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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25. 2019

패륜? 막장? 아버지와의 말다툼

가장 약한 자들의 몸부림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운 내 방

오늘 같은 날이 일기를 쓰고 싶지 않은 날이죠. 

막다른 골목에서 글을 써야 해요. 써? 말아? 왜 써야 하지? 왜 솔직해야 하지? 어차피 내 삶을 백 프로 까발리는 것도 아니잖아. 적당히, 적당히...


쓰기로 합니다. 


돈암동에서 첫 지하철을 타고요. 집에 와요. 밤새 돈암동 옥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술도 마시고요. 잠은 못 잤죠. 집에 돌아와서 설풋 자다가 깨서는요. 밥을 먹어요. 일흔의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요. 아버지가 30일 방콕으로 떠나는 걸 모르셨어요. 제가 일일이 보고를 하지 않으니까요. 이제 아신 거죠. 


-한국에서 먹고 살 생각을 해야지. 방콕에 가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나이도 먹어가면서 무슨 생각으로 사냐?

-아버지, 저도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거 아니에요. 생활비 한 푼 못 보태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요.

-내가 보기엔 어쨌든 너는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 집 안 온다고요. 서로 봐서 좋을 거 없으니까요. 가족이라고 뭐 대단한 거 아니고요. 저는  짐을 쌀게요. 여기 안 와요. 안 온다고요. 


짐을 싸려고 하는데요. 젠장. 여행 내내 썼던 제 캐리어가 망가졌어요. 사실 너무 졸려서, 일단은 눈을 감고 싶었죠. 저답지 않게 발끈하는군요. 이렇게 목소리를 높일 일이 아닌데요. 우리 집 상황은 이래요. 아버지가 얼마 전까지 곱창 공장에서 일하셨어요. 곱창을 대량으로 납품하는 공장이 경기도 광주에 있나 봐요. 그걸 세척하는 일을 하셨어요. 더 자세히 묻는 게 두렵고, 처참해서 거기까지만 알아요.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넷. 한 성깔 하시는 아버지는 누군가와 다투고 공장을 나와요. 나라에서 주는 연금, 저축한 돈으로 생활하시죠. 아들이란 놈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내내 싸돌아 다니다가요. 다시 또 나간대요. 여기에 있을 땐 강의라도 하는 것 같은데요. 방콕 가면 그냥 탱자탱자 노는 거잖아요. 한심하죠. 사살 아버지가 잘 참으셨어요. 영양가 하나 없는 자식을 먹여주고, 재워주셨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기생충은, 그래서 더 발끈. 제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서, 더 부르르 떠는군요. 사실 나가려는 것도 시늉이었어요. 나가긴 어딜 나가요. 물론 아버지가 그래, 나가라. 그 말씀만 덧붙이셨다면, 저는 나갔죠. 기생충의 마지막 자존심이 그 정도죠. 


오늘은 여러분께 좋은 글이 될 거예요. 자유, 자유로운 영혼, 대비 없는 삶. 그게 결국 또 기생충과 뭐가 다른가? 그 지점에 제가 있어요. 낭만적이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죠. 비참함 쪽이죠. 신기해요. 제 존재가, 저의 글이요. 저는 왜 이 글을 쓰고 있을까요? 쓰는 내내, 제 호흡 자체가 더러워요. 결국 이기적인 거죠. 무능한 거죠. 그래도 나는 글을 쓰잖아. 그게 뭐? 그래서 뭐? 아무것도 아닌 걸, 뭐라도 되는 양 힘주어 대들었죠. 가방끈이 길고, 어딘가에서는 나를 알아봐 준다. 그게 저를 지탱하는 부실한 힘이죠. 저나, 아버지나 가진 게 너무 없군요.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 그래도 가족, 그래도 사랑. 어머니는 유일한 천사가 되어 이 상처를 봉합하려 해요. 저녁에 옻닭을 끓이시네요. 


저는 방콕으로 곧 떠나요. 어머니, 아버지. 죄송해요. 방콕에서 놀고, 먹지 않을게요. 현실적인 아들, 가능해요.  지금까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거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아들, 꼭 되어 보일게요. 결국 저를 걱정하신 거 알아요. 든든한 아들, 미래가 탄탄한 아들, 용돈도 매달 챙기는 아들이 될게요. 나무 자주 했던 다짐이라서요. 오늘따라 더 쓰레기가 됩니다.  


멍청해지니까요. 주변의 소리들이 생생해요. 15층에서 들리는 차 소리, 바람소리, 공기 청정기 소리. 다 들려요. 그래서 뭐? 네, 그냥 들린다고요. 저는 어떻게든 살게요. 아니, 잘 살게요. 지금의 감정이 내일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오늘의 다짐이 일시적이지 않도록. 고민하고, 성장할게요. 아, 일요일이군요. 일요일에 맞지 않는 글이라서, 더 현실적입니다. 일요일이 없는 세상 모든 약한 이들과 함께 숨을 쉬겠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하아. 글을 써서 세상과 닿겠다는, 끝까지 닿겠다는 열망이 있습니다. 오늘 같은 글로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요? 후회와 그래도 쓴다는 갸륵한 마음이 반반입니다. 박민우의 책들이, 글들이 그렇게 조금씩 여러분께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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