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지독한 바닥, 주저앉는 게 편하지 않을까?

아등바등 살면 정말 더 좋아질까?

by 박민우

(2018년 한여름 무게에 짓눌렸던 시간, 어두운 글인데 그냥 올려요. 그런 시간이었네요. 그때는요.)

새벽에 눈을 뜬다. 떠진다. 30도가 넘는 밤. 잠들 수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턱걸이를 하다 보면, 태양이 지분을 늘려간다. 재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나를 죽이고 싶어? 그늘이 사라지기 전에 턱걸이를 끝낸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는 이유다.

공원에서 두 명의 남자가 자고 있다. 하천을 연결한 돌다리 가장자리에 몸을 바싹 붙이고, 잔다. 외국인 노동자다. 다세대 주택 지하. 선풍기로 해결이 안 되는 더위. 어디든 잠들 수만 있으면 돼. 유령이 되어서, 공원까지 왔다. 어머니가, 아내가 보면 안 되는 장면. 본인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들. 그렇게 자고 일하러 간다. 잠이 들면, 그게 승리. 그런 사람들이 경기도 광주에 산다. 많이 산다.

인도 조드푸르에서의 방은 괴물 자체였다. 밤 열 시 이후로 더, 더, 더 뜨거워졌다. 찐만두의 온기를 지닌 처녀귀신이 가슴팍에서 목을 조르는 더위였다. 화상을 입은 사람처럼 뛰쳐나왔다. 옥상에서 잠을 잔 날이었다. 옆방의 일본 여자는 더 작은 방이었다. 창문도 당연히 더 작다. 더 뜨거운 방에서 안으로 걸어 잠그고, 잤다. 딸칵, 다음날 문이 열렸다. 그녀가 살아서 나왔다. 찐 옥수수처럼 모락모락, 그녀가 나왔다. 잠 못 자도 된다. 사방의 적, 남자. 나를 지켜야 한다. 나 때문에 꼭꼭 걸어 잠갔냐? 나는 무성애자(I am vegetable). 포스트잇을 이마에 붙이고 잘 걸.

어머니, 아버지와 아르헨티나 형님 댁을 방문할 때. 캐나다 밴쿠버에 며칠 머물렀다. 시차 적응이 안 된 아버지와 나는 시름시름. 어머니는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며, 우리를 깨웠다. 어머니는 마트 구경을 특히 좋아하셨는데, 싸면 싸서, 비싸면 비싸서 좋아하셨다. 가격만 보면서 와 싸다, 와 비싸다. 그게 재미셨다. 아버지는 입을 닫으셨고, 나는 껍질만 남아서 어머니 꼭 붙어 걸었다. 으악, 작은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떴다. 걸음이 엉키면서 넘어지기 직전이었다. 걸으면서 자본 적 있는 사람, 손. 난 있다. 밴쿠버에서. 어머니의 표정이 싸늘하다. 한 게 뭐 있다고 졸아? 젊은 게 약해 빠져서는. 어머니 나라고 이러고 싶겠어요?

어머니가 내 또래였다면 인도를 누비셨겠지. 찜통에서 안 죽고 오래 살기. 그 일본 아이도 가뿐히 이기셨을 걸? 당찬 매력으로, 전 세계 남자를 홀렸겠지. 그런 걸 보면 또 나는 엄마 피.

-아니, 그렇게 스마트폰만 끼고 살면 어떻게 하니? 눈이 더 나빠졌지? 안과에 가 봤니? 이 아프면 치과를 가야지. 아직까지 폰만 보고 있네.


벌떡 일어난다.


-어딜 가?

-카페.

-어미가 한 소리 했다고, 나가? 밥이라도 먹고 가

-아니야. 집에 있으면 폰만 봐. 앉아라도 있어야지.

-어미가 쫓아내는 거야. 아들?

-아니라고요.

더위에 익숙해져 간다 여겼다. 현재 기온 36도. 오후 다섯 시인데, 36도. 솔직히 어머니의 잔소리도 거슬렸다.


에어컨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반대하신다. 에어컨은 만병의 근원. 없던 병도 생긴다. 사실 돈이 문제다. 내 돈으로 설치하면,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다. 집안을 책임져야 할 나이에 어머니가 해주신 밥 먹고, 아버지가 버시는 돈으로 여름을 난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타고 나온다. 짜증을 낸다. 나는 루저다. 스무 살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나를 만난다면, 실망하겠지. 정신 바짝 차리고, 어덯게든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정색하고 공부만 하겠지. 지금의 내가 되지 않기 위해...

건너 건너 아는 여자가 대상포진으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죽었다. 이 순간만 아니면 된다. 이 고통만 아니면 된다. 몸을 던졌다. 충동적 자살이 치밀한 자살보다 많다. 굳이 무거운 이야기를 한다. 여전히 어금니가 시큰, 눈엔 염증인가? 충혈된 눈, 못난 아들, 36도, 땀, 돈, 다 귀찮, 자전거, 어머니, 아버지. 각각의 무게는 버틸만하지만, 한꺼번의 무게는 버겁다. 그래서 죽고 싶나?


엄마가 보고 싶다


나는 자전거를 돌린다. 밥 주세요. 안 나가요. 어머니는 돌아온 아들에, 배가 고파진 아들에 안심하실 것이다. 세상 모든 게 다 장난. 죽고 나면 이해되는 게임. 몰라야 인간, 후회해야 사람, 모자라니까 아들. 박민우는 이렇게 산다. 스무 살의 너는 내가 실망스러워도, 예순 살의 나는 내가 젊기만 하다. 죽기 전까지는 언제나 젊다. 이토록 찬란한 젊음. 반짝반짝


PS 매일 글을 씁니다. 왜냐고요? 그냥요. 그냥 써요. 그냥 살잖아요. 내 안의 자연스러움이, 글로 연결된다면, 평생 글로 숨 쉬는 만큼 쓸 수 있잖아요. 사실 그건 제 꿈이기도 해요. 큰 목적 없이 재미로 쌓는 돌탑처럼, 그런 쓸모없는 탑을 쌓고 싶어요. 글로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보면 제법 높아서 와와. 잠깐 놀라면 돼요. 그런 쓸모없는 몰입, 쌓음, 결국엔 제법 놀라움. 좋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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