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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Nov 05. 2024

이야기가 가진 힘

첫 번째 에피소드 : 매일 메일 대화

Be Sorry


성수동에서. 약속시간보다 한참 전에 도착을 해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걷다가, 한 카페가 보여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참 끌리는 입구 인테리어와 디자인의 카페였습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카페라기보다는 베이커리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커피 한 잔만 하고 가려했는데, 맛있어 보이는 소금빵 사진에 두 번째로 유혹당해 빵도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점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지금 소금빵은 품절인데, 괜찮으시면 다른 빵을 추천드려도 괜찮을까요? 대신 15분 정도 소요됩니다"


점원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빵을 보니, 처음 보는 못생긴 모양의 뭉툭하고 검은색의 빵이라 그 맛이 궁금했습니다. 그 빵을 달라고 하고, 음료를 커피에서 핫초코로 변경했습니다. 왠지 그 빵은 투박한 감성이라 초콜릿이 더 어울릴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 10분쯤 뒤에 빵이 나왔습니다.


갓 구워 나온 빵은 역시나 까맣고 뭉뚝하게 못생겼습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온기와 버터향이 참 기분 좋게 하는 이름 모를 빵이 낯선 곳 붕 뜬 시간 속 방랑자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빵 옆에 놓인 작은 엽서가 두 번째로 미소 짓게 했습니다. 귀여운 강아지 인형들이 천진난만한 웃음기 어린 표정을 짓고 늘어선 재미있는 포스터 뒷면에 적힌, 이 못생긴 빵의 스토리로부터 죄송하다는 점원의 말은 진정성 있는 사과이자 이 빵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Be Sorry

하루하루 쌓여가는 베통에서의 수많은 추억들은 곧 보물과도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쉬움 없는 매일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을까.

늦은 시간 빵이 없어 실망하며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면 항상 마음이 아팠습니다.

소금빵 전략 소진 후에만 소량 구워내는 홈메이드 레시피, 'Be Sorry'. 이 빵에는 어떻게 우리의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중략)

해 질 녘 돌아서는 발길에 미안함을 가득 담아 투박하게 구워지는 비-쏘리는 우리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너무 예쁜 의미의 편지였습니다. '이 사장님은 가치 전달에 진심이시다'. 그래서 빵 맛도 너무 기대가 되었습니다. 빵을 살살 뜯어서 한 입을 먹었습니다. 원래는 저녁 식사 전이라 간단히 맛만 보고 가려했는데, 빵 하나를 허겁지겁 다 먹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고소하고, 부드럽고, 풍미 가득한 버터 향이 매력적인 빵이었습니다. 그 날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도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추가로 두 개 주문을 하려 했으나, 포장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쉬움에 다시 펼쳐본 엽서에 적힌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진짜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Be Sorry 빵의 경험으로부터, 감사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소중한 것을 소홀히 생각하는 사회생활과 그럼에도 여전히 따스함이 더 짙다고 믿는 나와 내 주위의 관계들을 떠올렸습니다. 성숙한 조직문화를 꿈꾸며 그 일을 했던 저로서는, 어느 회사에서든 활동 뒤엔 늘 동료들을 주인공으로 한 글을 남겼습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기에, 나의 동료들을 수신인으로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그동안 조직문화라는 직무를 경험하며 썼던 이야기들의 좋은 영향과 잊힘의 한계에 대해 나눠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도 일관된 정성으로 하루를 채우는, 나의 소중한 동료들에게.




매일 메일 대화


당시 회사에서 내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일하며 했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매일 아침 10시 업체에서 취합해 보내오는 뉴스들을 모아 이메일로 직원들에게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틀은 정해져 있어 사실 크게 일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매일 메일을 열고, Ctrl+C/V, 날짜 바꾸고, 보내기 버튼 클릭. 기계적인 일을 기계적으로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기계가 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내 소통이라는, 유연하고 말랑한 것이 일의 속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기계가 된다니. 기계에게 생각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똑똑한 인공지능(AI) 기계들에게 금세 대체되어 버릴 수도 있어 위기감이 엄습했습니다. 동료가 하루의 시작에 가장 먼저 열어볼 이메일에서 조금의 따스함을 느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뉴스 첫머리에 간단히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5월, 뉴스레터의 공유를 시작하며 덧붙인 앞머리 글들은 AI도 할 수 있는 일만 하기 싫었던 이유가 컸습니다.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즉 사람의 생각으로 감성을 담는 일에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관심을 주시며 궁금해합니다. 직접 쓰는 것이 맞느냐? 본인이 경험한 것이 맞느냐?

대부분 직접 한 경험이나 생각을 바탕으로 하지만 궁금함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들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하기도 합니다. 소재를 정하는 것은 정해진 때가 없습니다. 그중 잦은 빈도는 출퇴근길 혹은 사람 사이의 대화입니다.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글을 적어 보내다 보니 동료들의 공감, 즉 답장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방적 두드림에 문이 살짝 열린 느낌이랄까? 원래 그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기뻤습니다. 이런 게 소통인가 싶었습니다.


뉴스레터 앞머리에 글을 연재하고 나서 제게도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매일 반복하는 글 쓰는 일이 지겹지 않게 되었고, 집이 멀어 오가는 버스나 정류장에서 많은 소재를 발견해 메모장에 적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스마트폰 들여다볼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거나,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모르는 동료들에게 회신이 오면 그분들과 소통하며 인사를 하고, 점심 초대에 이전엔 몰랐던 분들과 만남의 기회도 더러 생겼습니다. 밖에서 동료를 만나면, 서로 얼굴은 몰라도 회사 명찰로부터 이름은 익숙해 반가워했습니다. 저를 ‘작가’라 불러주는 동료도 생겼습니다. (그게 지금은 저의 꿈이자 목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커피, 클래식 카메라, 혹은 라디오 같다고 했다 (사진: pixhere)


매일 쓰는 편지가 늘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읽을 뉴스도 많은데 글을 저렇게 많이 적어놓으니 피로하다'라는 의견도 있었고, '글씨가 너무 작다, 노안이라 침침하니 키워달라'며 농담처럼 진심을 전해오는 동료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조금 불편한 기분이었던 것이 사실이나, '무언(無言) 보다 비판이 낫다'라고 여기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장을 했습니다.


정성에는 정성으로. 동료들의 의견에 따라 분량을 줄이고, 글씨 크기도 가독성 있게 바꿨습니다. 간혹 오타나 표현의 오류도 그걸 지적해주는 동료들로부터 줄여갈 수 있었습니다. 부정이나 지적은 모두 변화와 발전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메일


그 회사에서의 경험을 마무리하며, 반강제적 독자(=동반자)가 되어주었던 동료들께 매일 했던 메일 소통에 대한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기억의 억(憶)은 마음(心)의 의미(意).

빛과 구름에 가려져도 별은 그곳에 있습니다. 문을 닫고 나와도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 걷히고 문이 열리듯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고, 문득 차가워진 공기에 맑은 하늘의 오늘은 매주 돌아오는 또 한 번의 금요일일 뿐입니다. 그간 허락 없이 모두의 공간 멋대로 채웠습니다. 죄송스러웠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드리는 마지막 업계 주요 뉴스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s. ‘Send’ 버튼이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누군가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멋대로 채운 공간 충분히 멋스러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선물


얻은 것이 딱 내 값어치만큼의 소박한 연봉과 경력뿐이었을까요? 동료들의 과분한 관심과 응원, 그리고 몇 줄 글에 담긴 이야기들은 진짜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중 가장 크고 귀한 선물은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과,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동기(動機)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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