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 가니, 어머니는 주말에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신다.
“얘, 같이 일하는 애 중에 하나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애가 그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다 하고 참 기특하더라. 실수를 많이 하는 게 흠이지만.”
그리고 곧이어,
“다른 아르바이트 애는 있잖아, 애가 참 싹싹하고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다른 직원들 험담하고 다니면서 일도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려고 해.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니까 여러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니까.”
말은 계속된다.
“요즘에는 면접 보러 온다고 하더니 그냥 연락 안 받아버리고, 사장이 일하다가 핸드폰을 너무 보는 것 같다고 얘기하니까 그냥 다음날 그만둬 버리고... 요즘 애들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듣다 보니 어머니의 에피소드들은 한숨 섞인 탄식이 아니라, 오히려 활기 넘치는 일상 같았다. 무려 40년 차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최근 샐러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셨고, 그 일을 무척 즐거워하신다.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보며 ‘힘들지는 않으세요?’라고 여쭈었더니, “하나도 안 힘들어” 하고는 해맑게 웃으신다.
어머니의 능력치
결혼하고 남편과 세 남매를 돌보며, 제사 많은 시집살이를 수십 년간 해낸 어머니는 요즘 들어 자주 외로움을 느끼셨다. 자식들은 다 커서 따로 살고, 아버지는 또 바빠 자주 집을 비우시니 그럴 만도 하다고 느꼈다. 그런 어머니가 최근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다시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다른 어머니들이라면 시간이 나면 문화 강좌를 듣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어학 공부를 하는 등 배우고 즐기는 일을 선택했을 텐데, 어머니의 선택은 의외로 아르바이트였다. 어머니는 그 일이 무척 재미있다고 하셨다. 대학교 근처 상권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집을 벗어나 바깥 활동을 한다는 것이 활력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가게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이어서 들려주셨다.
“사장님이 요즘 부탁을 자주 해. 다른 직원이 갑자기 안 오거나 해서 난감하면 나부터 찾는다니까. 보통 별일 없으면 가서 일 돕는데, 하루는 다른 직원애가 그러더라. ‘이모, 힘든데 왜 그렇게 열심이세요, 그냥 못하겠다고 하셔도 돼요’, 라고. 난 이해가 안 돼.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야지, 그 일이 정말 하나도 안 힘들기도 하고. 왜들 그렇게 힘들다고 염려인지 참.”
어머니는 평생 전업주부로서 일인 다역의 역할을 묵묵히 해오셨다. 전통 유교식 제사를 여전히 지내는 집에서, 사실상 맏며느리 역할을 수십년간 하시며 지금도 제사상 하나는 반나절이면 뚝딱 차려내신다. 그런 어머니에게 샐러드 가게의 주문 처리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그렇지, 그렇지'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특히 어머니의 손재주와 일 센스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몇 해 전, 내가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였다가 결국 어머니가 뒷수습을 하신 일이 있었기에 더 잘 안다.
능력의 검증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식당을 차린 적이 있다. 마케팅 기획자로 일하던 나는 지인의 식품공장에서 재료를 받아 그것을 브랜딩해 플랫폼에 론칭했고, 비대면으로 조리와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말은 거창하게 플랫폼이고 비대면 사업이었지만, 실제 형태는 그저 작은 주방에서 운영하는 배달 전문 식당이었다.
생각으로는 참 단순했는데, 현실은 정말 달랐다.
식당을 차린다는 것은 멋들어진 마케팅 영역이라기보다, 몇 천 원의 수익을 위해 자잘한 고객 요청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고, 그 과정에 익숙해야 하는 자영업의 고단함이었다. 주문이 많아도 문제고, 없으면 더 문제다. 그러다 어느 날, 무척 바쁜 날 도저히 주문 처리가 어려워 어머니께 도움을 청하게 됐다. 어머니는 한달음에 달려오시더니, 잔소리를 한바탕 하시고는 마치 그 일을 늘 해오신 분처럼 뚝딱뚝딱 주문을 처리하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시스템도 알려드리자 금세 익히셨고, 급기야는 내가 없어도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데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으셨다. 나는 생계를 위해 다시 취업했고, 이후엔 저녁에 별일이 없거나 주말에만 가게에 나갔다.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고용하시라 권해봐도, 그 정도로 바쁘지는 않다며 주방을 혼자 도맡으셨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가게 시스템은 이미 어머니의 방식대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단골도 생기고, 주위 가게들과도 친해지셔서 재료가 떨어지면 옆 가게에서 빌려오는 등 일종의 협력 네트워크까지 만들어 놓으셨다. 비록 마케팅도 영업도 생소한 분야였지만, 어머니는 오랜 세월 자녀와 남편, 집안일을 돌보며 원만한 사회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두루 갖추신 분이었다.
아르바이트의 동기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젊은 세대의 성향을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 드렸다. 그들의 대화법, 콘텐츠 소비 성향, 직업을 대하는 자세 등 참고할 만한 얘기를 해드리자, 어머니는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주로는 책을 보고, 라디오로 세상을 알고, 콘텐츠가 제한적이던 시절. 드라마 한두 편이 전국 시청률 50%를 거뜬히 넘기던 그때. 정보가 충분하지 않던 시대에, 어머니는 완고한 집안에 시집와 ‘왜 그래야 하나요’라는 질문조차 없이 시댁 식구들과 삼 남매, 그리고 조상님들 제사까지 돌보며 살아오셨다.
그러니 훨씬 덜한 업무 강도에도 ‘왜 그래야 하죠?’라는 이유부터 납득해야 움직이는 요즘 세대를 일터에서 처음 겪으며, 처음엔 당황스러우셨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하신다. 다른 세대를 겪고 이해하며 그들과의 소통에 적응해 가는 과정과, 집을 벗어난 일터와 아버지를 벗어난 경제가치 창출의 경험, 어머니에겐 그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롭다.
무엇보다, 집에서는 충분히 받지 못했던 노력에 대한 ‘정당한 인정’과 ‘명확한 대가’가 그 일에 계속 마음을 두게 하는 동기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