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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Nov 26. 2024

엄마의 취미는 아르바이트

오늘도 일상을 평온하고 일관된 정성으로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오랜만에 집에 가자 어머니는 주말에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십니다.


“얘, 같이 일하는 애 중에 하나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애가 그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다 하고 참 기특하더라. 실수를 많이 하는 게 흠이지만”


이어서는,


“다른 아르바이트 애는 있잖아, 애가 참 싹싹하고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다른 직원들 험담하고 다니면서 일도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려고 해.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니까 여러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니까”


그리고,


“요즘에는 면접 보러 온다고 하더니 그냥 연락 안 받아버리고, 사장이 일하다가 핸드폰을 너무 보는 것 같다고 얘기하니까 그냥 다음날 그만둬 버리고, … 요즘 애들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듣다 보니 어머니의 에피소드들은 한숨 섞인 탄식이 아닌 활력 넘치는 밝은 분위기였습니다. 40년 차 전업주부 어머니는 최근 샐러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셨고, 그 일을 무척 즐거워하십니다.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어머니께 '힘들지는 않으시냐'라고 묻자 하나도 안 힘들다고 하십니다.


어머니의 능력치


결혼하고 남편과 세 남매 돌봄에 제사 많은 시집살이를 수십 년간 하면서도 그 일을 훌륭히 잘 해내신 어머니는 요즘 자주 외로움을 느끼셨습니다. 자식들이 다 커서 따로 살고, 아버지는 또 바빠 자주 집을 비우시니 그러실 만도 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런 어머니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며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습니다. 다른 어머니들은 무료하면 문화 강좌를 듣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아니면 어학 공부를 하는 등 배우거나 즐기는 생산적인 일들을 하는데 어머니의 아르바이트는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일이 무척 즐겁다고 하십니다. 집을 벗어나 대학교 근처 상권에서의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 너무도 재미있다는 어머니는 가게에서의 무용담(?)을 이어서 들려주셨습니다.


“사장님이 요즘 부탁을 자주 해. 다른 직원이 갑자기 안 오거나 해서 난감하면 나부터 찾는다니까. 보통 별일 없으면 가서 일 돕는데, 하루는 다른 직원애가 그러더라. ‘이모, 힘든데 왜 그렇게 열심이세요, 그냥 못하겠다고 하셔도 돼요’,라고. 난 이해가 안 돼.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야지, 그 일이 정말 하나도 안 힘들기도 하고. 왜들 그렇게 힘들다고 염려인지 참”


어머니는 평생 전업주부로 사시며 일인 다역의 역할을 도맡으셨고 또 잘 해오셨습니다. 전통적인 유교식 제사를 여전히 지내는 집에서, 사실상 맏며느리로 사시며 지금도 혼자 제사상 하나는 반나절이면 차리시는 어머니에게 샐러드 가게의 주문 처리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는 특히 어머니의 손재주와 일하는 센스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몇 해 전쯤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이고는 어머니께서 뒷수습을 하신 일을 겪어서 잘 압니다.


능력의 검증


저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식당을 차린 적이 있습니다. 마케팅 기획자로 일하던 저는 지인의 식품공장에서 재료를 받아 그것을 브랜딩 해서 플랫폼에 론칭하고, 비대면으로 조리와 배달 서비스를 했습니다. 말이 좋아 플랫폼이고 비대면 사업이지, 형태는 그냥 작은 주방의 배달 전문 식당이었습니다. 생각으로는 참 단순한데 현실은 정말 난감한 식당 주문 처리, 그것은 멋들어진 마케팅의 영역이 아니라 고작 몇 천 원의 수익 얻자고 자잘한 고객들의 요청에 일일이 정성을 다해 처리해야 하는 자영업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도저히 주문을 처리하기가 어려워 어머니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어머니는 한달음에 달려오시더니, (잔소리를 한바탕 하시고는) 마치 원래 그 일을 해오셨던 것처럼 뚝딱뚝딱 주문을 처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시던 시스템도 알려드리자 금세 깨우쳤습니다. 급기야 제가 없어도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에 생계를 위해 다시 취업을 해서 회사를 다녔고, 저녁이 별 일이 없는 날이나 주말에만 가게에 갔습니다. 필요하면 단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시라고 권해드려도, 그 정도로 바쁘지는 않다며 주방을 혼자 책임지셨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가게의 시스템은 이미 어머니의 방식대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단골도 생기고, 주위 가게들과도 친해지셔서 재료가 갑자기 떨어지면 옆가게에서 빌려오기도 하는 등 일종의 협력 네트워크도 구축한 어머니. 어머니는 비록 마케팅도 영업도 잘 모르시지만 오랜 세월 자녀와 남편, 집안의 일을 돌보며 원만한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여러 능력을 두루 갖추고 계셨습니다.


아르바이트의 동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젊은 세대의 성향을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그들의 대화법, 콘텐츠 소비 성향, 직업을 대하는 자세 등,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해 드리자 어머니는 ‘그래?’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주로는 책을 보고, 라디오로 세상을 알고, 콘텐츠는 제한적이라 드라마 한두 개가 전국 시청률 50%도 가뿐히 넘던 시대. 정보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 어머니는 완고한 집안에 시집을 오셔서 ‘왜 그래야 하나요’라는 의문 없이 시댁 식구들과 삼 남매, 그리고 조상님들 제사까지 돌보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보다 훨씬 덜한 업무 강도에도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할 이유가 충분해야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요즘 세대를 일터에서 처음 겪으시면서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하신 듯합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실 생각은 없다고 하십니다. 다른 세대를 다른 환경에서 겪고, 또 그들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포함해 집을 벗어난 일터와 아버지를 벗어난 경제가치 창출에 흥미를 느끼신 어머니에게는, 집에서는 충분히 받지 못했던 노력에 대한 정당한 인정과 대가가 아르바이트 지속의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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