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는 건 점프가 아닐까요?

우리 졸다가 까무룩, 세상과 안녕해요.

by 박민우

(2018년 한 여름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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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는 밤이라서, 몹시 뒤척였어요. 깨다, 자다, 깨다, 자다. 못 자겠다 싶으면, 또 잠이 오고, 못 일어나겠다 싶어서, 더 자고. 일곱 시가 넘어서 일어났네요. 저에겐 늦잠.


아버지 건강검진이 나왔어요. 흉부, 작은 결절, 변화 없음, 추적검사 요망.

안 좋다는 얘기겠죠? 후배 이모부가 연대 세브란스 병원 내과 과장이라서, 물어봐 줄 수 있냐고 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일단 건강검진했던 곳으로 전화를 하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만 들었네요. 맞다. 제주도로 이사 간 인옥이가 있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만났던 인옥이. 오렌지색 머리털로 한 스웩하던 의대생. 지금은 펜션도 하고, 병원 근무도 하며 알콩달콩. 예쁜 두 딸의 아빠.


-네, 형. CT 촬영만 받아 보세요. 조직 검사까지는 말고요. 결절이 양성이니까, 크게 걱정 마시고요. 네, 언제든지 물어봐 주세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인옥이 날라리였지. 날라리이고 싶어 했지. 함께 탱고 공연을 보고, 김치찌개를 먹었어. 더럽게 못 출지언정, 헤드뱅잉 미련을 못 버린 댄서, 같았던, 인옥이. 네, 언제든지 물어봐 주세요. 그 말이 참 듣기 좋다. 후배도 이모부에게 물어보기가 어려웠겠지. 부탁은, 늘, 팽팽한 긴장감. 괜찮지 못해도, 혼자 감당하라. 명심하지만, 아버지 때문에, 잠시 흔들렸네요.


연명치료는 절대 안 돼. 안락사가 있어야 해. 죽을랑 말랑, 그럴 땐 확실히 죽어야지. 안락사 왜 안 됨?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듯, 어머니와 저는 최후를 이야기해요. 아버지는 어떤 생각인지도 안 묻고요. 아버지는 멀쩡할 거란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평화롭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보는데도 젖가슴을 드러내고, 옷을 갈아입네요. 훌렁훌렁. 우리 엄마, 할머니 다 됐네.


-엄마, 죽는 건 그냥 다음 단계로 가는 점프 같아!


맞아, 죽는 게 뭐 대수라고. 엄마가 웃어요. 우리 집 식구 중에 가장 점프할 준비가 잘된 사람, 우리 엄마. 가장 가벼운 사람이죠. 모르죠. 끝의 끝. 그 순간엔 더 솔직하고, 더 적나라해지는 거니까요. 내 몸뚱이, 아파도 내 몸뚱이. 미련을 못 버려도, 우리는 꽃. 몸부림을 쳐도, 우리는 꽃.


-나는 우리 아들이랑 이렇게 같이 밥 먹다가, 그렇게 내일 죽었으면 좋겠어


방콕 가지 마라. 그냥 같이 살자. 무슨 뜻인지 알아요. 갤럭시 스마트폰에 뜨는 스팸 메시지가 너무나 두려운 어머니. 어머니는 늘 잘하는데, 스마트폰이 자기 맘대로 뭔가를 누르죠. 못된 갤럭시. 갤럭시는 무슨 업데이트를 그리 자주 하라고 하나요? 동영상을 보면 통신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돼먹지 못한 협박은 또 뭔가요? 어머니는 뭐 하나만 잘못 누르면 전 재산이 날아가는 줄 아세요. 어머니는 아들이 필요해요. 갤럭시로부터 지켜줄 든든한 아들. OK마트, 롯데마트 할인 정보 빼면 하등 쓸모없는 협박뿐입니다.


엄마, 나는 경기도 광주에는 못 살 것 같아. 태국으로 갑시다. 까짓 거! 태국 시골에서 재미나게 삽시다. 젊은 손님들 많이 올 거예요. 어머니는 고춧잎도 따고, 아버지는 달걀이라도 가져다주세요. 지루할 틈이 없을 걸요. 된장을 담그고, 장아찌를 담그면서요.


점프


할 때까지요. 점프를 태국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늘어지는 날씨에, 방심하다, 방심하다가 점프요. 까무룩 졸다가 점프. 엄마, 아빠, 나. 우리는 소원이 같잖아요. 졸다가


점프



할 일이 많은데, 몽롱해요. 한풀 꺾인 더위도, 더위니까요. 당장 해야 할 일. 증명사진 찍기, 여권 재발급받기. 방콕 맛 집 책 추가분 원고 끝내기, 방콕 맛집 책 사진 정리하기. 미국 비행기 표 끊기, 5주 다산북살롱 강의 준비하기. 혀를 깨물어서, 혓바닥이 까졌어요. 눈 다래끼도 있어요. 몽롱하네요.


다산북살롱 강의는 15명 모집에 지금까지 6명 지원했어요. 생각보다 저조한 숫자네요.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다들 바쁘잖아요. 7명만 돼도 어떻게든 해봐요. 다산북살롱은 이 강의를 꼭 마치고 싶어 해요. 1명만 더 모여도 간답니다. 최소의 숫자는 7명. 가장 의욕적이어야 할, 제가요. 6명이란 말에, 묘한 기분이 듭니다.


돈 때문인가? 맞아요. 처음에 15명 곱하기 얼마. 이 생각부터 했어요. 그중에 얼마, 얼마가 내 거. 열심히 할 거니까. 그런 생각해도 돼. 6명이란 숫자는 15명까지 꼭꼭 채우라는 숫자일까요? 아니면 채우지 말라는 숫자일까요? 몽롱해서 그래요. 눈 다래끼는 뭔가요?


열심히 살아야 해요. 늘, 반갑게, 뜨겁게.

원하는 모습이죠.

순리대로 살자. 억지 부리지 말고.

도망갈 핑계가 필요하면 전 ‘순리’를 들먹여요.


합정동 강의는 어떻게 될까요? 뉴욕으로 갈까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제는 돈 있어서 떠났나요? 어떻게든 되겠지. 늘 어떻게든 됐어요. 어떻게든 될 거니까요. 선풍기를 트는 것만으로도 전기세 폭탄을 걱정하는 어머니도 있지만, 저만 생각하기로 합니다. 어떻게든 됩니다.

어리석다는 생각을 해요. 즉각적인 반응은 모두 어리석어요. 푸념도 이제 그만. 공감을 구걸하는 거지 짓도 그만. 강해지자는 다짐도 그만! 내 안의 나를 믿어주는 것.


힐끗힐끗, 쥐새끼처럼 힐끗거리는 제 모습이 참 싫어요. 용서가 안 돼요.


아, 내일부터요. 저는 살짝 다른 사람인 척해보려고요. 머릿속으로는 뻔뻔하고 대담한 사람을 그릴 거예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부잣집 아이. 사립초등학교를 나오고, 초등학교 때는 전교 회장을 했어요. 늘 사랑받고 자라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몰라요. 모르는 세상이죠. 주위엔 모두 다 성공한 사람뿐이고, 성공이 당연해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죠. 자신이 증명이니까요. 해맑게, 뻔뻔하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 그런 내가 되어서는 달려볼게요. 어떻게 되나 궁금해요. 그렇게 억지를 부렸더니, 그런 사람이 되더라. 해피엔딩을 기대합니다.


내일을 궁금해하려고요.


오늘까지만

몽롱하고, 다래끼가 있으니까

오늘까지만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저는 수줍게 춤을 춥니다. 여러분이 봐주셨으면 해요. 수줍은 춤이지만요.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제가 반가웠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하루의 1g이었으면 합니다. 내일도 저를 기다려 주시면, 저도 조금 더 기쁘게, 내일의 글을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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