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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상을 평온하고 일관된 정성으로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2023년 봄에 겪은 일입니다.
생전 처음 '수술'이란걸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프지 않으면 할 일 없는,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지도 모를) 치유를 위한 그런 수술을 살면서 처음 했습니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준비 과정에서 병원을 다니며 부위가 머리 쪽이라 수술 당일엔 머리도 일부 깎아야 한다고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스타일에 조금 변화를 주고자 평소답지 않게 머리를 기르던 시기라서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잠시 멈칫했습니다. 머리를 자른다는 것이, 수술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라면 당연히 해야 하지만, 잠시라도 머리를 안 자르고 수술할 방법은 없나 하고 생각한 것이 좀 웃기기도 했습니다.
수술 몇 시간 전에는 병원에서 안내한 대로 '이발'을 했습니다. 간호사는 병원 지하에 위치한 이발소에 가서 수술 부위를 이야기하면 알아서 잘 잘라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이발소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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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지하에 있는 이발소는 그야말로 이발소였습니다. 현대식 시설로 지어진 병원 지하에 왜 '헤어살롱'이 아닌 클래식한 감성의 '이발소'가 있는지는, 거길 들르고 나서야 납득이 갔습니다. 이발사 아저씨의 손은 빠르고 능숙했습니다. 많은 머리 부위 수술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므로, 가위 보단 면도날을 잘 다루는 이발사 아저씨가 이 일에 훨씬 적합해 보였습니다.
가운을 입었다는 점, 병원에서 일한다는 점, 같은 '사'로 끝나는 직업이라는 점 이외에 의사와 이발사는 닮은 점이 또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건강과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의사는 메스(수술용 칼)를 들고, 이발사 아저씨는 면도날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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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이발사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어디 수술하세요?"
어디 어디라고 답하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의자를 하나 가리킵니다. 어느 세대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나름 이발에 최적화된 그런 이발소 의자였습니다. 자리에 앉자 목에 수건을 두르고, 수술 예정인 부위 주변의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자르더니, 곧 ('전기 바리깡'이라 부르는) 전동 면도기로 위잉 위잉 가차 없이 쳐 나갑니다. 이어, 면도 거품을 바르더니 면도날을 능숙하게 이리저리 돌리며 사각사각 머리카락 자국도 보이지 않게 깎아 나갔습니다. '머리는 또 자라게 마련이다' 라며 스스로 위안을 할 시간도 없을 만큼 금세 끝이 났습니다. 이발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윗머리로 가리니 티도 안 나네. 수술 잘 받으시고 얼른 쾌차하세요"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으로만 대해줬어도 충분했을 텐데, 그렇게 위로의 한마디를 들으니 어색하고 염려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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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이들을 겪었을까?
얼마나 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났을까?
얼마나 많은, 그들의 걱정 비친 어두운 표정을 보았을까?
그리 밝지도, 넓지도 않은 병원 지하 이발소에서 이발사로 일하며, 딱 한 번 만날 가능성이 큰 고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술실의 의사가 딱 원하는 만큼의 머리를 자르고, 깎고, 또 다듬었을까?
좋은 일로 들를 리 없는 이들의 온전치 못한 마음까지 어루만지던 병원 이발사 아저씨의 그 한마디는, 굶주림에 손에 쥐어진 적당한 쿠션감의 팥빵이거나, 추운 날 시린 손을 녹이려 편의점에 들러 쥐던 베지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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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머리 한 움큼 정도보단 조금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수술 준비실로 향하며, 문득 오래 지나도 기억에 남는 인연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대체로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맡은 일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로 훌륭히 해내는 그런 사람들과의 인연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쉬 잊히는 기억은, '다시는 안 볼 사이'라는 관계적 특성을 철저히 개인의 이득으로 삼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기억에는 흐릿해도 더 많은 순간이 따뜻했고 또 함께였음을 기억하고, 스쳐 지나도 온기 가득한 빛의 흔적을 남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과정엔, 어쩌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르는 병원의 이발사 아저씨도 있었고, 멀리 이국땅 골목의 카페 사장님도 있었고, 가깝게 지내진 않았어도 헤어질 때 서로의 무운을 빌어준 고마운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있다가 사라지는 복지보다 그래도 남겨질 선한 마음의 사람들, 그들이 만드는 사회, 혹은 문화에 대한 두서없는 생각입니다.
선심은 쓰는 것이 아니라 갖고, 키우고, 전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