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니스트리 Oct 29. 2024

모르던 동료가 점심을 먹자고 했다

- revision -

회사의 실적공유를 할 일이 있어 최신의 정보를 수집하던 중, 우리 회사 전체 직원 수와 연내 신규 채용 계획을 유관부서 담당자에 물었습니다. 그러자, 담당자는 실질적으로 퇴사는 했지만 계약상 고용 유지 중인 직원도 숫자에 포함시킬지를 되물었습니다. 현재 시점의 정보가 필요했으므로 모두 포함시킨 수를 물었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곧 고용 데이터베이스에서 사라질 직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몇 개월 전, 평소 교류가 없던 제게 용기 내어 점심을 먹자고 하고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은 그 직원이었습니다.


해당 동료는 조직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조직에도 불협화음이나 단절이라는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당사자에게도 원인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조직과 함께하며 조화롭기 위해서는, 그 당사자의 노력이 대체로 더 필요하긴 합니다. 조직은 여럿의 집합체이고, 오래 고착된 문화가 있을 것이고, 개인의 노력이 구성원 노력 총합보다는 더 작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조직적 관점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시각에서 그 조직은 하나의 커다란 세력이고, 새 식구가 되고자 찾아온 개인은 너무도 미미한 존재입니다. (경험상 이는 직급이나 나이와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경력이 많은 신입이 위로부터의 기대와 동료의 견제, 아래로부터의 텃세에 스트레스가 더 많을 수 있다, 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조직의 여럿이, 즉 동료들이 조금씩만 마음을 모으면 새로 온 사람 한 명 잘 보듬는 것은 그가 적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보다는 수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글은,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부서를 전전하다가 연(年)을 채우자마자 퇴사한 직원을 비판하는 글도, 그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조직이나 조직 리더에게 묻는 글도 아닙니다. 사람의 관계든 조직의 조화든, 틀어졌다면 올바르게 바로 잡을 시기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경험에 의해 말하고자 함입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은 떠나 가!"


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차피 떠날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보내는 게 익숙한 조직만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일관된 정성으로 일상을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어느 날, 동료 직원 한 명이 물었습니다. 하는 일도 다르고, 같이 할 일도 없으며, 나이와 키도 다른 그 동료와 나의 접점이라곤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동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가며 인사는 해도, 말을 섞을 일은 없어 며칠이 지나도록 의식적 마주침 없는 그런 사람들.


그러니 그 동료의 점심을 함께 먹자는 요청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별일 없으면 보통 팀원들과 점심을 함께 하던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점심시간. 만나서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도, 식당에 앉아 무엇을 먹을까 메뉴를 고르는 시간에도 그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만 나누었습니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저는 이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회사에 들어온 지 이제 200일이 채 안 된 동료의 요즘 생활이 궁금해졌습니다.


"요즘 회사생활은 좀 어때요?"


동료는 이 물음에는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잠시의 정적. 그 사이에, 왠지 그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스치는 듯했습니다.


리더와의 갈등


작은 한숨과 함께, 그가 전해온 이야기의 주제는 '리더와의 갈등'이었습니다. 입사 첫 달에는 그래도 잘 이끌어주고 자주 칭찬도 해주던 리더가 두 달째부터 변했다고 했습니다. 업무 지시를 받고 잘 이해가 안 돼 되물으면 설명을 해주기보다는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냐'며 질책을 하고, 회의 시간에는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해 면이 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없어지고, 팀에서도 고립되는 듯 느낀다고 했습니다. 결국 다른 동료들과 자연스레 단절이 된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이 동료의 평소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늘 말수가 적고 점심도 혼자 먹는 일이 많아 보였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오가며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원래는 스스로가 밝고 대인 관계에 적극적인 성격이라는 이 동료는, 부푼 희망을 품고 온 회사에서 자신의 리더로 인해 풀이 죽은 모습이 된 듯했습니다. 최근에는 대인 기피와 우울증도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의 자초지종을 들으며, 참 안타까운 마음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경청하고, 상투적인 위로와 일반적인 조언을 건네는 것 외에는 없다는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었었습니다. 저는 그의 리더도, 어떤 조치를 취해줄 직무나 직급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래전 내가 겪었던 팀장과의 불화가 떠올랐습니다.


조력자


한 회사에 초기 경력사원으로 입사해 한창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다니던 새내기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팀원은 팀장님을 포함해 총 4명이었는데, 호랑이 같은 팀장님은 가장 나중에 합류한 저를 자주 혼내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종이로 인쇄해 수기 결재를 받아야 해서 보고서를 가지고 팀장님 자리에 가 검사를 받는 일도 있었는데, 그렇게 마주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싶을 정도로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회의 시간도 너무 싫었습니다. 보고 회의에서는 어김없이 질책이 이어졌고, 때때로 본인이 알려주기보다는 옳은 답을 찾을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리는 힘든 시간도 간간히 있었습니다. 분명 해결이 필요해 보였지만, 직접적인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사 팀장님께 SOS를 요청했습니다. 초년차 직장인으로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지만, 부서 지휘 보고체계에서의 해결 시도는 직접적인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익명'을 부탁하며 인사팀장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회사에는 대여섯 명의 인사팀원이 있었고, 그중 인사 팀장님은 구성원과 면담을 하곤 했습니다. 경력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관계나 업무, 조직 상의 불이익이나 그로 인한 불편함을 겪는 이들은 그 고민을 인사팀장에게 털어놓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은 문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과적으로, 인사팀장님께 들은 조언은 꽤 도움이 됐습니다. 위로를 받았고, 통찰을 얻었으며,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으면 개선을 위한 여러 방법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든든한 지지 또한 얻었습니다.


이번에 고충을 겪는 동료와의 대화는 사실 그때 제가 인사팀장님과 했던 면담과는 속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는 바로 ‘시스템’의 유무입니다.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건넬 수 있는 말 밖에 조력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무척 고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업무상 연관도 없고 직무상 권한도 없는 나를 찾은 이유가 “편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리더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다른 특별한 대안을 마련해 줄 수 없음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회사를 겪으며 많은 인사팀을 경험했습니다. 그중 한 곳에서는 인사팀에 속해 일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성원이 팀에도, 부서에도, 동료에게도 말 못 할 고충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인사팀이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소통의 대세는 '허심탄회' 보단 '눈치껏 적당히', '어프로치'보단 '적당한 거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새삼 사람에 관한 일(人事)이라고 우리 식으로 해석한 HR의 시스템적 책무와 관념적 역할이 어떻게 균형을 이뤄야 가장 인상적인 모습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적의 균형은, 채용, 복지, 급여, 문화 등 점차 세분화되고 전문적이 되어가는 인사 시스템에서는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마치 상담원과의 대화가 아닌, 숫자나 키워드로 구분된 ARS 혹은 챗봇과의 문의과정 같은 것 아닐까요? 모호한 고민에 명확한 시스템은, 때때로 어색한 조화처럼 느껴집니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는 규모가 작아 인사팀이 별도로 없고, 채용은 경영진 승인 하에 각 팀 리더가 진행하며 여러 제반 업무는 총무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부대표님이 운영 겸 인사 리더 역할도 해서 직원들이 종종 어려움을 상담하려 면담을 신청하곤 합니다. 하지만 ‘면담’이라는 형식과 상대의 직급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직원도 분명히 있습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평소 교류 없던 타 부서 리더인 저한테 점심 대화를 요청한 동료 직원처럼 말입니다.


소통 창구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에 하나의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컬처 앰버서더’라는 일종의 구성원 참여형 문화 제도를 제안했고, 지원자를 받아 현재 1기가 운영 중입니다. 컬처 앰버서더의 역할은 전사 이벤트를 기획 운영하고, 환경 개선 등에 참여하며 직원들의 고충을 듣고, 필요시 적절한 조치가 있을 수 있도록 건의하는 일 등입니다. 완전하진 않아도, 매번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하고 그 자체가 원활히 소통되도록 기수를 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선뜻 나서서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팀원들과만 식사하지 않고 가끔은 타 부서의 직원들과도 소통하고자 점심을 요청하곤 합니다. 나이로도 직급으로도, 허리 언저리라는 위치의 무게감 때문일까요, 나름의 조직원 마음 돌봄의 노력입니다.




에필로그.


그 직원은 타 부서 전배를 시작으로 아마 헤어질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전배가 나름대로 최적의 해결책이었을 조직과 개인, 모두는 결국 헤어짐 이전 타협의 구간이 필요했을 테지요. 마지막 날이라고 인사하러 온 동료에게, 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 밖에는 해줄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더 이른 시기에 알고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노력을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말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그리고 앞으로 뚜벅뚜벅 걷다가 가끔은 좌우 앞뒤도 살피는 여유로운 일상이기를.'


이전 05화 정성의 초대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