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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Nov 19. 2024

일상의 조력자들

(Revision, 舊 '용기의 이동')

오늘도 일상을 일관된 정성으로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지능적 배려


공무로 들른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이 멋진 곳이었습니다. 화려하거나 중후한 멋의 대리석 건물이 도시 중심을 이루고, 주요 길마다 늘어선 높은 키의 나무들이 클래식의 멋을 완성한 모습입니다. 거의 십 년 만에 찾은 도시. 참 변한 것이 없구나 싶어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로부터 온 여행자로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시의 낭만이 제 마음속에 흐릿해진 건 머문 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을 때였습니다.


문명에 익숙했던 탓일까요, 느린 인터넷 속도에 오른 물가, 몇 번의 불친절함과 멈춘 전철을 경험하며 피로가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멀리 행사장에서 도심 근처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들른 전철 역사에서 긴 줄을 서야 했습니다. 밀라노의 행사장은 서울로 치자면 일산 정도에 위치해 있었고, 가까운 지하철은 파업인지, 아얘 운행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전철은 있었습니다. 택시는 도저히 잡히지 않는 시간인데다 교통정체로 요금 폭탄을 맞을 것이 분명해 전철 밖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밀라노에는 지하철과 지상 전철이 도시 곳곳을 연결하고 있는데, 신용카드 태깅(tagging)으로 출입이 가능한 지하철과 다르게 전철을 타려면 실물 티켓을 티켓 머신에서 구매해야 했습니다.



줄이 너무 긴데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터치 방식의 머신은 오래된 인터페이스에 시스템도 느려 단계마다 처리가 지연되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어서, 어서 줄이 줄어들기만을 바라며 지루한 시간을 반시각 가까이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앞에 한두 팀 정도가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쉽사리 티켓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한 젊은 여성분이 앞으로 오더니, 머신 사용법을 알려주며 빠르게 티켓을 구매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차례가 되자 제게도 원활한 구매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한 친구가 제게 '배려는 지능과 연관이 깊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능이 높을수록 자신의 감정을 숨길줄도 알고, 상대의 마음을 살필 줄도 알아 그들이 배려를 느끼고 또 감사해 선의를 베풀도록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습니다. 뒤에서 기다리던 티켓 머신 앞 조력자는 앞선 이의 미숙함을 비난하기보다 나서서 도움을 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의 편의도 도모한 것입니다. 물론 이는 지능에 기반하지만, 또한 도움을 줄 때는 선뜻 나설 용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빗나간 배려


경기도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던 때 경험한 일입니다. '빨간 버스'라 불리는 버스는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두 줄씩 좌석이 있었는데, 자리가 아무리 많아도 버스를 타려는 사람이 더 많아 늘 부족했습니다. 가까스로 부족한 손잡이를 찾아 부여잡고 어떻게든 버티며 가는 사람들과 편히 의자에 앉아 가방을 끌어안고 몸을 기댄 사람들, 하나의 통로를 사이에 둔 상반된 두 입장이 공존하는 공간은 아등바등 뒤엉켜 살아가는 우리 일상과도 같았습니다.


그날은 다행히도 좌석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버스가 출발을 하고,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여유로운 마음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여러 영상 콘텐츠를 훑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멀미가 오는 듯해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때, 이리저리 흔들리며 선 통로의 많은 사람들 중에 오른편의 한 여자분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임신부용으로 보이는 큰 원피스를 입은 그는, 옷차림 때문인지 임신부처럼 보였습니다.


광역버스에서 통로에 서서 간다는 것은 사실 더 많은 체력을 요구해 꽤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그걸 아는 입장에서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을 했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휴대폰을 보던 그에게 일어서서 자리를 가리키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그 여자분은 눈은 동그래지고, 낯빛은 붉어지며 나를 향해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거절의 말을 듣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큰 실례를 저질렀구나'.


"저,... 아니에요"


굳이 '임신부'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은 임신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던 것임은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숙여 목례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휴대폰에 얼굴을 파묻고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다시는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 무렵부터 적극적으로 남을 돕는 일을 그만두게 된 것 같습니다. 사회 풍토야 어떻든, '남을 돕는'일이 즐겁고 편한 일이라고 믿고 행하던 의식에 잠재된 일종의 코드는 작동을 꺼려했습니다. 대신 '원치 않는 친절'을 경계하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이를테면, 전철에서 교통 약자(처럼 보이는 이)를 봐도 쉽게 자리를 비키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언젠가는 전철 역사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계단을 오르는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분을 지나쳐 한참을 걸어가다가 다시 그 계단으로 돌아간 일도 있었습니다. 이미 없는 도움이 필요했을 그 할머니는 오래도록 잔상에 미련처럼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세대들의 직관적인 언어라며 리더의 업무 지시에 (지시라는 단어도 요즘 핏(fit)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왜요?', '제가요?', '지금요?'를 말하는 우리 동료들의 솔직한(?) 용기를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면서도 '물론이죠', '언제든지요', '별말씀을요'라고 배려의 말을 건네는 것은 점점 더 어색해합니다. 과감한 이성이 적극적 감성을 앞서는 현실에서, 도움이 곧 '오지랖'이 될까 싶어 그냥 회피하거나 못 본 척하는 일은 일상이든 업무 중이든 일반적입니다. 내가 입을 손해를 적극 피력할 용기는 커지고, 다른 이를 대가 없이 도울 용기는 점점 작아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다행히도 여전히 많은 동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타인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원래 각자가 다른 모양의 퍼즐 같은 사람들이 모여 전체적으로는 잘 어우러진 세상을 이룰 수 있도록 사이사이를 메우는 조각들이자, 일상의 조력자들입니다.


(표지 사진: UnsplashMARIOLA GROBEL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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