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움으로 승부를 보는 거야!!
1982년에 벚꽃이 피고 나서 아름답게 흩날리는 계절의 끝자락에 나는 여자로 태어났다. 그리고 39년을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아왔다. 태어난 시기가 우리나라의 황금기부터 외환위기 그리고 지금의 21세기까지 차례대로 겪으며 자라고 있는 유일한 세대다. 그게 10대부터 40대까지를 겪게 되는 우리가 태어나 자라온 시대이다.
근데,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면 좋은 점이 몇 가지는 있다. 외국인들이 꼽는 문화이긴 하지만 배달문화, 밤 문화, 그리고 빠른 문화이다.
그렇지만 이런 장점이 여성이라는 나에게는 장점보다는 그저 우리나라의 특성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게 여성에게 좀 더 이점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여자가 그러면 안되지 하니까,,, 내가 어렸을 때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어른들이 즐겨 쓰는 말투가 있었는데, 의자에 앉을 때 다리를 약간 벌리고 앉으면 여자가 그러면 안돼!! 이렇게 한 소리를 듣게 되곤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내가 독특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자라서 그러면 안돼” 또는 “여자는 그래야 한다”.라는 가설이 너무 싫었다.
특히 명절날 아침 풍경이 제일 거슬렸다. 남자들은 티브이나 아니면 하다 못해 노름질(고스톱)을 하고 있거나 하릴없이 빈둥거리기 바쁜데 우리 여자들만 이골이 나도록 바쁘다. 할머니부터 외숙모, 이모 그리고 우리 엄마까지 하다 못해 나와 여동생 친척들까지 손 하나씩 보태야 한다. 할머니는 밥을 푸시고, 나는 수저를 세팅하고, 외숙모는 국을 담고, 이모들은 반찬을 꺼내고, 엄마는 그것들을 나르시고 이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근데, 남자들은 뭐 하는 거지? 내가 내 동생을 부른다. "야, 너도 와서 수저 놔!! 빨리 나와!! "그러면 할머니와 엄마는 놔두라고 소리를 치신다. 어디 남자애를 부엌에 부르냐고 X추 떨어진단다. 이게 무슨 말이야 막걸리야. 이런 억지가 어디 있을까?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와서 수저라도 놓으면 x추가 떨어진다고 한다면 지금 시대에 요리사로 일하는 셰프님들은 열두 번도 더 떨어졌겠다. 참 말도 안 되는 억지다.
이런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나는 여자인 내가 싫었고, 죄가 많아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엄마 말이 실감이 났다.
뭔가 여자라서 벌 받는 느낌이 많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해야 하고, 그 고통은 겪어보지 못했다면 아무도 말할 수가 없다.
귀찮고 찝찝하고 냄새도 역한 그 생리의 역사가 길면 자그마치 50년 이상은 한다고 생각해봐라!! 그것도 주일이 긴 사람은 7일 이상 하는 분도 있단다. 다행인 건 나는 짧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임신해서 배가 부를 때까지 10달을 품고 있어야 하는 것도 여자고, 결국 낳는 것도 여자다. 이게 가장 싫었다.
왜 남자들은 그저 쉽게 얻어 가는 걸까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던 이유였다. 여자라서 못하는 일이 많아졌고, 여자라서 못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반항하듯 나는 다 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했고, 내가 남자보다 더 잘할 수 있음을 보여야 했다.
나는 성향이 약간 남성적이라 일반 여성들이 잘 안 하는 것을 곧잘 하곤 했다. 기계를 잘 다뤄서 김기사로 통할 정도였고, 예를 들어 카메라가 망가지면 내가 고치거나 (그렇다고 안에 부속품까지 건드리지는 못하지만) 감각으로 고친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잘 안 돌아가면 섬세한 터치로 금세 뚝딱 고치고, 리모컨을 부시면 다시 뚝딱 새 걸로 만들어 버리는 신의 손이었다.
하루는 전등이 나가서 내가 바꾸려고 하자
엄마 왈 " 이런 거 남자가 하는 거야 여자는 이런 거 하는 거 아니야!!
나 왈 " 엄마! 여자일 남자일이 어디 있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등짝 스매싱~~!! )
엄마 왈 " 이것아! (이ㄴ아 하려다 참음!!) 그러니까 여태 남자한테 인기가 없는 거야! 여자가 조신 조신하고 그래야지 머스마(남자아이 사투리)처럼 그렇게 하고 다니니까 아직 시집을 못 가는 겨!! "
나 속으로 " 우리 엄마 친엄마 맞니? 혹시 주어온 거 아닐까?" 하는데,
" 엄마 왈 " 왜 엄마가 너 어디서 주워 왔을까 봐?"
나왈 " 속으로 생각한 게 들려 엄마?" 다시 등짝 스매싱 제대로 날려주고!!
엄마 왈 " 그래 이것아 내 속에서 나왔는데 안 들리겠냐? 어후 저거 커서 뭐가 되려고 저렇게 하나 몰라" 이러면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심.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알듯이 여자라면 조신 조신해야 한다는 말이 참 거슬렸다. 나는 나고 단지 여자로 태어났을 뿐 나의 성향이 여성스럽지 않을 수 있는데, 그걸 왜 꼭 여성이라고 강요하는 걸까?
그래서 난 예전의 말괄량이 시절이 가끔은 그립다. 지금은 내 성향대로 남성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성적으로 정말 얌전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인간이 되어간다. 단지 머리만 긴 중성의 인간 말이다.
여자만 가능한 직업?
내가 간호학과로 진학했을 당시 남자 간호사는 전국에 몇 명밖에 없었다.
남자들이 간호사를 한다고 하면 아직도 그렇게 의아하게 보긴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많아진 게 사실이긴 하다.
근데,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세상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는지, 남자들이 간호학과에서 간호사를 하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고 하면 의아하게 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라본다.
왜? 남자들이 간호사를 하면 안 되는데? 그러고 보니 미용사도 요즘 남자분들이 훨씬 많듯이 예전엔 남자분들이 미용기술을 배운다고 하면 남자가 그런 여자들이 하는 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뭐라 하던 시절도 있었듯이 왜 간호사도 남자분들이 하는 게 이상한 건가? 오히려 몸 쓰는 일이 많은 수술실과 응급실 그리고 정신과 폐쇄 병동 등은 특히나 남자분들이 있어야 할 곳이다.
우리가 나이팅게일처럼 천사 옷을 입고 날아다니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항상 전투적으로 근무를 하기에 환자분들을 옮기고 들고 이동하고 그런 모든 일을 나는 신규 간호사 때 해야 했다. 지금은 상주 여사님과 보조인력 투여로 간호사분들의 업무 노동강도가 겉으로 줄었다고는 해도 솔직히 ‘라떼’ 보다는 나아진 건 사실이다. 그래도 업무강도는 전투적에서 약간은 사무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힘든 일은 여전하다.
저 이번에 내려요!!
여자라서 안 되는 점을 이야기하다 보니 연애할 때도 엄청 불편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고대 때부터 내려져오던 유구한 문화 같기도 한 이 현상은 아무래도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 했던 여자들이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남자들이 여자들이 이렇게 할 때 매력을 느껴서 인지 몰라도 하긴,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여자들이 먼저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자가 먼저 고백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여자가 먼저 고백하면 남자들이 바람을 피운다. 아니면 남자가 여자를 우습게 본다. 등등 어불성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여자가 가오가 있지 어디 빠지게 남자한테 먼저 대시를 하느냐며 우리 엄마까지도 반대를 하고 나셨기도 하고, 흠, 나는 내가 맘에 드는 사람 생기면 먼저 말하고 싶은데, 왜 못하게 하는 걸까?
왜 외국 영화에서는 여자든 남자든 먼저 반하는 사람이 서로에게 고백하고 상처 받고 또는 받아주고 그러던데, 우리나라에선 여자가 하면 뭐가 그리도 안 되는 게 많은 건지 알 수가 없는 나라다.
속담에서의 여자들은
그리고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은 왜 속담이 되는 거냐고? 여자가 모이면 오히려 집안에 도움이 되면 됐지 어떻게 접시가 깨진다는 건데 아 ,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그런 걸까? 그렇다면 그건 내가 오해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여자들은 같은 얘기를 해도 몇 시간씩 할 수 있는 두뇌 구조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속담은 정말 맘에 든다. “여자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이런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만 말이다. 또, 그러고 보면 그때 그 광고 속 카피도 있지 않나? “남자는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모름지기 여자들을 잘 두면 떡도 생기고 남자들에겐 좋다는 거 아닌가?
남자도 엄마인 여자에게서 태어나고 자라고 또다시 여자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여자인 자신의 딸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도 아빠인 남자에게서 태어나고 남편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결국 남자인 자신의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토록 비슷하지만 다른 우리 이성들은 어쩌면 서로 닮아서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
쌍둥이라고 정말 똑같은 성향이 아니듯 우리가 다른 이유는 조금은 달라야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 아닐까?
성차별을 강요하는 사회에 한방을 날리는 것은 나는 나이기에 이렇게 한다고 선포하는 거 아닐까?
여성스럽지 않아도 시크함으로 승부를 보는 것처럼, 남성스럽지 않아도 섬세함으로 승부를 보는 것처럼 나스러움이 가장 멋스럽지 않을까?
우리 이제부터 나다움으로 나스럽게 행동하는 게 어떨까?
나다움이 나를 더 멋지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