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만한 소통을 가로막는 문화 인식 사례 (revision)
오늘도 일상을 평온하고 일관된 정성으로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맛있는 와인 한 병 사러 마트의 와인매장에 들러 봅니다.
"드라이하면서 달달한 와인 좀 추천해 주세요"
마치, '손들고 무릎 꿇고 서있어'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받은 학생처럼 눈이 둥그레진 채로 잠깐 머뭇거리던 와인샵 점원은, 진열대를 가로질러가 와인을 하나 집어 들며 말합니다.
"이 와인이 어떠세요? 달콤한 과일향이 짙은데 당도는 낮아 확실히 좋아하실 겁니다"
와인에서 말하는 '드라이(dry)'하다는 표현은 '와인의 당도가 현저히 낮음'을 의미합니다. 두 가지의 조건이 상충한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도 눈치 빠른 점원은 이내 그 의도를 파악하고, '프루티(fruity)한 아로마가 특징인 좋은 와인을 권합니다.
현실에서도 이런 와인 같은, 세련되면서도 달콤한 맛의 소통문화가 존재할까요?
고민은 조직문화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분리되며 시작됐습니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공통의 단어를 공유하는 대외 커뮤니케이션실 산하로 재편됐습니다. 실제 많은 기업에선 내부와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하나의 조직에 배치합니다. 리더십은 대체로 외부 커뮤니케이션이 갖습니다. 소통이라는 큰 개념을 공유하지만, 각기 지향점이 다른 두 개념이 상호 보완이 아닌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할 경우 여러 상황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목적으로 두 가지 다른 활동을 기획해 보고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사례 1.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웹진을 운영한다.
사례 2. 사내 네트워킹 이벤트를 열어 직원 간 소통의 기회를 부여한다.
그러자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리더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문화 활동이잖아요. 우리랑 크게 연관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사내 소통 업무인지 조언을 구하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내 소통을 잘한다는 기업을 찾아 사례를 조사해 봐요"
연관 키워드로 검색하자 눈에 띈 구글 코리아의 사례에서 이런 활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TGIF (Thanks Google It's Friday) - 매주 달라지는 테마별 직원 네트워킹과 소통의 장
이건 조직문화 활동일까, 커뮤니케이션 활동일까? 궁금했습니다.
'... 분명 사내 소통을 키워드로 검색했는데, 어느새 조직문화 사례들을 접하고 있네?'
개념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여러 사례에서 조직문화와 사내 소통은 명확한 분리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지나치게 조직의 기능에 몰입하여 큰 목표를 향한 일의 원활한 진행을 가로막는 문제들을 우리는 많이 겪고 있습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개선하고자 몇 주에 걸쳐 중간관리자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습니다. 만족도 평가도 병행하고, 평가에 대한 이유도 물었습니다. 그리고 모인 견해들로부터 개선 아이디어를 정리해 봤습니다. 이야기들 중에는 내부 소통 문화와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주제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회사 운영 전반에 대한 의견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고민해 볼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해서 보고를 위해 별도로 분류했습니다.
그중 제시된 아이디어들을 그룹화하고,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더 오랜 고민이 필요한 일로 나눴습니다. 그걸 할 일(to-do)의 목록으로 쪼갠 후 리더에게 보고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건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아요. 사내 소통에 대한 타사 사례를 좀 더 찾아보고 방향성을 가지고 다시 이야기해요"
중간 관리자가 관련이 없다고 섣불리 단정하자, 회사에 꼭 필요한 자산일지도 모를 소중한 의견들은 모두 갈 곳을 잃게 되었습니다.
경험상 조직문화와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쓰는 회사들은 '직원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 '서로의 발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회사', '직원이 안정감을 느끼고 오래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 등, 내세우는 메시지는 달라도 결국 비슷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개선과 발전을 위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그 일을 하는 이들의 노력이었고, 대표는 직무를 막론하고 모두가 문화 발전에 기여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소통 문화가 점차 '나아지고 있음'을 경험했던 조직들은 대체로 유연함을 지녔습니다. 창의, 자율, 관계와 같이, 유기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큰 틀을 잡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여러 활동들을 기획하고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조직의 리더는, 구성원의 오해를 염려해 소통의 기회를 제한하거나, 동료들의 문의에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오해란, 문제를 발견하고 수정해 이해의 길로 나아갈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선다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Internal Communication is Everyone's Work'
- Lauren Johnson, Slack
슬랙(Slack Inc.)은 문화 관련 포스팅에서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 말합니다. 지향하는 목표인 신뢰가 가는, 투명한, 서로 존중하는 소통 문화를 위해선 모든 구성원이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방식이 꼭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회사와 구성원, 구성원과 구성원 간 소통의 질감과 형태를 스케치하고 제시하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은 조직문화와 떨어뜨려 고민할 문제가 아닙니다. 외부 PR의 관점에서 내부 소통을 바라보던 리더가 원한 '사내 소통 좀 한다는 기업들의 사례'가 그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와인 테이스팅 용어로 닫힌(closed)의 뜻은 '와인의 향기가 잘 드러나지 않은'이며, 공기와 만나 열리는 과정을 통해 더 풍부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습니다. 조금 열어두면 충분히 달콤해질 문화를 굳이 닫아 무미건조하게만 유지한다면, 그 대로 산화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