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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리메 Oct 16. 2020

우리는 당신들을 케어하는 사람이지 동네북이 아냐!!

간호사를 서비스처럼 대하는 인간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간호사다! 그것도 10년 차 넘은 이제 거의 15년 차가 넘어가고 있다. 그중에 절반은 병원에서 거기서 또 절반은 제약회사 아웃소싱 업체에서 (제약회사가 아닌 아웃소싱 업체에 대한 설명은 아래 글에서 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상담실장으로 간호사의 일을 묵묵히 해왔다.


근데, 나 이제 선포하려고 한다. 더 이상 동네북으로 일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우리가 너희들을 케어하는 의료진이지 너희가 필요할 때마다 집 지키는 똥개도 아니고 왜 필요하지도 않은데 계속 불러대고, 의사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불평, 불만은 만만한 우리한테 하소연을 하는 건데 왜? 우리가 만만하니? 진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라떼는 말이야~


때는 바야흐로 2002년 월드컵 때 나는 간호학생 신분이었다. 모두가 대! 한! 민! 국! 을 외치던 그때 나는 매일 밤을 새우며 공부해야 학점을 유지할 수 있었고, 고3 수험생은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나의 수험 기는 그 이후 3년을 줄곧 공부만을 하며 매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포기하려고 했다. 실습을 나가기 두려워서였고, 아픈 사람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때 필연적으로 나의 감성을 느끼고 있었고, 간호사는 내게 어려운 직종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권유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만 했었다.

 

"여자가 간호사 자격이라도 있어야 나중에 돈이라도 떳떳하게 벌거 아니니? 그러니까 공부하고 실습은 대충 해!~ " 우리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격만 있으면 모두가 간호사가 되는 줄 아시나 보다. 하는 수 없이 실습을 가게 된 나는 실습 첫날부터 눈을 뜰 수 없는 광경들을 맞이 한다.


응급실이 첫 근무지였던 나는 입에서 피를 토하는 할머니를 제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토혈을 하면서도 자신의 옷에 피가 묻을까 봐 노심초사하고 계셨고, 피를 토하면서 바닥을 닦으라고 내게 눈짓을 하셨다. 내가 청소부도 아닌데 이런 거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근데,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보고 그걸 닦으란다. 나는 학생이기에 의료진이 아니기에 간호사분들의 보조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또 한 번은 커플이 싸우다가 응급실에 오게 되었는데, 엄청 심하게 싸웠는지 남자는 눈이 퍼렇게 멍들고 입에서 피가 나고 여자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찢어지는 등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여자가 갈비뼈 쪽이 아파해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데 혹시 임신 가능성 있으실까요?라고 선생님이 물었다. 그때 여자가 혹시 임신 테스트 가능할까요? 라면서 날짜를 계산하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접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소변 검사로 가능하다고 소변을 받아오라고 종이컵을 주자 그럼 아까 주지 벌써 화장실 다녀왔는데 어떻게 보라고 지금 주느냐며 뭐라 하는 게 아닌가? 이게 웬 소란일까? 그러더니 임신테스트기 사서 검사하겠다면서 그렇게 피 터지게 싸운 자신의 님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조폭과 조폭 두목이 엄청 큰 싸움에서 져서 응급실에 내원한 일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두목의 얼굴에 살짝 긁힌 상처가 났는데 시간이 늦어 어쩔 수 없이 응급실로 왔다고 한다. 웃겼던 건 조폭 두목인데, 그 조그마한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는데 엄청 아파하면서 거의 울 뻔했다는 사실이다. 처치실에서 나오자 다시 근엄한 두목으로 변신하는 그를 보니 싸움을 잘하는 두목도 아픔 앞에서는 무릎도 꿇는다는 사실이다.


 조폭 두목 얘기가 나온 이유는 그분이 우리에게 더 하찮게 대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친절하고 배려있게 행동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간혹 선입견들로 가득 차서 사람들을 겉모습으로 평가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 거라는 당연한 모순 논리에 빠져 오히려 그렇게 행동을 안 하면 이상하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어떻게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행동하며 살 수 있을까? 조폭 두목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자신이 아무리 위치가 높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하등 하게 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친절과 배려만 요구하길..


특히 간호사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 우리들은 당신들을 간호하기 위함이지, 서비스를 하기 위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다 병원끼리의 경쟁으로 병원 서비스가 들어오게 되었기는 하지만, 친절과 배려는 같아도 서비스와 갑질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그 사실을 제발 병원을 다녀가는 분들이 아셨으면 한다.




하수 취급에 동네북이 된 사연



피부과에 잠시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때 홍대입구 근처에 유명 체인점을 갖추고 있는 지금은 엄청 유명해진 피부과였다. 근무시간이 아침 10시부터라서 늦잠을 잘 수 있음에 지원했는데, 거기는 오후 9시에 끝난다. 그곳에서 돈이 많고 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우리를 하수 취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을 부리듯 우리는 그들에게 거의 90도 가까이 인사를 해야 했고, 그들이 가는 뒤꽁무니를 쫓아서 뒤통수에 대고 인사를 해야만 했다. 이게 무슨 간호사인가 싶었다.


대학병원에 갔다면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았을까 싶었다. 우리나라는 대학이 어디냐, 직장이 어디냐에 따라 사람을 등급 매기기 때문에 나도 간판을 잘 달고 싶었다. 내 얼굴에는 붙이지 못해도 말이다.

근데, 친구들이 그러더라 대학병원도 유명한 대형병원도 간호사는 모두들 동네 북인 줄 안다고 그래서 힘들다고 한다.





언어폭력도 모자라 여성 비하까지


상담 쪽으로 일을 할 때 나는 제약회사를 들어갈 실력이 되지 않았다. 경력이 없었기에 학력도 모자라서 근무할 자격이 없었다. 물론, 영어실력도 없었고, 근데 제약회사의 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게, 아웃소싱 업체였다. 한마디로 제약회사가 만든 프로젝트를 대신 실행해주는 대행업체인 셈이다. 그런 업무를 하는 곳이 요즘 말하는 "헬스케어 서비스"다. 그곳에서 아주 유명한 제약회사와 협약을 맺은 프로젝트를 맡아서 직접 업무 인수인계까지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어느 날 전화를 받고 있는데, 내게 "여자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게 상담한다"말을 놓는 것도 모자라 비속어에 심지어 성 관련 어휘를 쓰며 여성 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계속 "죄송하지만, 고객님~" 이런 *쿠션 언어를 사용하며 죄송한 일은 지가 했는데, 내가 죄송하다고 하는 비현실적인 대화를 하며 상황을 종료시켰다.


옆에서 듣고 있던 부장이 무슨 일이냐며 묻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화장실로 향했고, 너무 어이없고 황당한데 거기다 분해서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자세한 얘기를 하면 누구나 다 아는 제약회사라 금방 알 수 있기에, 개인 정보가 심해진 요즘 사회에선 이 정도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쓰럽고 대견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만날 수 있다면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그 사람에게 모진 소리를 들었어도 절대 전화를 먼저 끊지 않고 끝까지 상담하려고 했던 직업정신과 그렇게 힘든 곳을 잘 버텨내 준 그때의 나에게 말이다.


*쿠션 언어 - 콜센터 상담원들이 고객들에게 딱딱한 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넣는 언어를 말한다.



우리가 간호사가 되기 전에 선서를 한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우리 간호사들은 나이팅게일 선서


의사분들이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분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의술을 주관하는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히기에이아와 파나 케이아를 포함하여 모든 신 앞에서,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그에 따른 조항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중략-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처방을 따를 뿐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처방은 절대로 따르지 않겠다. -중략-
내가 어떤 집을 방문하든지 오로지 환자를 돕는 일에만 힘쓸 따름이고, 고의로 어떤 형태의 비행을 일삼거나 피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겠으며, 특히 노예든 자유민이든 신분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자이든 여자이든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환자의 신체를 능욕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중략-
내가 이 선서를 절대로 어기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 나간다면, 나는 내 일생 동안 나의 의술을 베풀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항상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중략-
[네이버 지식백과] 히포크라테스 선서 (인물로 보는 해부학의 역사, 2015. 10. 15., 송창호)

현재 대부분은 제네바 선언문으로 한다고 한다.



간호사가 되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이팅게일 선서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나이팅게일 선서는 대부분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내용을 반영하여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바쳐졌다고 한다.


이렇게 선언을 하고 간호사로 재직해 온 지 벌써 15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까지 간호사의 일을 해오며 겪어왔던 많은 아픔들과 슬픔들 그리고 격려와 보람찼던 기억들 모두 나의 글로 남게 되었다.


잠시 간호사의 일을 쉬면서 그동안 나의 경험들을 그려보며, 그렇게도 아팠던 날들이 시간이 지나자 흐려지고 옅어져서 이제는 그때 그렇게 힘들었었나? 싶다.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있을 테고, 그 앞에 또 아픔도 있을 테지만 이젠 더 이상 아파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아픔이 지나고 나면 내게 더 큰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그 자리에서 아파하고만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픈 만큼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될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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