요. 아들아, 괜찮니? 어미를 죽여도, 어미가 죽어도 언제나 내 새끼. 너무 사살적이어서 불편했던 동화였죠. 몸이 피곤하면, 잠을 못 자면 통제가 사라진다는 것도 알았어요. 전날 잠을 못 잔 저는 날카로워져 있었죠. 그렇게 말을 잘하면서도. 집에서는 방에 처박혀 있어요. 부모님 역시 저의 삶이, 저의 여행 이야기가 궁금할 텐데요. 누구보다 궁금할 텐데요. 가깝다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저는 외면해요. 저의 세상에서 나오질 않죠. 피곤하지 말아야겠어요. 곤두서지 않으려면요. 아, 어색하지만요. 부모님께 살가운 아들이어야겠어요. 장담은 못해요. 좀 어색해야 말이죠. 대신 부모님 모시고 아르헨티나는 꼭 갈게요. 부에노스 아이레스 손주와 알콩달콩 시간을 약속할게요. 누구보다 열심히 2019년을 살게요. 돈을 벌게요. 모자란 아들이라 반성을 해요. 후회라는 걸 하죠.


어머니, 아버지. 우린 이별을 해요. 언젠가는요. 후회를 아예 안 할 순 없더라도요. 좋은 기억 몇 개는 더 만들어요. 함께여서 참 좋았다. 그렇게 눈을 감기로 해요. 마지막 순간엔 꼭 함께 있기로 해요. 가족이어서 좋구나. 마지막 도장을 쾅쾅쾅 서로의 가슴에 새기기로 해요.


어머니, 아버지 죄송해요. 다시 한번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가 생각하는 오체투지입니다. 작은 글로, 지구 끝까지 닿겠다. 너무 막연한 소망인데,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생각을 해요. 동네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있나요? 없다면 추천해 주시겠어요? 워낙 좋은 책들이라서 감히 졸라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여러분께 다가가고 있어요. 방콕 여행이 두 배, 세 배 즐거워지는 책이죠. 정말입니다.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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