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조직문화 활동이란
회사에서 내부 결속과 외부 소통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자사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 채용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인사 콘텐츠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는 많다. 블로그나 유튜브 채널이 이에 해당하는데, 인사 콘텐츠는 그 내용이 좋다고 1차 오디언스가 알아서 찾아와 주진 않는다. 직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주면 다행이고, 댓글을 남겨준다면 감사한 일이고, 직접 참여하기까지 한다면 근사한 일이다. 구성원 대다수가 ‘뭐 하러 굳이’라며 먼 산 불구경 하듯 보는 게 사내 블로그인데, 그걸 운영하는 사람조차도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사내 블로그 운영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마케터인 나조차도, 동료들의 ‘지속적인’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 론칭하고 직원들 인터뷰와 회사 내외의 갖가지 소식을 포스팅했을 땐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반응은 뜨뜻미지근해졌다. 그래도 끊임없이 구성원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그걸 토대로 콘텐츠를 만들고, 정기 뉴스레터로 콘텐츠를 배달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당사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자의식, 동기, 열정, 존중과 같은 좋은 영향을 전하는 게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 블로그가 퇴사와 함께 그냥 없던 일이 되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걸 지속하기 위한 노력, 참여한 수십 명의 시간, 담긴 이야기의 가치는 담당자의 인건비와 지출한 부수적인 비용은 미치지 못할 만큼 컸는데,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니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란 남겨지고 전해질 때 가치가 살아 숨 쉬고, 대체로 승자만의 역사가 남게 된다. 사업이 와해되면 이야기도 사라진다. 그래서 이제는 사내 블로그를 하고 싶다는 성장 중인 회사가 있다면, 예전 같으면 ‘꼭 해보시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속 가능한 사업부터 만드시고, 케이크는 나중에 자르시라’고요.
스타트업에서의 문화 블로그 운영은, 현재의 성공이 곧 사업의 영속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잠깐 하고 말 블로그는 비싼 돈 주고 사서 터뜨려 없애는 폭죽과 다름없다는 걸 경험했다.
연말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문자를 받았다.
‘고객님의 사이트가 11월 22일 만료됩니다. 만료 후에는 사이트 접속이 제한되므로 연장하시기 바랍니다.’
원래의 도메인으로 접속을 시도해 봤다. 익숙한 첫 화면 대신 ‘서비스 만료로 접속이 불가하다’는 안내 화면이 먼저 보였다. 이미 지나간, 떠나온 과거였지만 왠지 아쉽고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시절의 꿈, 희망, 즐거움, 갈등, 고뇌, 환희, 내려놓음의 순간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로부터 배움도 있었다. 그 회사는 성숙한 조직문화를 위해 무엇을 바랐고, 계획했고, 실행했는가? 나는 그 회사에서 조직문화를 위해 무엇을 꿈꿨고, 시작했고, 이어갔는가? 그리고 무엇이 이 모든 노력들을 마치 없던 일처럼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략의 답으로 연결되는,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걸리버스데이
하루의 일과로 하나의 일을 했는데 마치 여러 일을 한 것처럼 바빴던 날은 분명, 뉴스레터를 만든 날일 거다. 나는 마케팅을 본업으로 하면서 조직문화를 도왔던 적도 있었고, 조직문화를 본업으로 하면서 마케팅의 다양한 소통 방법을 적용해 본 적도 있었다. 두 경우 모두, 뉴스레터를 중요하게 다루고 이용했다. 목적에 따라 그 전체의 색이나 콘텐츠 선별은 조금 다르긴 했다. 마치 날이 흐리든 맑든 바지는 입되, 비가 올지 모르니 흐린 날에 밝은 색은 피하는 것과 같달까?
어쨌든 뉴스레터는 받아볼 대상이 정해지고, 틀을 짜고, 담을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다 보면 한 달이 금세 갈 만큼 생각보다 들일 정성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팀 단위로 움직인다면 각 부문의 특파원이 취재한 내용을 취합해 담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그걸 주로 혼자 해야 했던 나는 취재며, 인터뷰며, 정보 탐색과 가공, 이미지와 카피 제작 등 뉴스레터의 ‘ㄱ’부터 ‘ㅎ’까지 다뤘다. 힘들었지만, 보람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그 가치를 인정받는 기간 동안에는 그랬다.
걸리버스데이에 91편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걸 18번의 뉴스레터에 갈무리해 동료들에게 전했다. 첫 뉴스레터가 생각난다. 동료들의 관심도 컸다. 대표는 레터에 회신으로 응원도 했다. 물론, 그런 관심과 응원은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콘텐츠가 인재 채용에 도움이 된다는 담당자의 후기는 기뻤다. 정성적인 일이 정량적 평가를 받게 될 때 정성을 들인 제작자는 보람을 얻는다.
사라진 블로그
걸리버스데이는 이제는 기존 주소로는 접속이 불가한 죽은 블로그가 됐다. 회사는 당장 사정이 어려워지면 먼저 비용부터 줄이게 되는데, 가장 우선순위는 늘 겉치레에 쓰던 비용이다. 그걸 운영하던 팀과 담당자조차 사치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팀이 와해되고, 함께 문화며 콘텐츠를 만들어가던 사람들 모두 이직을 하게 됐다. 써 내려간 이야기들은 내 기억과 초고들에 남아 있지만, 이제 다시 세상과 만날 일은 요원해졌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열정을 가지고 했던 모든 일이 없던 일이 된 것에 실망이 컸던 것 같다. 마케팅 잘하다가, 그 연기처럼 잘 잡히지 않는 오묘한 성취에 중독되어 옛 동료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본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조직문화 목적의 콘텐츠처럼 허망한 결과물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본업인 마케터로 돌아갔다.
이로부터,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들은 쉽게 전해지지만, 너무도 수월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진짜 남는 문화적 가치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 간식바 운영 여부, 생일자 이벤트, 워케이션 제공 등은 좋은 홍보거리가 될 수는 있어도, 오래가는 가치는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회사가 존재하는 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가치는 무엇일까. 구성원이 사랑하는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와 처우에 따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회사의 차이, 그 간극이 바로 변하지 않는 가치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브랜딩 영역에서 고객이 브랜드에 대해 갖게 되는 신뢰는 이런 요소들을 통해 생긴다. 매력적인 경험, 보상, 일관성, 신뢰성, 상호소통 등, 모든 것이 시간을 두고 검증을 거쳐야 그 가치가 단단히 자리 잡게 된다. 조직문화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브랜드이고 구성원이 고객이라면, 외부에 회사를 잘 포장해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보다 ‘매력적인 문화’ 그 자체를 만드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홍보는 그다음이다.
눈이 거의 재난 수준으로 펑펑 내리던 날 아침, 많은 직원들이 어려운 출근길을 겪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동료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날씨가 예상될 때 ‘안전이 염려되므로 재택근무를 권장합니다’라고 말해주는 회사가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