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캘리그래피 연습노트 #001
연재를 시작하며.
저는 글 쓰는 건 좋아하지만 글씨는 잘 쓰지 못합니다. 아니, 손으로 무언가 그리는 일에 소질이 별로 없습니다. 수채화는, 고등학교 1학년 미술 수업시간에 정물화를 그려본 게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과목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국어시간에 하면 싫은데 친구와의 수다는 좋듯이, 예체능은 그렇게 일상의 취미로만 가까웠습니다. (그것은 참 다행입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어른의 나이가 돼서, 행운인지 아쉬움인지 누군가로부터 현대 미술이며 클래식한 민화 같은 그림을 알게 됐습니다. 미술 작품들을 보며,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고 감성의 일부분이 더 도드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도 좋았고, 유명 작가들의 그림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나의 글에 그의 그림을 더하고 싶었습니다. 기억이 추억되듯, 꿈이었던 행복은 다행히도 쉬 잊히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날 더 늦기 전에 캘리그래피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시작한 지 두어 달, 드디어 수채화도 함께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과 면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멋진 경험. 그렇게 어설픈 글씨와 누가 봐도 미완일 그림이 점점 나아지는 과정을,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수채화. 물에 풀어쓰는 물감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학교 다닐 때 무척 어려웠던 미술 과목으로 기억한다. 그런 수채화를, 더 늦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캘리그래피에 곁들여 배우게 되었다. 일명 '수채화 캘리그래피'.
처음에는 먹물펜으로 선 긋기와 자모 연습부터 시작해 가나다라와 문장으로 이어 다양한 글체를 연습했다. 캘리그래피 수업 두어 달이 된 어느 날, 선생님이 '드디어 때가 되었다'라며 수채화를 알려주셨다. 일단은 복잡한 수채화 말고, 밑그림 위에 단순한 색의 농도만으로 표현이 가능한 잎사귀부터 그리기부터 시작했다.
물감의 농도 조절하는 법과 번짐 효과, 그리고 선 긋기를 배웠다. 농도를 묽게 해서 색을 칠하면, 마르면서 경계에 자연스러운 라인이 생긴다(!). 그리고 점찍기. 조금 더 진한 물감을 아직 마르기 전 바탕면 위에 콕콕 붓으로 찍어주면, 우연의 결과로 번짐 그러데이션이 표현된다.
그렇게 간단하게 야자잎 그림 하나는 완성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완성이 아닐 수 있지만!)
배우다 보니 수채화가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물이 많을수록 나중에 마를 때 경계가 또렷해져 잘 정돈된 느낌이 된다. 같은 색도 물의 양에 따라 짙고 옅어진다. 게다가 번짐의 우연이라. 수작업의 매력이 이런 것인가 싶다. 그리고 선 긋기.
선은 차분히, 천천히 그려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신중하면 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 선이 들쭉날쭉이 된다. 중간에 선이 끊겼다고 억지로 이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잘 마무리된 선은 중간에 끊겨도 자연스럽다.
농도 조절, 어울림, 그리고 선 잘 긋기. 그러고 보니 잘하는 사회생활과 닮았다. 수채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