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나의 출근시간은 업무 시작시간 30분 전이다. 둘째,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늘 정중히 인사한다.
해외에서 일을 하다가 한국에서 재취업을 한 건 꽤 오래전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2-3년 차 경력직으로 한국 회사에 이직하게 되었다. 귀국은 좋은 일이었지만 새 회사에 출근하는 건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다.
원래 입학보다 전학이 더 긴장되고 어색한 것처럼, 새로운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때, 다른 회사를 경영하던 한 선배로부터 들은, ‘좋은 사회생활’을 위한 두 가지 원칙은 바로 부지런함과 인사였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늘 존중하며 상대를 대한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었고, 한국 회사에서만 통하는 예의라고도 여겨졌다. 그래도 그 두 가지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랬더니, 여러 기회에 좋은 평가를 듣게 되었다.
외국에서 일할 때를 떠올려보면, 그곳은 상호 존중의 인사는 일상이었고, 부지런함은 기본적인 덕목이었다.
대부분의 동료들을 따라 나도 그렇게 했었다. 선배는 내게, 갈수록 소홀해지지만 사실은 중요한 ‘기본’을 가르쳐준 것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뒤에 회사에서, 같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피하듯 지나는 동료들을 보면서, 어느 날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안녕하세요!”
아침에 회사 건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회사 동료의 뒷모습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당황하며 인사를 받은 이는 모르는 다른 사람이었다. 뒷모습이 닮아서 실수를 한 것이었다.
“저희 회사 직원인 줄 알았어요, 미안합니다”
“아, 네…”
아마도 실수로 한 인사보다 해명하는 내가 더 이상해 보였는지 그는 멋쩍게 웃으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다 내가 먼저 내리게 되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다시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히 가세요”
그도 인사로 화답했다. 회사가 입주한 건물에서 타인과 나눈 첫 번째 인사였다.
어떤 이해관계도 없다면 서로 인사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꼭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면 왠지 기분이 좋아 더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인사’를 오래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모르는 이에게 인사를 한 것이 미안할 일인 요즘, 그날의 인사는 기억에 남는다.
아침에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면 어김없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또 받아주는 기사님들이 있다. 최근 바뀐 집 앞 편의점 사장님과 직원분들은 너무도 밝게 웃으며 인사해 주신다. 그런 인사는, 여유롭지 않은 일상 속 잠시의 평화다. 오랜 목마름 뒤에 입술을 적신 한 컵 물과도 같달까.
지금까지 비교적 자유롭다는 문화의 회사에서도, 또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회사에서도 일해 봤다. 공통적으로 느낀 사회생활의 트렌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단순함을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조금 부정적으로 보자면, 남과 나를 분리하고, 근로계약 시간 전후 1분이라도 더 머무는 걸 큰 손해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허겁지겁 퇴근하지 말고 한 번쯤 내 자리를 되돌아봐. 그러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거야”
드라마 <미생>에서 사장이 장그레에게 한 조언이다. 그 말은 단지 책상 정리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허겁지겁은 우리 일상의 모습이고, 그렇게 지나치는 순간들 속에 더 나은 삶에 필요한 가치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그 대사는, 예전에 선배에게 들은 조언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