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나선 집. 휴대전화를 두고 왔으나 그냥 출발했습니다. 성당 교리공부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공부와 미사 중에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휴대전화를 잠시 집에서 쉬도록 배려하기로 했습니다. 늘 듣던 음악이나 뉴스 영상물 대신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지지직'하는, 아주 잠깐의 채널 노이즈가 정겹게 지나고, 잔잔한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라디오 음향은 입체적이지 않지만 귀에 편안합니다. 원래 아날로그가 디지털보다는 음파가 우리 바이오리듬에 잘 맞는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라디오 음악은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그저 이런저런 흐르는 의식을 내맡긴 흔들의자 같기도 합니다.
날이 맑으니 집을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과 몇십 분 전에는, 침대에서 깊은 번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침 알람이 울립니다. 10분을 연장하며 생각합니다.
'감기에 걸렸으니 가지 말까?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가 될 텐데.'
잠시 후, 다른 생각도 듭니다.
'교리 공부만은 빠져도 괜찮겠지? 어차피 세례를 받았으니까.'
이어지는 생각은,
'그래, 감기 회복이 우선이니까 쉬고, 저녁 미사에 가자.'
그리고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늦지 않게 교리공부에 참여하려 집을 나섭니다. 일요일 아침, 영광의 날(holy day)에 게으른 사람(lazy boy)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통상의 미사 절차는 죄의 반성에서 시작합니다. 신부님의 말씀에 신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두)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저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감기에 걸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물을 마시고, 머리를 빗고 성당에 가지 못할 이유로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토록 가지 못할 이유, 하지 못할 이유를 찾는 데에는 익숙합니다. 이번에도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마땅한 의무를 소홀히 할 뻔했습니다.
"여러분, 성스러운 가정은 없어요. 성스럽다는 것은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해요. 거룩한 가정. 그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화목한 가정, 행복한 가정은 상대적으로 쉬워요."
신부님은 오늘 미사 강론의 주제 '성가정(성스러운 가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다'라는 왠지 큰 표현보다 화목하다거나, 행복하다는 말은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라서인지 신부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가정은 요즘 우리 가정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경쟁에서 이겨 성공하는 자식을 바라는 부모와, 오로지 남의 눈에 번듯하게 비칠 삶을 좇느라 정작 부모 형제를 소홀히 하는 자식들과 그들이 추구하는 기쁨은 거리가 먼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미혼모였고, 성 요셉은 양아버지였습니다. 게다가 온갖 박해와 위협으로 쫓기는 삶을 살면서도 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며 하느님의 뜻에 따르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앞서 화목한 가정과 행복한 가정은 쉽고, 성스러운 가정은 어렵다고 했지만 사실 반대예요. 진정한 행복을 가정에서 이루기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마음에 믿음을 품고 산다면 거룩한 가정은 그 자체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신부님은 강론 말미에, 앞서하신 말씀과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 또한 마땅하고 옳은 가르침 같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행복의 기준이 뭘까요? 작은 기쁨이 모이면 행복일까요, 아니면 세상이 혼란함에도 우리 울타리 안만 평화로우면 그게 행복일까요. 기쁨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행복의 기분은 쉽게 깨어집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감정은 없으므로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 가운데 변하지 않는 무엇, 본질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가르침)이자 믿음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콜로 3:19-20)
바오로 사도가 옥중에서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알려진 콜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가정' 주제로 아내와 남편, 자식의 서로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장은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로 시작하는데, 요즘 정서에 맞게 이해한다면 그 요지는 바로 '사랑과 존중'이 아닐까 합니다.
부모로서의 진정한 사랑과 존중은 '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금쪽이'만을 위한 아낌없는 헌신이 아닐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먼저 존중하고 사랑함에 자녀도 본받게 될 것입니다. 자녀가 나중에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할 행동을 한다면, 진심 어린 충고와 엄중한 꾸짖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가 그 자녀의 자존감을 높여주고자 그들의 자만심만을 키운다면, 어디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될 뿐입니다.
그릇된 방식의 사랑은, 사랑받을 그릇조차 깨뜨리고 말 것입니다.
모처럼의 평일 휴가에 인사동 갤러리에서 볼 일을 마치고, 마침 시간이 여유로워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서소문 성지역사문화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예비신자 과정 중 했던 성지순례의 연장선상으로 예전부터 들러보고 싶던 장소였습니다.
박물관은 평일 낮이라 한적했습니다. 박물관 지상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지하층에 도서관과 성물점, 갤러리와 역사문화관이 널찍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입구는 별도의 통제가 없습니다. 개관 시간에 맞춰 가면, 누구든 자유롭게 공간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입구를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조각가 최종태 교수님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최종태 교수님은 평생의 작품 중 선별해 157점을 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단순하고 미려한 성모상에 눈길이 갔습니다.
마침 판화의 대가 알베르트 뒤러의 '그리스도의 수난'을 주제로 한 동판화 몇 점이 전시되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 중 '13 - 무덤에 묻히시다, 14 - 저승의 그리스도, 15 - 그리스도의 부활, 16 - 사도 배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치다'입니다. 그리고 '올리브산에서의 기도'는, 예수님이 잡혀가시기 전 절실한 기도를 올리는데 제자들은 깨어있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알베르트 뒤러의 작품은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서의 장면을 과거 형식을 벗어난 판화 기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주요 인물에 집중하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성탄을 일주일 앞둔 맑은 날, 계획에 없던 서소문 역사박물관 방문에서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음, 부활까지의 일대기를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으로 만나게 되어 기쁜 한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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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관람시간 9:30 ~ 17:30 (월요일 정기휴관) / 미사시간 11:00, 15:00 화요일~일요일