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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Jul 03. 2020

[항해사아내의 일기] 공사다망했던 나홀로 임신8개월#1

- 시어머니는 항암 중, 방송대 과제와 임신당뇨와의 전쟁

[항해사 아내의 일기] 공사가 다망했던 나 홀로 8개월 임신기간

- 시어머니는 항암 중, 방송대 과제와 임신당뇨와의 전쟁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혼자서 9개월을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항해사들은 아내가 임신하면 거의 8-9개월간 배를 타고 출산에 최대한 맞추어서 휴가에 나오기 때문이다. 아기에 대한 설렘보다 걱정이 더 많았지만 바쁘게 지내다보니 9개월 남짓한 시간은 훌쩍 지나고 다음 주면 남편이 돌아온다. 

 남편은 임신을 알게 된지 4일 만에 부정기선을 타고 출항했다. 작년 10월 말에 나가서 올해 7월 초가 되도록 남편이 탄 선박은 중국과 호주 싱가포르 콜롬비아 등을 분주히 오갔다. 아마 한국에 들어왔어도 코로나 때문에 상륙이나 방선이 금지되어서 어차피 남편을 만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임신기간 내내 아빠 손길, 아빠 목소리 한번 제대로 듣지 못한 아기가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 지낸 임신 9개월, 입덧과 두통으로 등 갖은 임신증상에 괴로운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입덧이 가시고 살만하자 갑자기 시어머님이 편찮으셨다. 심상치 않은 병세에 부른 배를 잡고 종종거리며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모시고 다니며 검사를 받아보았다. 그리고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뇌림프종이라는 암 선고. 아버님과 어머님을 부여잡고 화순 암센터에 앉아서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외동아들에 가까운 친지도 없는 상황, 결혼식도 아직 올리지 않은 새댁에게 그때만큼 남편의 부재가 버거웠던 적은 없었다. 이미 친정아버지가 8년째 와병중이며 어머니가 간병하고 계시는 터라 더욱 그러했다. 다행히 아버님의 헌신적인 간병과 항암을 잘 버텨주시는 어머님 덕분에 종양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나는 오며가며 마음만 보태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올해부터 방송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해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기에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하필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한 학기 동안 12개의 과제물을 해치웠다(보통은 절반 정도). 이미 오래전부터 병원에 누워계신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병원과, 인근 대학의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하고 과제하느라 차분히 태교할 시간도 마음에 여유도 없었다. 


 임신당뇨가 와서 그 와중에 식단 챙기고 운동하고 스트레칭 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은 쑤욱 지나고, 배는 뿌왁 나왔다. 춤을 추던 혈당수치는 막달이 되니 이제야 잡히고 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에 먹는 것까지 조절하려니 속상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임당 덕분에 그나마 좀더 건강한 임신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이할만한 것은 대신 운전해줄 남편이 없는 덕분인지 자동차 운전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워낙 장롱 면허라 남편이 승선하기 직전 새로 산 차를 혼자서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자전거를 샀을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임신으로 인해 자전거는 탈 수 없게 되었고, 죽으나 사나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연석을 들이받아서 거하게 새 차의 타이어 축을 한번 해먹고 요즘은 운전이 할 만 해졌다. 

 남편이 계속 옆에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운전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요즘은 광주에서 화순과 여수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앞으로도 대부분의 시간 남편 없이 혼자 아기를 키워야 하니까 운전은 필수다. 혼자라서 매순간 더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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