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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범석 Dec 16. 2024

날 보러 와요

알뜰한 날갯짓으로

할미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던 나의 어릴 적 어느 날,

주방 창문 쪽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별것이 다 처음이자 새롭고 신기할 나이였던 나는,

설거지를 하다 비둘기와 몇 마디 대화를 시도하던 할미 옆으로 냉큼 다가갔다.


"뭐 줘. 뭐 주까. 쌀 주까?"


할미 말을 알아듣는지 어쨌는지 고개를 갸웃대는 비둘기 앞에,

할미는 쌀알 반 줌 정도를 창틀에 놓아주었다.

비둘기에게 생쌀을 주는 것도,

버퍼링 걸린 듯이 고개를 뚝뚝 끊어 내려다보던 비둘기가

부리 안에 쌀을 옮겨 담는 것도,

온 동네 쩌렁쩌렁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투박한 할미의

보기 드문 스윗다정한 음성까지,

나에겐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한 묶음의 기억이다.


그때부터 비둘기는 매일같이 찾아와

기다렸던 쌀을 받아먹었다.

그러다 딱 하루 그 비둘기를 먼저 만난 나는,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멀뚱멀뚱 쳐다만 보다

할미에게 보고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때의 나는 왜 쌀을 놓아주거나

비둘기가 왔음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30년 넘도록 미안한 비밀로 간직하던 나는,

거실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쌀을 넉넉히 뿌리는 할미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할미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비둘기가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저 건너편 비둘기들이 어제는 주는 쌀을 먹는데 오늘은 쭈뼛거린다고 했다.

(그리고 비밀을 말한 나에게는 '썩을늠'이라고 했다.)


"한 번 주면 자꾸 달라 하니 이젠 안 준다"는 할미의 거짓말




할미는 돌아가신 증조할머니가 새로 변한 것 같다 말해왔다.

새의 수명이 몇 년이든 상관없이

언제고 할미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우리 엄마 새가 돼서 나 보러 와줬네"

라고 나지막이 탄식 어린 한마디를 뱉곤 했다.


증조할머니가 새로 변하기 전(?),

나는 증조할머니와 만난 적이 있음을 아주 뒤늦게 기억해 냈다.

방 한켠에 이불을 덮고 누워만 계시던 증조할머니가

나의 왕할머니라는 것도 모른 사리분간 어려웠던 나.

가족 모두 다 같이 어딘가로 가자니 실려가서 좋았고

온 친척 모두 모여 왁자지껄 달뜨는 분위기가 신이 났던 나는,

가끔 홀로 고요했던 증조할머니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때마다 증조할머니는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했고,

슬라임처럼 물컹물컹 쑥스럽게 다가온 나에게

당신은 그때마다 계란과자 한 줌씩을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나는 어디서 매번 저것들이 나올까 신기해하면서,

손의 온기로 따스히 데워진 계란과자를 한입에 털어 넣고

친척 형, 누나들을 향해 뛰어갔다.


그렇게 명절인 줄만 알았던 며칠이 흐르고,

난 방 안에서 목놓아 울던 할미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할머니 저렇게 울 수 있구나.

할머니가 나처럼 울면 저렇구나...

난 정말이지 뭐가 뭔지 몰라도 너무 몰랐다.

먹먹했을 슬픔을 덮고 몸을 누인 할미의 할미가

기나긴 여행을 떠나야 했음을,

그런 엄마를 팔십이 넘은 딸이

긴 세월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될 때까지,

나는 모르고 살았다.




예전 SNS에서 본 영상에서 한 손자가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제 결혼식에 하얀 나비가 되어 와 주세요'

라는 바람을 공유한 적이 있는데,

결혼식 당일 자신의 턱시도에 살포시 앉은 하얀 나비를 보고

하염없이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땅에 붙어사는 자들이

날개 달린 것들에 길조와 흉조를 담고,

기쁨과 그리움과 사랑을 싣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때때로 사실과도 같은 우연 앞에

바람을 이룬 감동을 느끼는 것.

저마다 잊히지 않는 것을 품고 사는 우리의 생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느낄 때가 있다.

따로 살 적에 전화를 하면

"오늘은 까치가 집 앞에서 꺅꺅거리더니 도련님 전화가 올려고 그랬구머언~"

소리 높여 반가워하던 할미와의 기억이 점점 슬퍼져온다.


할미는 그렇게 날지 못하는 대신

하늘에 더 가까이 있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언제든 가까이 날아오라고

보고 싶을 땐 와서 보라고

기꺼이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리고는 온갖 새들에게 의미를 담아 기뻐하고 아파했다.

가끔 창밖을 쳐다보는 할미는

여전히 누군가 당신을 보러 와줬다고 느낄까?

혹여 내가 만나러 가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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