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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것을 배워버렸다.

25.03.25

by 수현 Mar 25. 2025

25.03.25(화)


<너무 많은 것을 배워버렸다.>


학습과 습득은 다르다.

나는 이 말을 방송인 ‘타일러’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언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게 됐냐는 질문에, 타일러 씨가 이런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언어는 머리로 깨닫는 학습이 아니라, 몸에 익히는 습득으로 되는 것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가 댕- 하게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12년의 학교 정규 교육을 받을 땐 모르다가

성인이 되어, 그제야 어떤 분야에 뒤늦게 흥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세계사가 나에게 그랬다.


팟캐스트, 유튜브, 인터넷의 각종 자료를 찾아가며,

스스로 너무 즐기며 공부를 (그걸 공부라고 여기 지도 않았지만)하고 있는데, 

문득 중고등학생 때는 왜 이걸 이토록 재밌게 느끼지 못했을까 의아했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게 아니란 것을,

시간이 흐르고 삶이 성숙해지면서 몸으로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의 경이로움.

세대를 거쳐 흐르는 인류의 시간.

그 시간 속에 살아가고 또 죽었을 수많은 개인들.

그 개인들이 처했을 시대적 상황.

시련에도 꺾이지 않았던 인간의 주체성.

그 외에도 지금과는 다른 그 시절의 사소한 일상생활들.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 놀랍고 신기하지 않은 게 없다.


떠먹여 주는 교육이 왜 위험한지, 이제는 절실히 알 것 같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1부터 100까지 다 알려주는 것은

사람을 무감각하게 하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스스로 공부에 흥미를 느꼈던 학생들도 있었을 테니,

50프로는 나의 치졸한 자기변명이라고 해두자.)


음악도 나에게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 글이란,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모르니까 공개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잘 몰라.’가 나의 기본 상태니까.

더 내려갈 곳도 없으니 용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음악은 너무 많이 배웠다.

실제로 내가 활동하며 몸으로 부딪혀 배운 것이 아니라,

강의실에서, 교수님과 선배들의 조언을 통해서 지식으로 학습한 것이다.

그러니 너무 높은 기준이 스스로에게 세워져, 도전하는데 무서움이 많아졌다.


글은 이렇게 용감하게 공개하면서, 자작곡은 1년에 하나 올릴까 말까 한다.


표현의 수단으로 가장 많이 연마한 게 음악인데,

글보다 음악을 어려워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12년 영어교육을 받고도 영어 한마디 뻥긋 못하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던 학생 시절,

이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지금.

학교 교육을 지금 받았더라면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을 텐데 -.


아- 내가 가장 싫어했던 어른들의 변명을

지금의 내가 하고 있다.


내 아이는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고민해 본다.

떠먹여 주지 않고 스스로 떠먹는 아이로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어른인 내가 세상을 탐험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늘 배우며 산다면

아이도 그 자세를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이 세상에 늦은 건 없다.

그 시절에 대한 치졸한 변명일지 몰라도

오늘도 무식하고 용감하게 글을 업로드한다.

내 몸으로 부딪혀 배우는 삶을 이제는 살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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