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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솔윤베씨 Jan 21. 2024

주인없는 슬픔

당신의 이야기

'언제까지고 지금 떠오른 이 생각이 내 머릿속에 있을 거라는 어설픈 확신 따위 저버리고 흐릿하게나마 내 기억 속에 있을 때 글로 남기자'라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가족 모두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었고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하나같이 전원 꺼지듯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들었다. 나는 이렇게 가사일에 대한 의무나 책임이 없는 늦은 저녁 '혼자만의 시간'에 전원을 켰고.





지난주 월요일엔 막내 작은 어머니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작은 아버지도 여섯 남매의 막내이고, 작은 어머니도 일곱 남매의 막내라 그런지 장례식 첫날 조문객들이 없는데도 가족들로 북적북적하다. 형제들의 자식들까지 옹기종이 테이블마다 모여 입고 있는 상복이 무색하게 화려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 모습이 티 없이 맑고 반가워 어디 지방에 소문난 맛집에 들어가 음식 기다리며 옆 테이블에 똑같이 상기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마냥 마음이 설레기까지 하다. 이렇게 즐겁게 웃다가 정작 울어야 할 때 눈물이 안 나오면 어쩌나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괜한 걱정까지 일만큼 가족 형제들의 모습이 편안하고 정겨워 보인다. 아마 작은 어머니가 가진 따뜻하고 밝은 성품이 가족 내력이구나 싶어 평소 왕래도 별로 없던 것치곤 마음 깊이 아주 깊이 우러난 조의를 표하게 된다. 이렇게 개구지게 웃고 계서도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고 계실 테니.



이것저것 먹고 길지도 짧지도 않게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두 해 전에 돌아가신 남편의 왕 할머니 장례에서도 그랬듯이 호상이라는 위로를 하며 마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웃으며 만나고 웃으며 헤어진다. 조카들의 배웅을 받으며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  작은 어머니 손이라도 한 번 꼭 잡아드리고 올 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말은 못 꺼내도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온 가족의 환한 웃음에 장례식 장인지 아닌지 정신도 못 차리고 수육만 먹고 온 거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그동안 시집 식구들 중에 유일하게 내 어설픈 막내며느리 코스프레에 안 속아 넘어가고 같이 설거지할 때나,  새우를 튀길 때나, 제기를 나를 때 내 허심탄회를 끄집어내 준 분인데 말이다. 유일하게 시댁 식구 중에 절전모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인데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이럴 때나 표하지 언제 또 하겠나싶어 아쉬움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왕 할머니 장례식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당장 울 것 같지도 않았지만 코끝에 찡함은 며칠을 갔던 것 같다. 마지막 입관 전에 온 가족들이 모여 수의 입은 할머니 몸 위로 꽃을 하나씩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며칠을 머물던 코끝의 찡함이 터져 내 나름의 통곡을 했다. 남편의 왕 할머니가 나와 정이 깊다거나 생전에 나를 유난히 예뻐했던 것은 아니다. 결혼 7년 차에 돌아가셨으니 연애 때를 포함해서 9년 가까이 뵈었지만 지금 떠올려 생각나는 말이라고는, 첫 임신에서 솔이가 딸이란 걸 알았을 때 내게 해주셨던 위로의 말씀뿐이다. 괜찮다고 다섯이고 여섯이고 아들 낳을 때까지 낳기만 하면 된다고 나를 토닥여주셨다. 그 말이 내겐 상처도 위로도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박완서 선생님의 책에서나 읽던 문장을 내 귀로 육성으로 들으니 너무나도 인상이 깊어 잊히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시조모와 손부 사이라는 것 말고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한 일화도 없건만 수의를 입은 채 마주한 할머니를 보니 그저 깊은 애도의 눈물이 흘렀다. 홍수라도 난 것처럼.



막내며느리라 그런지 장례의 모든 절차에서 내 순서는 마지막, 내 자리는 없거나 늘 틈새였는데 그때 그 입관식에서 틈 사이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시부모님들을 비롯, 작은 아버지들, 작은 어머니들, 고모님들, 고모부님들 육 남매 아들 며느리, 딸 사위들이 할머니를 끌어안으며 주저앉으며 댐 같은 눈물을 흘린다. 그 크기와 소리와 힘이 마치 폭포와 같아서 틈 사이로 흐르는 내 눈물은 설거지하다  윗옷에 튄 몇 개의 물방울만도 못되게 끝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들의 눈물엔 주인이 있고 내 몇 방울의 눈물엔 주인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저 주인 있는 폭포 같은 슬픔이 부러워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수의에 꽁꽁 싸여진 할머니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까지 싹튼다. 짝 있는 슬픔은 얼마나 고상한가. 얼마나 진실되고 얼마나 값있는가. 누군가를 잃고 아파할 마음이 저렇게 크다는 것이 부러워 그게 샘이 나서 그 뒤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모든 장례가 끝날 때까지 코끝이 시큰거리고 찡할 뿐.

그런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나 자신에게도 자연스러웠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내 자리가 내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형체 없는 안정감을 준다는 것도.





오늘은 작은 어머니 장례식을 다녀오며 이때와는 반대로 장례식장에 핀 웃음꽃이 내 마음에 메아리를 친다. 누군가를 잃고 그 슬픔을 진심으로 나누고 위로하고 심지어 용기 내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워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앉아서 수육만 먹다가 나왔다. 수육도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라 윤성이 비개 잘라 고기 입에 넣어주고 남은 비개를 쌈장에 찍어 몇 입.


나는 언제고 마주할 나의 상실 앞에서 어떤 모습일까. 불현듯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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