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우 Apr 24. 2019

쓰고 싶지 않은 일기를 쓴 날

그래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일기

비가 내린다.

고기리 내 방

고기리, 내 방.


네 시부터 빗소리를 듣는다.


눈보다는 비지.


어제도 다섯 시에 일어났다.

브런치를 쓰고, 씻지 않고 나왔다.  

고기리에도 내 방이 있다. 개운하게 씻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유가 있는데 MTS 롤러로 얼굴을 비벼댔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씻어야지.

얼굴 부기에 덜 무리가 가도록.

1mm 바늘이 오돌도돌 롤러로 신나게 굴린다.

몇 번 해봤다고, 거침이 없다.

비명이 나와도 멈추지 않는다.

이 고통은 노화를 늦춘다.

더 세게, 더 세게


유튜브 뷰티 블로거가 가르쳐준 대로 한다.  

땀구멍이 넓어져서 완전 망했다는 댓글도 있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잃을 게 없다.

늘어지고, 얼룩진 피부 거죽은 그깟 넓어진 땀구멍이다.

몇 년째 옷 한 벌 안 산다. 노화에는 벌벌 떨고 있다.


붉은 얼룩이 한 가득.  

그래서 마스크를 쓴다. 공기는 쾌적.

샤워를 끝내고, 뭐라도 발라야지.

백탁 현상 선크림뿐이다.

그걸 발랐더니

붉은 반점이 반만 가려진 하얀 유령이 됐다.

이 꼴로 어떻게 사람들을 봐?

그냥 본다.

별 다섯 커피 식구들과 회의하고, 커피 마신다.


예민하지만, 뻔뻔하다.


- 작가님 이마의 그 상처, 태국 오토바이 사고 때 상처인가요?


장 대표는 짧은 시간에 내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치앙마이에서 빠이로 넘어갈 때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지. 그땐 얼굴은 멀쩡했다. 헬멧을 썼으니까. 상처는 오른쪽 어깨부터 다리까지. 지금도 선명하다.  


- MTS 롤러로 막 굴렸어요.


장 대표는 브런치 내 일기를 매일 본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으니, 숨길 게 없다. 내 일상은 많은 이들에게 읽힌다. 내 하루는 내 것만이 아니다.


- 네? 갑자기 중국에서요? 3천만 원이 결제됐다고요? 9천 건 소액 결제로요?


장 대표에게 걸려온 전화다. 표정이 심각하다. 다른 직원에게 확인을 부탁한다. 그리고 나와 일 이야기를 한다. 3천만 원이라니. 수중의 3천만 원이 사라질 수도 있다. 장 대표는 이미 나와의 이야기에 몰입. 3천만 원은 안중에도 없다. 사업을 하려면 이 정도 멘탈은 깔고 가야 하나 봐. 장 대표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정신과 약을 먹다가, 한약으로 바꿨다. 아니, 왜? 아흔여섯의 아버지, 여든일곱의 어머니가 1년 사이에 돌아가셨다. 8남매 중 막내 장 대표가 병시중을 했다. 사업하랴, 매일 병원에 모시고 가랴. 솔직히 보내드리고, 홀가분했다. 지금은 너무 그립다. 매일 꿈에서 만난다. 안부를 묻는다. 어머니, 아버지. 고기리 별 다섯 카페가 오늘은 손님이  부쩍 늘었어요. 잘들 지내시죠? 부모님의 부재가 공황장애의 큰 원인이다. 거의 백 살을 산 아버지가 절절히 그리울 수도 있다. 대장암 진단을 받고, 다음날 편히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울 수도 있다. 말이 안 되는 사람이라, 나는 모른 척한다. 나는 늘어지는 내 얼굴 가죽이 가장 아프다. 맥북을 살 것인가? 윈도 노트북을 살 것인가? 내 페이스북엔 좋아요가 겨우 대여섯 개. 이딴 대접받으려고 매일 글 올리나? 내게 그따위로 말했던 너, 너, 너. 발끈하는 이유는 소중한 내가 너무 가여워서다. 어머니, 아버지가 코카서스 3국 가지 말았으면 하시지만 떠날 것이다. 아버지는 곱창 씻는 공장에서 곱창 세척 일을 하신다. 물이 튄다. 눈이 침침해서 오래 못 하겠다. 나는 그 말을 들었고, 물이 안 튀는 안경을 검색했다. 안경조차 못 찾아서 그러고 말았다. 장 대표는 삼 남매의 가장이고, 장모님도 모신다. 우리는 분명 같은 인간이다. 같은 말로 주고받는다. 그는 공황장애가 있고, 나는 없다. 내 무사함은 철저하게 나를 사랑해서 이룬 성과다. 어쩌자고 이 모든 걸 썼을까? 후회로 가득한 글이 됐다. 내 글이다. 내 길이다. 지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좋은 일기다. 아침이 밝았다.


- 고기리, 내 방, 새벽 네 시 반


이전 08화 안경을 벗었어요. 흐릿하게 살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