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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white Sep 15. 2023

한 달간 커피를 먹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_1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커피가 먹고 싶은 순간들


습관, 라이프스타일, 취미가 되어버린 커피.


2018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고등법원이 스타벅스를 포함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에 ‘발암물질 경고문’을 붙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850가지 이상의 발암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커피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이 사건은 커피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판결 이후 커피 시장은 오히려 가파르게 성장했다.(이와 동시에 뉴스에서는 커피가 몸에 좋은 점을 보도한다. 카페인 성분이 기억력을 향상하고 혈류량을 증가해 심장 기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프라이드치킨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치킨을 먹고 치킨 집을 차린다. 축구 경기를 볼 때, 회사 단체 회식, 금요일 저녁 치킨과 맥주를 먹는다. 프라이드치킨은 오락이자 문화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음식 성분의 ‘좋고 나쁨은’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


서울은 단위면적 당 카페가 가장 많은 도시다. 서교동에 카페가 673개, 서초동은 706개가 있다. 코로나 기간에도 1년에 2000개씩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 매일 카페가 생기고 더 생긴다. 카페 건너 카페다. 더 이상 '커피 효능'을 따져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커피 역시 프라이드치킨과 같이 하나의 문화가 된 지 오래다.


블루보틀 카페라테

7월 비가 오는 어느 날, 회사 근처 블루보틀에서 라테를 주문했다. 딱히 커피를 먹을 이유는 없었다. 습관적으로 비가 오니 따뜻한 라테를 먹여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행복했던 일 중 하나는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대학교 앞에 스타벅스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동네에 개성 있는 카페가 생겼다. 나 역시 커피숍이 생기는 것만큼 더 자주 많이 마셨다. 20년간 쉬지 않고 아침과 저녁, 적어도 하루 한 번 이상 커피를 먹게 되었다. 일이 많은 날은 3잔, 주말 산책할 때도 커피를 들었다. 피곤해서 마셨고 더워서 마셨다. 기분이 좋으면 커피를 더 마셨다.


비가 온다는 이유로, 라테 6,600원을 지출했다. 그날따라 예전처럼 라테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아마 홍대 팝업 매장은 커피 머신을 쓰지 않고 추출된 커피 원액으로 라테를 만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짜증이 확 났다. 비가 오고 날씨가 우중충하고 돈 6,600원이 생각났다.


나는 왜 커피를 매일 사 먹고 있을까.
만약 한 달간 먹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가능은 한 일일까?
인생 절반을 커피와 함께 했으니
한 번쯤은 쉬었다 가도 좋지 않을까.

결심했다. 한 달 정도 커피를 먹지 말아 보자.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 집으로 와서 달력에 30일 기간을 표시했다. 먹지 않은 날은 성공 의미로 원형 스티커를 붙이기로 했다. 7월 12일부터 8월 11일까지.  


사무실 한 켠에 쌓여있는 테이크아웃 컵


D-30. 첫째 날

점심시간 합정역 포비에서 베이글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베이글을 먹으면서 커피를 먹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커피 특징 중 하나가 ‘확장성’이라고 한다. 커피는 빵, 쿠키, 케이크, 스파게티와 함께 먹기에 좋은 음료다. 달콤한 디저트에 커피 쓴 맛이 곁들여지면 두 음식 단점이 보안된다.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두 음식이 붙으면 더 많이 끝까지 먹게 된다. 베이글 먹는 것을 포기했다. 첫째 날부터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한식을 먹자. 순댓국집에 갔다. 밥을 먹고 나오니 커피 테이크아웃코너에 5~6명이 모여있다. 나는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밥-커피, 밥-커피>라는 공식을 지키지 않으니 점심시간 30분이 남았다. 커피 없는 빈 손으로 햇빛을 마주하면 뚜벅뚜벅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커피를 먹지 않으니 더위를 식힐 기회도 사라진 것 같았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맞은편 사람들 ‘모두’ 스타벅스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있었다. 사람들 손에 시선이 자꾸 간다. 이렇게 대부분 사람들이 점심 이후 커피를 먹고 있었구나.


D-27 셋째 날. 첫 번째 위기 매운 음식

빵을 먹지 않으면 커피생각이 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간절하게 커피 먹고 싶은 순간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매운 음식이다. 늦은 저녁 라면 사리를 넣은 김치찌개를 먹었다. 입 안이 얼얼하고 마늘 향이 났다. 텁텁하다. 갑자기 얼음 가득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어졌다. 커피를 먹어야 소화가 될 것 같았다. 커피가 몹시 ‘땡긴다’.  


한 모금이라도 좋으니 커피숍에 달려갈까. 작심삼일로 만족할까. 첫 번째 위기가 왔다. 평소에 어떤 음식이 땡긴다고 말한 건 땡기는 것이 아니었다. 먹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먹지 않으면 내 몸이 어떻게 될 것 같다는 강한 불안감. 한 입 먹었을 때 온몸이 환희를 느끼며 즐거움에 내장기관이 '바로 이거다!'라고 소리치는 상상. ‘땡긴다’라는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커피를 부르는 음식은 빵이 아니라 매운 음식이었다.


D-25 첫 번째 주말, 갈 곳 없는 휴일

매주 토요일이 되면 책 한 권을 들고 동네 커피숍에 간다. 이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주말을 보내는 방법이다. 그런데 주말에 커피숍을 가지 못하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집에서 책을 보자니 뭔가 집중이 되지 않는다. 커피숍이 없다면 도대체 서울에서 책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저녁 8시, 커피를 먹지 못하지만 커피숍은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책 읽기 좋은 카페를 가자. 소설 <불편한 편의점>과 핸드폰만 들고 집을 나섰다. 연희동에 있는 프로토콜 커피숍에 갔다. 카페 공간 안쪽에 로스팅실이 있고 바리스타분이 친절하게 6가지 원두 특징을 설명해 주신다. 설명을 다 듣고 신중하게 주문한다.


저는 애플 차를 먹겠습니다

커피를 먹지 않으면 책 읽을 공간 선택지도 줄어든다


D_23 일곱째 날. 커피천국 인스타그램

12시 30분쯤 침대에 누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본다. 그러다 2시쯤 잠든다. 커피를 먹지 않은지 7일이 지났다. 12시에 침대에 누우면 10분 안에 잠이 든다. 취침시간이 이렇게 앞당겨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누우면 바로 잠이 드니 SNS, 유튜브 보는 시간도 줄었다. 그리고 아침 6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일주일 커피 먹지 않기’에 성공하니 한 달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커피가 먹고 싶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이나 저녁을 푸짐하게 먹으면 어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 생각났다.


회사 동료와 함께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에 갔다. 전시를 보고 1층 로비에 있는 오셜록 카페에 갔다. 커피 대신 녹차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그 친구 역시 차를 주문한다. 왜 커피를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얼마 전 회사 근처에서 그랜드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선물 받아 마셨는데 갑자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고 한다. 그날 오후 내내 심장이 평소와 다르게 뛰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이후 커피를 끊었다고 한다.

커피 대신 녹차 아이스크림


D_16

익숙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홍차를 우려 귀리음료와 섞는다. 친구들을 만나 카페에 가도 허브차나 과일주스를 주문한다. 저녁 12시 되면  잠을 자고 아침 6시가 되면 일어난다.


한 달 지나 처음 먹는 커피 음료는 무엇으로 할까? 어떤 커피숍에서 무슨 메뉴를 시킬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D-12 두 번째 최대 위기. 삼청동 카페 거리에 가다

7월 30일 일요일 오전 10시 사진 전문 갤러리 한림이 있는 삼청동에 갔다. 두 시간 정도 전시를 보고 나오니 시간은 12시였고 바닥에 그림자 하나 없는 고온다습한 한여름이었다. 체감 기온은 36도가 넘는 것 같았다. 하필 이 갤러리는 삼청동 길 끝자락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삼청동 수제비부터 서울시립미술관까지 일자로 뻗은 긴 길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바람도 불지 않고 몹시 더웠다. 그늘도 없다. 땀이 나고 목이 마르다. 카페하나를 지나면 또 금세 카페가 나왔다. 모던한 카페, 테라스가 있는 카페, 소금빵을 함께 파는 카페.


이때 알았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카페는 도시인을 위한 비공식 폭염 피난처였던 것이다.

20개 넘는 카페를 지나 언덕을 내려오니 삼거리 코너에 청량한 파란색 물병 로고가 보인다. 블루보틀 카페다. 저 놈의 블루보틀 때문에 시작된 프로젝트. 블루보틀 흰 벽면이 밝게 빛나고 푸르고 푸른 물병이 나를 보며 손짓한다.


‘시원한 카페라테 한잔하고 가세요.’ 3주 전에 당신이 마지막으로 먹었던 그 고소하고 진한 카페라테가 여기에 있습니다.


8월 어느 날

커피를 끊고 나니 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카페 중심인걸 다시 실감한다. 커피숍과 신상메뉴, 홈카페 피드가 계속 올라온다. 서울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콘텐츠 다섯 개 중 하나는 카페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새로운 카페가 생긴다. SNS를 오래 하면 커피 이미지를 자주 볼 수밖에 없다.


핸드폰 사용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책을 보기로 했다. 어렵지 않고 누워서 보기 좋은 책, 술술 넘어갈 페이지들. 도서관에서 이문열 <삼국지> 1,2,3,4권을 빌렸다. 3일 만에 삼국지 1권을 다 읽었다.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게

유비는 9월 어느 날 신발을 벗고 다리 없는 개울을 건넌다. 이때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유비를 부른다. 다짜고짜 자신을 업고 강을 건너라는 것이다. 유비는 아무 말 없이 물로 들어간다. 개울을 다 건너니 노인이 다시 유비에게 요청한다. 자신의 짐을 반대쪽에 놓고 왔다는 것이다. 유비는 두 번째 개울을 건너기 시작한다.


개울도 건너고 짐도 찾은 노인이 유비에게 묻는다. 왜 두 번이나 수고로움을 참았냐고.


“잃어버리는 것과 두 배로 늘어나는 차이 때문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건너기를 마다하게 되면 첫 번째의 수고로움마저 값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한번 더 건너면 앞서의 수고로움도 두 배로 셈 쳐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3주째 커피를 먹지 않고 있다. 나도 유비와 같이 매일 개울을 건너고 있다. 일주일만 참으면 앞선 수고로움이 나에게도 두 배의 가치를 가져다줄까. 책을 덮었다. 몹시 졸리다.

커피를 먹지 않은 날은 스티커를 붙였다

D-0 마지막

불가능할 것 같았던 ‘셀프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커피를 먹지 않게 되면서 일어난 긍정적 변화도 있었지만 스스로 세운 약속을 지켰다는 것에 대한 보람도 적지 않았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시키는 않아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회의 시간에 책상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잠을 깨는데 꼭 커피가 필요하지 않았다. 20년 매일 하던 일상도 그것이 ‘엄청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몸은 더 나은 방향으로 빨리 적응한다. 커피가 그랬다.


커피를 한 달간 먹지 않고 일어난 구체적인 변화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실험을 종료하고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커피 대체 음료-2편으로 이어집니다)


'한 달간 커피를 먹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 기록 영상

https://youtu.be/SQjwJoU4qPA?si=FdAMxSyMoeJ79LY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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